校長ブログ
BLOG

2019.1106

젊은 선생님의 고민과 교직선배로서의 내 답변/若手教員の悩みと、教職先輩としての自分の答え(2019年11月)

<젊은 선생님의 고민과 교직선배로서의 내 답변>

어느 날 매우 열정적이고 매사에 열심히 일하는 어떤 젊은 교사가 내게 상담을 요청했다. 최근 본인이 고민 중인 내용을 글로 정리하였다고 건네주면서 말이다. 편지를 받고 집에 귀가하여 늦은 밤까지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이 고민을 교장에게 건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였을까? 아무리 바빠도 이 선생님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져 주고자, 그 다음날 바로 내 마음속 생각들을 정리하여 건네주었다.

당사자에게 양해를 구하여 여기에 소개한다.

====================================================

<젊은 선생님의 고민이 담긴 편지>

오늘부터 교육에 대한 고민을 기록해 가려고 한다.

이유로서는 ①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점을 잘 모르게 되었다. ②내 수업이 정말 좋은 수업인 것인지, 나쁜 수업인 것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단지 잘 모르는 수업이 나쁜 수업이라고는 할 수 없다. 모르니까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기에) ③이 기록이 도움이 되고 또 나 자신을 구제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한다.

고민하게 된 발단은 00월 00일 00중학교 연수에서다. 모든 선생님, 지식인들이 자기들의 생각이나 방식이 다 맞는 것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확실히 치밀하게 쌓여져있는 연륜 부분은 있었으며 배울 만한 점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학력이나 학생들의 마음을 키우는 것까지 연결될지는 의문이다. 원래 거기에 있던 학생들이 현명하고, 또한 주어진 과제를 선생님의 「지시대로 잘 할 수 있다」는 느낌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해서만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교육이란 것은 교과학습 안에서 ‘마음’도 키울 수 있어야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날의 연수에서의 수업은 그러한 인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업을 하고 어떤 작용을 하면 그러한 상황이 되는 것일까.

2019년 00월00일 행한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내용이 잘 전해지지 않았거나 또는 나름 학생들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임해주긴 했으나, 「지시대로 따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무슨 이유인지 나 자체가 판단할 수 없게 되었고, 수업 방식을 어떻게 풀어야할지 모르게 되었다. 어떻게 즐겁게,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수업에 임하게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역시 「동기 유발」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내 예전 졸업논문을 다시 한번 펼쳐보게 되었다. 논문을 읽으면서, 달성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가기까지의 과정에서 학생들의 상황을 통해 「가치를 결정해 가는 것」이 필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달성목표를 개별적으로 설정하기도 하므로, 그게 직접적인 원인이 안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업의 흐름을 초등학생과 같이 과제화하여 행하는 것도 중학생이라면 가능하지만, 이전에 한번 해봤을 때 그다지 변화를 볼 수 없었으므로, 이 부분도 조금은 미묘하다.

여기서부터 더 막연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막연하게 「동기 유발」이 답이라는 느낌은 든다. 그러나 대책안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교사로서 수업을 하는 중에 왜 교사를 하고 있는지 자문자답해 본다. 물론 사고력을 키우기 위함도 있으나 조금 그 생각이 변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애초 내가 생각해 온,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는 것에 의문을 갖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내일부터의 수업에서는 「가치를 결정하는 것」과 「목표를 설정하는 것」을 다시 한번 행해 보려 한다.

<교직선배로서의 내 답변>

존경하는 ◯◯선생님께.

교육이란 무엇인가? 계속 내 자신에게 자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교육이란 가르치고 양육한다는 말입니다. ◯◯ 선생님은 아직 결혼을 안 하셔서 모르겠지만, 사람을 가르치고 양육한다는 것이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도 부모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라서, 전혀 나와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난 생명체들을, 그것도 ‘단체’라는 조직 속에서 올바르게 교육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평소에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교사에게 있어 수업은 생명이지요. ‘교사는 수업으로 말한다’라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수업이 제대로 안 되면 교사는 교직에 보람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사가 수업 기본이 갖추어져 있고 학생들도 기본 학습태도가 되어 있다면 그렇게 큰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교사와 학생 상호간에 존경과 학습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면 금상첨화겠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을 수업의 주체,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한편, 학생이 배움의 즐거움, 공부하는 기쁨을 느끼면 성공인 것이긴 하나, 인간의 집중 능력이 10분 정도라 하니, 45분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는 정말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제 자신의 교사시절을 돌이켜보면 아이들에게 늘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면 좋을지 늘상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8년간의 투쟁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모둠학습, 발표학습, 토론학습 등, 그 사이사이에 교과지식 등의 설명 등을 능숙하게 조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 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제 교사의 일방통행식, 주입식, 지식전달 강의식 수업은 통하지 않는 시대이지요.

다만 제가 3년차 교사시절, ◯◯ 선생님과 똑같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 선생님같은 겸손함이나 학구적인 태도와는 달리, 난 굉장히 유능한 교사라는 일종의 자만과 오만함으로 가득찬 교사였습니다. 난 재미있게 아주 설명도 잘하는 교사인데 왜 아이들이 100% 따라오지 못할까, 그게 아이들의 문제일까, 교사인 나의 문제일까 늘 고민하면서 말이죠..

2년간 아주 깊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5년차까지요. 아니, 교사를 마치고 교육행정 업무로 가기까지 계속 그러한 고민은 조금씩 계속 하면서 저 자신이 겸손해지고 부드러워졌던 것 같습니다. 다른 교사들의 장점도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요..

다만 지금 교장이 되어 생각하는 제 지론은 이렇습니다.

지금 내 눈앞에 사과를 다 먹고 남은 씨앗이 있을 때, 조그만 씨앗 하나와 과수원에 있는 큰 나무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씨앗 하나가 정상적으로 발육하고 성장했을 때 그것이 바로 큰 나무로 성장하는 것인데.. 나는 사과가 아니라 복숭아가 먹고 싶다고 그 씨앗을 복숭아로 취급하고 키운다면 과연 그 씨앗이 복숭아 나무로 바뀔까

교육은 본래 그 존재가 가지고 있던 것이 잘 발현되도록 끌어내 주는 것이지 내가 원하는 쪽으로 그 존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진정한 교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말이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사들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내적 성분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보단 부모가 교사가 어른들이 원하는 쪽으로 그 방향을 이끌어 가려고 하지 않나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무의 어린 묘목은 종류에 따라 특성이 다 다릅니다. 물을 좋아하는 녀석, 물을 싫어하는 녀석, 햇빛을 좋아하는 녀석과 싫어하는 녀석. 그런데도 보통 어른들은 자신들이 정한 방향으로 그 묘목을 키우려고 하지요.

교육은 밖에서 무엇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밖으로 꺼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늘상 마음속에 넣고 원점에서 생각하려 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마 ◯◯ 선생님 수업도 같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바라보는 ◯◯ 선생님의 시각이 두 종류 있다고 봅니다

‘◯◯교과 선생님’인 ◯◯ 선생님과 ‘인간’ ◯◯ 선생님을 보는 시각.

아마 ‘인간’ ◯◯ 선생님에 대해서는 핸섬하고 머리 좋고 부드럽고 섬세하면서도 멋진 선생님으로 생각할 것이고, ‘◯◯교과 선생님’인 ◯◯ 선생님으로 대할 때는 어려운 ◯◯이라는 교과가 무척이나 따분하지만, 아마 수업을 재미있게 가르치려고 하시는 열성파 선생님이기에 잘 들어주는 분위기? 아마 그런 아이들이 태반일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드리는 이 편지에는 ◯◯ 선생님이 원하는 답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저는 교사시절 고민하지 않았던, 교육행정 업무를 할 때는 고민하지 않았던, 한국 내 학교의 관리직 시절 때는 고민하지 못했던, 재외 한국학교이면서 일조교인 우리 금강학원의 교장이기에 가지는 여러 고민들 때문에 좀 힘들긴 합니다. 가장 힘든 시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내 자식 같고 형제 같은 선생님 중에 그 누구라도 깊은 고민이 있다면 가장 먼저 치료해 주고 싶고 가장 많이 같이 고민해주고 싶은 사람이기에.. 그것도 장래가 촉망되는 우리 ◯◯ 선생님이기에 어젯밤 주신 글을 읽고 또 읽어봤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의 고민은 계속될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고민에 “파도‘가 있을 겁니다. 자신감을 갖게 될 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무척 힘들어지는 시기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럴 때마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인간 ◯◯ 선생님도, ◯◯ 교과 ◯◯ 선생님도 스스로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년차 봐온 ◯◯ 선생님을 제가 100프로 단언하여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들 한 명한 명을 위해 고민하시고, 그리고 아이들 앞에 서서 부끄럽지 않은 교사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 선생님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끼기에, 그 모습이 잘 전달되기에, 앞으로도 멋진 교사로서 나아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한 가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고민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앞으로 경력을 쌓아가면서 그러한 고민 후에 나오게 되는 또 다른 고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그런 과정이 ◯◯ 선생님의 ‘연륜’으로 연결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급하게 쓰느라 틀린 일본어도 많았을 텐데 이해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어떤 답장도 필요 없습니다.

언제든지 또 어떤 내용이든지 좋으니 말씀 걸어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

<若手教員みと教職先輩としての自分>

ある日、非常に情熱的で熱心な、ある若い教師が私に相談に来た。最近、本人が悩んでいる内容を文章にまとめたと言い、それを私に渡した。家に持ち帰り、夜更けまで何度も読み返した。自分の悩みを校長に持ってくるまでどんなに悩んだろうか。いくら自分が仕事に忙しくても、この先生の悩みを少しでも触れてあげないといけないと思い、その翌日すぐ自分の心の中の色々な考えを記して、その先生に渡した。

それが以下の内容。本人に了解を得てここに紹介する。

若手教師みのめたお手紙

今日から教育に対する悩みを記録していくことにした。理由としては、①教育とは何かということがわからなくなってきている、②自分の授業が本当に良い授業なのか、悪い授業なのかが判断できなくなってきている(単に分からない授業が悪い授業とは言えない。分からないから無意識に生徒たちが思考することもある)、③この記録が役立ち、自分を救うことにつながるかもしれないと考えたため、ここに記す。

悩むようになった発端は00月00日の00中学校の研修だ。すべての先生、有識者が自分の考え、やり方が正しいと言いたげな雰囲気を醸し出していた。確かに、緻密に積み上げられている部分はあるし、学ぶべき点も多くある。しかし、それが学力や生徒の心を育てることにつながっているのかが疑問である。その中学校の生徒たちはもともと賢い生徒であり、与えられた課題を先生の「指示通りにこなしている」という感じであった。私はそれではいけないと思う。真の教育とは、教科学習の中で‘心’も養われるべきである。しかし、そのような印象は受けなかった。

では、どのように授業や働きかけをすればそのような状況になるのか。

2019年00月00日に行った授業の中で、生徒に伝わらなかったり、それなりに積極的には取り組んでくれているが、「指示に従っている」感は抜けなかった。自分の気持ちの持ちようなのか、何なのか判断できなくなり、授業の仕方がわからなくなった。どのように楽しく、積極的に、能動的に授業に向かうことができるのか。

そこで、やはり「動機づけ」なのかなと思い、自分の卒業論文をもう一度読み直してみた。それを読み、達成目標を設定し、そこに行く過程で生徒の状況を「価値づけしていく」ことが必要なのかと考えた。しかし、達成目標を個々に設定したりしているのもあり、そこが直接的な原因ではないのかもしれない。授業の流れを小学生のように課題化して行うことも中学生ならば可能ではあるが、以前やったこともある中で変化は見られなかったことから、そこも微妙な印象。

ここから、さらに漠然とするようになったが、なんとなくと「動機づけ」のような感じはしている。が、対策案が思い浮かばない。自分が教員として授業をしている中で、なぜしているのかということを自問自答している。もちろん思考力をつけるためであるが、少しぶれてきているのかもしれない。そもそも自分が考えてきた、思考力を伸ばせると思っていたやり方に疑問を感じているような気がする。

明日からの授業では、「価値づけ」と「目標設定」をもう一度行いたいと思う。

<尊敬する○○先生>

<教育>とは何か? ずっと自問してきた言葉でもあります。<教育>とは「教えて育つ」ということですが、’人’を教えて養育するということが、どう説明したら良いかわかりませんが、自分の子ですら親の思うように上手く育たないものなので、全然違う環境の中で育ってきた’生命体’を、それも「集団」という組織の中で一律に教育するということがいかに難しいことか常に悩んでいるところでもあります。

教師にとって、授業はまるで<生命>そのものであるでしょう。「教師は授業を通してものを言う」という話もあるくらいですからね。授業がうまくいかなければ教師は教職にやりがいを感じられないのではないかと個人的には思っています。

教師に授業の基本が備わっており、生徒も基本的な学習態度ができているなら、それほど大きな問題はないと思います。教師と生徒たちの間に互いに尊敬と学習に対する共感が形成されていれば、なおさらでしょうね。

最も重要なことは生徒を授業の主体、主人公にすることです。一方、学生が学ぶことの楽しさ、勉強する喜びを感じたらその授業は成功だとは思いますが、人間の集中できる能力は10分程度だといわれているから、45分を面白くするためには本当に大変な努力が必要です。私自身も教師時代を振り返ってみると、子供たちが毎回の授業でどうしたら積極的に取り組んでくれるかということを、教師として8年間、毎日悩みに悩みながら格闘していたと思います。グループ学習、発表学習、討論学習など、その間に教科知識などの説明などを上手に調和させるための努力を続けていた記憶があります。教師の一方通行式、詰め込み式、知識伝達だけの講義式の授業は通用しない時代ですからね。

ただ、私も、○年目の教師時代を迎えている○○先生と同じ悩みを持っていました。その時の私は○○先生のように謙虚でもなく、学究的な態度も持っていませんでした。私はとても有能な教師だという一種の慢心や傲慢に満ちていました。私の話は面白いし、説明もとてもうまく出来る教師なのに、なぜ子どもたちが100%ついてこないのだろうかと。自分の目には、みんな生徒たちが笑っていながら楽しく授業はしているものの、なんで子供たちが積極的に取り組んでいる様子は見えてないのかという問題で悩んでいました。教師の問題なのか、生徒の問題か。。

2年間、とても深く悩んでいたと思います。5年目までその悩みは続きました。いや、教師から教育行政職に移るまでずっとそういう悩みを持ちながら、少しずつ謙虚になってゆき、柔らかくもなっていったような気がします。他の教師たちの長所にも次第に気づくようになりました。

(ただ、機会があれば、なんで学校を離れて教育行政職に移ったのか、いつかまたお話します。)

ただ、今校長になって考える私の持論はこうです。

りんごを食べ終えて残った種を今度は桃が食べたいと言って、その種を桃として育てても、果たしてその種は桃の木に変わるでしょうか。

教育は、本来そのもの、存在自体が持っているものがよく発現できるように、よく引き出せるようにしなければいけないものであって、自分が望む方向へその存在を勝手に変えるのではないという事実を認めてこそ、真の教師になると思います。

私の今言いたい話が上手く○○先生に伝わるか、理解できるか、わかりません。

今の我々教師たちは、子どもたちが持っている適性や素質を見抜くことよりも、親や教師、大人が望む方向へ導こうと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もしそうだとしたら、大いに反省する必要があると思います。幼い苗木は種類によって特徴が異なります。水が好きなもの、嫌いなもの。日差しを好むもの、好まないもの。それなのに、大人達は自分たちの決めた方向にその苗木を育てようとしていると思います。

教育とは、外部から何かを注入するのではなく、もともと持っていた素質を外に出してあげることだということを常に忘れないようにしています。

多分、○○先生の授業も同じだと思います。子供たちの○○先生に対する見方は二種類あると思います。「○○の先生」としての○○先生と、「人間」としての○○先生の二種類です。

たぶん「人間」○○先生に対してはハンサムで頭がよくて柔らかくて繊細で素敵な先生だと思っているでしょうし、「○○の先生」である○○先生として接する時は難しい○○という教科はとても退屈だけど、授業を楽しく熱心に教えようとしている先生なのでちゃんと聞こうという子達が大半だと思います。

私が今差し上げるこの手紙には○○先生が望む答えがないかもしれません。

私は教師時代の時には悩んでもいなかったこと、また教育行政職の時代にも、韓国内で中学校の管理職をしていた時代にも悩んでいなかったことを、今我が金剛学園の校長として働きながら、毎日悩んでいます。

初めて経験するような問題が毎日起こるので、ちょっと大変ではあります。三年目になる今が一番大変な時期かもしれません。

でも、そういう忙しい中でも、我が子のような、家族のような先生方に深い悩みがあったら、一番先に走って一緒に悩んであげたいし、痛いところは治療してあげたいし、とにかくそういう気持ちで、あまりにも整理できてない文章ではありますが、何とか早く書いて上げたい気持ちで書きしました。しかも将来が嘱望される○○先生のことですから、昨晩くださった手紙を繰り返し繰り返し読みました。

これからも今の悩みは続くでしょう。

たぶんそんな悩みたちに “波” があるはずです。自信を持つようになる時もあるでしょうし、逆にもっと大変になる時期もきっとあると思います。その度に、絶対にあきらめず、’人間’○○も’教師’○○にも、絶対自信も持ち、確信を持ってください。

私は100%断言できます。わずか○年間しか、先生を見ていませんが、先生は子供たち一人一人のために悩み、そして、子供たちの前に立って恥ずかしくない教師の姿を一生懸命に努力して見せようとしています。その様子を子供たちはよく見ていますので、先生は将来必ず立派な教師になると確信しています。

また、ひとつ自信を持って申し上げられることは、これからキャリアを積んでいく中で、そのような悩む過程が絶対に必要ですし、もし悩みが解決できたとしても、またその後、別の悩みが出て来ることを忘れないでください。そのような悩みと答え探しの繰り返しが○○先生の’年輪’につながると確信しています。

時間がなくて急いで書いたので間違えた日本語も多かったと思いますが、理解して読んでください。この手紙には何の返事もいりません。悩み事が出来たらいつでもまたどんな内容でもいいですので、お話しいただければ本当にうれしいです。

戻る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