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선생님의 고민과 교직선배로서의 내 답변><若手教員の悩みと、教職先輩としての自分の答え>

어느 날 매우 열정적이고 매사에 열심히 일하는 어떤 젊은 교사가 내게 상담을 요청했다. 최근 본인이 고민 중인 내용을 글로 정리하였다고 건네주면서 말이다. 편지를 받고 집에 귀가하여 늦은 밤까지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이 고민을 교장에게 건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였을까? 아무리 바빠도 이 선생님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져 주고자, 그 다음날 바로 내 마음속 생각들을 정리하여 건네주었다.

당사자에게 양해를 구하여 여기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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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선생님의 고민이 담긴 편지>

오늘부터 교육에 대한 고민을 기록해 가려고 한다. 이유로서는 ①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점을 잘 모르게 되었다. ②내 수업이 정말 좋은 수업인 것인지, 나쁜 수업인 것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단지 잘 모르는 수업이 나쁜 수업이라고는 할 수 없다. 모르니까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기에) ③이 기록이 도움이 되고 또 나 자신을 구제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한다.

고민하게 된 발단은 00월 00일 00중학교 연수에서다. 모든 선생님, 지식인들이 자기들의 생각이나 방식이 다 맞는 것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확실히 치밀하게 쌓여져있는 연륜 부분은 있었으며 배울 만한 점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학력이나 학생들의 마음을 키우는 것까지 연결될지는 의문이다. 원래 거기에 있던 학생들이 현명하고, 또한 주어진 과제를 선생님의 「지시대로 잘 할 수 있다」는 느낌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해서만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교육이란 것은 교과학습 안에서 ‘마음’도 키울 수 있어야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날의 연수에서의 수업은 그러한 인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업을 하고 어떤 작용을 하면 그러한 상황이 되는 것일까.

2019년 00월00일 행한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내용이 잘 전해지지 않았거나 또는 나름 학생들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임해주긴 했으나, 「지시대로 따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무슨 이유인지 나 자체가 판단할 수 없게 되었고, 수업 방식을 어떻게 풀어야할지 모르게 되었다. 어떻게 즐겁게,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수업에 임하게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역시 「동기 유발」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내 예전 졸업논문을 다시 한번 펼쳐보게 되었다. 논문을 읽으면서, 달성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가기까지의 과정에서 학생들의 상황을 통해 「가치를 결정해 가는 것」이 필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달성목표를 개별적으로 설정하기도 하므로, 그게 직접적인 원인이 안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업의 흐름을 초등학생과 같이 과제화하여 행하는 것도 중학생이라면 가능하지만, 이전에 한번 해봤을 때 그다지 변화를 볼 수 없었으므로, 이 부분도 조금은 미묘하다.

여기서부터 더 막연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막연하게 「동기 유발」이 답이라는 느낌은 든다. 그러나 대책안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교사로서 수업을 하는 중에 왜 교사를 하고 있는지 자문자답해 본다. 물론 사고력을 키우기 위함도 있으나 조금 그 생각이 변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애초 내가 생각해 온,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는 것에 의문을 갖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내일부터의 수업에서는 「가치를 결정하는 것」과 「목표를 설정하는 것」을 다시 한번 행해 보려 한다.

<교직선배로서의 내 답변>

존경하는 ◯◯선생님께

교육이란 무엇인가? 계속 내 자신에게 자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교육이란 가르치고 양육한다는 말입니다. ◯◯ 선생님은 아직 결혼을 안 하셔서 모르겠지만, 사람을 가르치고 양육한다는 것이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도 부모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라서, 전혀 나와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난 생명체들을, 그것도 ‘단체’라는 조직 속에서 올바르게 교육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평소에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교사에게 있어 수업은 생명이지요. ‘교사는 수업으로 말한다’라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수업이 제대로 안 되면 교사는 교직에 보람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사가 수업 기본이 갖추어져 있고 학생들도 기본 학습태도가 되어 있다면 그렇게 큰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교사와 학생 상호간에 존경과 학습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면 금상첨화겠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을 수업의 주체,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한편, 학생이 배움의 즐거움, 공부하는 기쁨을 느끼면 성공인 것이긴 하나, 인간의 집중 능력이 10분 정도라 하니, 45분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는 정말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제 자신의 교사시절을 돌이켜보면 아이들에게 늘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면 좋을지 늘상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8년간의 투쟁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모둠학습, 발표학습, 토론학습 등, 그 사이사이에 교과지식 등의 설명 등을 능숙하게 조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 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제 교사의 일방통행식, 주입식, 지식전달 강의식 수업은 통하지 않는 시대이지요.

다만 제가 3년차 교사시절, ◯◯ 선생님과 똑같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 선생님같은 겸손함이나 학구적인 태도와는 달리, 난 굉장히 유능한 교사라는 일종의 자만과 오만함으로 가득찬 교사였습니다. 난 재미있게 아주 설명도 잘하는 교사인데 왜 아이들이 100% 따라오지 못할까, 그게 아이들의 문제일까, 교사인 나의 문제일까 늘 고민하면서 말이죠..

2년간 아주 깊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5년차까지요. 아니, 교사를 마치고 교육행정 업무로 가기까지 계속 그러한 고민은 조금씩 계속 하면서 저 자신이 겸손해지고 부드러워졌던 것 같습니다. 다른 교사들의 장점도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요..

다만 지금 교장이 되어 생각하는 제 지론은 이렇습니다.

지금 내 눈앞에 사과를 다 먹고 남은 씨앗이 있을 때, 조그만 씨앗 하나와 과수원에 있는 큰 나무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씨앗 하나가 정상적으로 발육하고 성장했을 때 그것이 바로 큰 나무로 성장하는 것인데.. 나는 사과가 아니라 복숭아가 먹고 싶다고 그 씨앗을 복숭아로 취급하고 키운다면 과연 그 씨앗이 복숭아 나무로 바뀔까

교육은 본래 그 존재가 가지고 있던 것이 잘 발현되도록 끌어내 주는 것이지 내가 원하는 쪽으로 그 존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진정한 교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말이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사들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내적 성분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보단 부모가 교사가 어른들이 원하는 쪽으로 그 방향을 이끌어 가려고 하지 않나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무의 어린 묘목은 종류에 따라 특성이 다 다릅니다. 물을 좋아하는 녀석, 물을 싫어하는 녀석, 햇빛을 좋아하는 녀석과 싫어하는 녀석. 그런데도 보통 어른들은 자신들이 정한 방향으로 그 묘목을 키우려고 하지요.

교육은 밖에서 무엇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밖으로 꺼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늘상 마음속에 넣고 원점에서 생각하려 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마 ◯◯ 선생님 수업도 같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바라보는 ◯◯ 선생님의 시각이 두 종류 있다고 봅니다. ‘◯◯교과 선생님’인 ◯◯ 선생님과 ‘인간’ ◯◯ 선생님을 보는 시각.

아마 ‘인간’ ◯◯ 선생님에 대해서는 핸섬하고 머리 좋고 부드럽고 섬세하면서도 멋진 선생님으로 생각할 것이고, ‘◯◯교과 선생님’인 ◯◯ 선생님으로 대할 때는 어려운 ◯◯이라는 교과가 무척이나 따분하지만, 아마 수업을 재미있게 가르치려고 하시는 열성파 선생님이기에 잘 들어주는 분위기? 아마 그런 아이들이 태반일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드리는 이 편지에는 ◯◯ 선생님이 원하는 답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저는 교사시절 고민하지 않았던, 교육행정 업무를 할 때는 고민하지 않았던, 한국 내 학교의 관리직 시절 때는 고민하지 못했던, 재외 한국학교이면서 일조교인 우리 금강학원의 교장이기에 가지는 여러 고민들 때문에 좀 힘들긴 합니다. 가장 힘든 시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내 자식 같고 형제 같은 선생님 중에 그 누구라도 깊은 고민이 있다면 가장 먼저 치료해 주고 싶고 가장 많이 같이 고민해주고 싶은 사람이기에.. 그것도 장래가 촉망되는 우리 ◯◯ 선생님이기에 어젯밤 주신 글을 읽고 또 읽어봤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의 고민은 계속될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고민에 “파도‘가 있을 겁니다. 자신감을 갖게 될 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무척 힘들어지는 시기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럴 때마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인간 ◯◯ 선생님도, ◯◯ 교과 ◯◯ 선생님도 스스로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년차 봐온 ◯◯ 선생님을 제가 100프로 단언하여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들 한 명한 명을 위해 고민하시고, 그리고 아이들 앞에 서서 부끄럽지 않은 교사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 선생님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끼기에, 그 모습이 잘 전달되기에, 앞으로도 멋진 교사로서 나아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한 가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고민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앞으로 경력을 쌓아가면서 그러한 고민 후에 나오게 되는 또 다른 고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그런 과정이 ◯◯ 선생님의 ‘연륜’으로 연결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급하게 쓰느라 틀린 일본어도 많았을 텐데 이해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어떤 답장도 필요 없습니다.

언제든지 또 어떤 내용이든지 좋으니 말씀 걸어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若手教員みと教職先輩としての自分>

ある日、非常に情熱的で熱心な、ある若い教師が私に相談に来た。最近、本人が悩んでいる内容を文章にまとめたと言い、それを私に渡した。家に持ち帰り、夜更けまで何度も読み返した。自分の悩みを校長に持ってくるまでどんなに悩んだろうか。いくら自分が仕事に忙しくても、この先生の悩みを少しでも触れてあげないといけないと思い、その翌日すぐ自分の心の中の色々な考えを記して、その先生に渡した。

それが以下の内容。本人に了解を得てここに紹介する。

若手教師みのめたお手紙

今日から教育に対する悩みを記録していくことにした。理由としては、①教育とは何かということがわからなくなってきている、②自分の授業が本当に良い授業なのか、悪い授業なのかが判断できなくなってきている(単に分からない授業が悪い授業とは言えない。分からないから無意識に生徒たちが思考することもある)、③この記録が役立ち、自分を救うことにつながるかもしれないと考えたため、ここに記す。

悩むようになった発端は00月00日の00中学校の研修だ。すべての先生、有識者が自分の考え、やり方が正しいと言いたげな雰囲気を醸し出していた。確かに、緻密に積み上げられている部分はあるし、学ぶべき点も多くある。しかし、それが学力や生徒の心を育てることにつながっているのかが疑問である。その中学校の生徒たちはもともと賢い生徒であり、与えられた課題を先生の「指示通りにこなしている」という感じであった。私はそれではいけないと思う。真の教育とは、教科学習の中で‘心’も養われるべきである。しかし、そのような印象は受けなかった。

では、どのように授業や働きかけをすればそのような状況になるのか。

2019年00月00日に行った授業の中で、生徒に伝わらなかったり、それなりに積極的には取り組んでくれているが、「指示に従っている」感は抜けなかった。自分の気持ちの持ちようなのか、何なのか判断できなくなり、授業の仕方がわからなくなった。どのように楽しく、積極的に、能動的に授業に向かうことができるのか。

そこで、やはり「動機づけ」なのかなと思い、自分の卒業論文をもう一度読み直してみた。それを読み、達成目標を設定し、そこに行く過程で生徒の状況を「価値づけしていく」ことが必要なのかと考えた。しかし、達成目標を個々に設定したりしているのもあり、そこが直接的な原因ではないのかもしれない。授業の流れを小学生のように課題化して行うことも中学生ならば可能ではあるが、以前やったこともある中で変化は見られなかったことから、そこも微妙な印象。

ここから、さらに漠然とするようになったが、なんとなくと「動機づけ」のような感じはしている。が、対策案が思い浮かばない。自分が教員として授業をしている中で、なぜしているのかということを自問自答している。もちろん思考力をつけるためであるが、少しぶれてきているのかもしれない。そもそも自分が考えてきた、思考力を伸ばせると思っていたやり方に疑問を感じているような気がする。

明日からの授業では、「価値づけ」と「目標設定」をもう一度行いたいと思う。

<尊敬する○○先生>

<教育>とは何か? ずっと自問してきた言葉でもあります。<教育>とは「教えて育つ」ということですが、’人’を教えて養育するということを、どう説明したら良いかわかりませんが、自分の子ですら親の思うように上手く育たないものなので、全然違う環境の中で育ってきた’生命体’を、それも「集団」という組織の中で一律に教育するということがいかに難しいことか常に悩んでいるところでもあります。

教師にとって、授業はまるで<生命>そのものであるでしょう。「教師は授業を通してものを言う」という話もあるくらいですからね。授業がうまくいかなければ教師は教職にやりがいを感じられないのではないかと個人的には思っています。

教師に授業の基本が備わっており、生徒も基本的な学習態度ができているなら、それほど大きな問題はないと思います。教師と生徒たちの間に互いに尊敬と学習に対する共感が形成されていれば、なおさらでしょうね。

最も重要なことは生徒を授業の主体、主人公にすることです。一方、学生が学ぶことの楽しさ、勉強する喜びを感じたらその授業は成功だとは思いますが、人間の集中できる能力は10分程度だといわれているから、45分を面白くするためには本当に大変な努力が必要です。私自身も教師時代を振り返ってみると、子供たちが毎回の授業でどうしたら積極的に取り組んでくれるかということを、教師として8年間、毎日悩みに悩みながら格闘していたと思います。グループ学習、発表学習、討論学習など、その間に教科知識などの説明などを上手に調和させるための努力を続けていた記憶があります。教師の一方通行式、詰め込み式、知識伝達だけの講義式の授業は通用しない時代ですからね。

ただ、私も、○年目の教師時代を迎えている○○先生と同じ悩みを持っていました。その時の私は○○先生のように謙虚でもなく、学究的な態度も持っていませんでした。私はとても有能な教師だという一種の慢心や傲慢に満ちていました。私の話は面白いし、説明もとてもうまく出来る教師なのに、なぜ子どもたちが100%ついてこないのだろうかと。自分の目には、みんな生徒たちが笑っていながら楽しく授業はしているものの、なんで子供たちが積極的に取り組んでいる様子は見えてないのかという問題で悩んでいました。教師の問題なのか、生徒の問題か。。

2年間、とても深く悩んでいたと思います。5年目までその悩みは続きました。いや、教師から教育行政職に移るまでずっとそういう悩みを持ちながら、少しずつ謙虚になってゆき、柔らかくもなっていったような気がします。他の教師たちの長所にも次第に気づくようになりました。

(ただ、機会があれば、なんで学校を離れて教育行政職に移ったのか、いつかまたお話します。)

ただ、今校長になって考える私の持論はこうです。

りんごを食べ終えて残った種を今度は桃が食べたいと言って、その種を桃として育てても、果たしてその種は桃の木に変わるでしょうか。教育は、本来そのもの、存在自体が持っているものがよく発現できるように、よく引き出せるようにしなければいけないものであって、自分が望む方向へその存在を勝手に変えるのではないという事実を認めてこそ、真の教師になると思います。

私の今言いたい話が上手く○○先生に伝わるか、理解できるか、わかりません。

今の我々教師たちは、子どもたちが持っている適性や素質を見抜くことよりも、親や教師、大人が望む方向へ導こうと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もしそうだとしたら、大いに反省する必要があると思います。幼い苗木は種類によって特徴が異なります。水が好きなもの、嫌いなもの。日差しを好むもの、好まないもの。それなのに、大人達は自分たちの決めた方向にその苗木を育てようとしていると思います。

教育とは、外部から何かを注入するのではなく、もともと持っていた素質を外に出してあげることだということを常に忘れないようにしています。

多分、○○先生の授業も同じだと思います。子供たちの○○先生に対する見方は二種類あると思います。「○○の先生」としての○○先生と、「人間」としての○○先生の二種類です。

たぶん「人間」○○先生に対してはハンサムで頭がよくて柔らかくて繊細で素敵な先生だと思っているでしょうし、「○○の先生」である○○先生として接する時は難しい○○という教科はとても退屈だけど、授業を楽しく熱心に教えようとしている先生なのでちゃんと聞こうという子達が大半だと思います。

私が今差し上げるこの手紙には○○先生が望む答えがないかもしれません。

私は教師時代の時には悩んでもいなかったこと、また教育行政職の時代にも、韓国内で中学校の管理職をしていた時代にも悩んでいなかったことを、今我が金剛学園の校長として働きながら、毎日悩んでいます。

初めて経験するような問題が毎日起こるので、ちょっと大変ではあります。三年目になる今が一番大変な時期かもしれません。でも、そういう忙しい中でも、我が子のような、家族のような先生方に深い悩みがあったら、一番先に走って一緒に悩んであげたいし、痛いところは治療してあげたいし、とにかくそういう気持ちで、あまりにも整理できてない文章ではありますが、何とか早く書いて上げたい気持ちで書きしました。しかも将来が嘱望される○○先生のことですから、昨晩くださった手紙を繰り返し繰り返し読みました。

これからも今の悩みは続くでしょう。たぶんそんな悩みたちに “波” があるはずです。自信を持つようになる時もあるでしょうし、逆にもっと大変になる時期もきっとあると思います。その度に、絶対にあきらめず、’人間’○○も

‘教師’○○にも、絶対自信も持ち、確信を持ってください。

私は100%断言できます。わずか○年間しか、先生を見ていませんが、先生は子供たち一人一人のために悩み、そして、子供たちの前に立って恥ずかしくない教師の姿を一生懸命に努力して見せようとしています。その様子を子供たちはよく見ていますので、先生は将来必ず立派な教師になると確信しています。

また、ひとつ自信を持って申し上げられることは、これからキャリアを積んでいく中で、そのような悩む過程が絶対に必要ですし、もし悩みが解決できたとしても、またその後、別の悩みが出て来ることを忘れないでください。そのような悩みと答え探しの繰り返しが○○先生の’年輪’につながると確信しています。

時間がなくて急いで書いたので間違えた日本語も多かったと思いますが、理解して読んでください。この手紙には何の返事もいりません。悩み事が出来たらいつでもまたどんな内容でもいいですので、お話しいただければ本当にうれしいです。

편견 偏見

강원구님의 글을 읽으면서 무척 동감이 되었기에 여기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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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편견이 생겼다.

진심으로 다가가면 상대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편견이었다.

오히려 진심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보는 능력이 훨씬 중요했다.

세상은 함께 가야만 살 수 있는 거라 생각했다. 편견이었다.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만 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5년째 일을 재계약을 해서 내가 잘난 거라 믿었다. 편견이었다.

같이 일하는 분들이 나를 어여삐 봐주는 거였다.

공과 사는 다른 거라고 굳건히 믿으며 살아왔다. 편견이었다.

공도 사도 다 사람 사는 세상임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편견이었다.

도움을 주고받는 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잘 바꾸질 않는다. 편견이었다.

물은 오래도록 고이면 썩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치는 인연은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편견이었다.

말 그대로 스치는 인연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수많은 편견들을 보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바보인 만큼 나도 바보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것만큼은 편견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 강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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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람인지라 자꾸 편견 아닌 편견이 생기곤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내 속마음을 말하고 진심으로 다가가면 다 이해해 줄거라 생각했다. 편견이었다.

사람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열과 사랑을 가지고 학교를 이끌면 바로 효과가 나타날 것 같았다. 편견이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이며, 그 효과는 절대 쉽게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교장으로 있는 한 절대적으로 모든 구성원이 날 좋아하고 따를 거라 생각했다.

근데 그건 편견이었다.

그저 주변의 칭찬과 입에 발린 말들만 내가 듣고 싶을 따름이었다.

편견이란,,자기가 겪어보지 않았거나 또는 잘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좋게 생각하거나 아니면 나쁘게 생각하는 두 종류의 생각,,그 중간이란 것은 없지 않나 싶다.

한국 사람들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제일 선호한다. 일명 “철밥통”이니까..

철밥통이라는 말은 밥통이 철로 되어있으니 그 얼마나 단단한가. 즉 어떤 경우에도 잘리는 일 없이 안정적이고 나중에 은퇴 후 연금까지 받을 수 있다는 말에서, 철밥통 같은 직장이라는 말을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고생해서 공부하여 공무원이 된 사람들이, 일하다가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그만두기도 하고 자살까지 한 사람들도 있다. 답은 단순하다.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편견. 있을 수 있다.그러나 편견이 내 본래의 생각을 잡아먹어서는 안되며,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싶다.

금강학원이 500여명 이상, 아니 1,000명 이상의 큰 학교로 성장함은 물론 글로컬(글로벌+로컬) 리더로 자라날 아이들의 집합체가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사실을,,

이것은 절대 윤유숙이 갖는 편견이 아닌, “절대적 사실”로 꼭 이루어 낼 것이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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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ウォングさんという方の文章を読みながらとても同感したので、ここに紹介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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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きていて、私も知らないうちに偏見ができた。

 

本気で近づけば相手もそうなるだろうと思った。偏見だった。

むしろ真心で近づいてくる人を見る能力がはるかに重要だった。

 

世の中は一緒に生きていってこそ生きられるものだと思った。偏見だった。

一緒に生きていける人だけが一緒に行くのがもっと重要だということが分かるようになった。

5年目仕事を再契約をしたので、自分が偉いと信じた。偏見だった。

一緒に働く人たちが自分を大目に見てくれていたのだ。

公と私は別だと堅く信じながら生きてきた。偏見だった。

公も私も、人が生きる世の中では全部同じだということを知った。

誰かの役に立つだろうと信じた。偏見だった。

助け合うのは人間の領域ではないということに気が付いた。

人でも物でもなかなか変えられない。偏見だった。

水は長い間たまってしまったら腐るということを知った。

すれ違う縁はないと思った。偏見だった。

言葉通り、すれ違う縁も多いことを知った。

私の数多い偏見を見ながら、私は分かるようになった.

私がバカなだけに私もバカたちが好きだということを…

これだけは偏見でなかったらいいなぁ。

ー姜ウォング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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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も人間なので、しきりに"偏見ではない偏見"が生じたりする。

すべての人に私の本音を言って、心から近づけば、すべての人が理解してくれると思った。偏見だった。人々は簡単には変わらないことを知った。

情熱と愛を持って学校をリードしていけば、すぐに効果が現れるだろうと思った。偏見だった。

教育は百年の大計であり、その効果は決してすぐには現れないことを知った。

私が校長を務めている限り、絶対的に全てのメンバーが自分のことを好きになり、従うだろうと思った。しかし、それは偏見だった。

ただ、周りのほめ言葉と耳に聞きやすい言葉だけを私が聞きたいだけだった。

偏見とは、自分が経験していないことか、またはよく知らないものについて、良く思うか、悪く思うか、の2つの考えである。その中間というものはないのではないかと思う。

韓国人は公務員という職業を一番好む。いわゆる「鉄の飯びつ」だから。

「鉄のおひつ」という言葉は、おひつが鉄でできているので、どれほど固いことか。つまり、どんな場合でも首になることなく安定的で、引退後は年金までちゃんと受け取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言葉から「鉄のおひつのような安定した職場」と言う。

しかし、そのように苦労して勉強して公務員になった人々が、働くうちにうつ病になったりして、辞めたり、自殺までした人もいる。答えは単純だ。適性に合わなかったからだ。

偏見、あり得る。

しかし、偏見が自分の本来の考え方まで食い止めてはならず、自分が誤った考えをしていることを自ら認識しなければならない。

しかし、しかし、それでも、それにもかかわらず、自分は信じたい。

金剛学園が500人以上、いや1,000人以上の大きな学校へと成長することはもちろん、グローカル(グローバル+ローカル)リーダーとして育つ子供たちの集合体になる日が必ず来るという事実を。

これは絶対尹裕淑が持つ偏見ではなく、「絶対的事実」として必ず成し遂げられると確信する。 ファイト!

 

원칙 변칙 반칙 벌칙(原則 変則 反則 罰則)

오늘은 내 평소 지론을 말하고 싶다.

예전 교육행정 업무들을 할 때의 일이다.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법령 개정 등을 하면서 네 단어 “원칙, 변칙, 반칙, 벌칙” 을 정의 내리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아니, 그 당시 뿐 아니라 지금도 현재진행형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원칙이 있고 변칙도 있고 반칙도 있으며 벌칙도 있다.

원칙은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을 말하고, 변칙은 원칙에서 좀 벗어난 법칙이나 규정을 말하며, 반칙은 법칙이나 규정을 어긴 것이고, 벌칙은 법규를 어긴 행위에 대한 처벌을 정하여 놓은 규칙이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원칙이 지켜지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여기에서 말하는 원칙과 상식은 누구나가 흔쾌히 수긍하고 따를 수 있는 보편타당한 것이어야 하는데, 정작 세상에는 불편부당한 규칙도 많이 있다. 그래서 변칙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또 누군가는 반칙을 하고 벌칙에 따라서 처벌을 받는다.

원칙이 답답하고 불만족스러우니 변칙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인데, 변칙과 반칙의 경계는 매우 애매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변칙은 벌칙의 적용을 받지 않을 수 있는데, 반칙은 벌칙의 적용을 받는다. 이쪽은 약간의 변칙을 쓴 것인데, 상대방은 반칙이라고 우기면 어느새 반칙이 될 때도 있고, 반대로 상대가 확실히 반칙을 해 놓고서는 이번엔 변칙이라고 우기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서의 여러 규칙들, 나는 우리 학교의 룰들이 비교적 엄격한 편이라고 느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매우 아름답고 소중한 규칙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딱 하나, 참으로 일본답고 참으로 금강다우니까…

그런데 최근 우리 학교에 젊은 선생님들이 많이 채용되면서, 교칙에 대한 교육관이 각기 다양함을 느끼곤 한다. 다만 교무실 내 교칙 관련 교육관이 서로 통일되지 않아 가끔 교사들 간의 의견이 대립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교사 본인이, 교칙에 대하여 납득하지 않다보니 왜 학생들을 통제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게 되고, 그래서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에 강한 스스로의 갈등과 고민이 있다는 것을 최근 알게 되었다.

몇 달 전 교직원 회의를 하면서 교칙 관련 교사 간 토론을 교장으로서 제안하였고, 지난 달 교사들 전원이 심도있는 토론과 협의를 하면서 어느순간 하나가 되는 금강 교직원을 느끼게 되었다.

한 지붕 아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우리 가족, 즉 하나의 금강학원이라는 큰 테두리 속에 살아가는 우리 금강 식구들!

그 안에서 “교육자”인 우리가 하나의 잣대로 한 목소리, 하나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즉 기본 룰을 조금 변형한 본인만의 룰, 상한선을 만들어 학생들을 통제한다면 그건 본인 안에서의 변칙이라 주장하겠지만, 금강이라는 하나의 큰 틀에서 보면 그건 반칙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원칙과 상식을 지키려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 보는 조직이 되어서는 안된다.

조금 맞지 않는 원칙이 있다면 서로 협의하고 맞춰가면서,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을 강구하는 우리 금강학원이 되도록, 나 역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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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は自分の普段持っている持論をお話ししたい。

以前、教育行政の仕事をしていた時のことである。教育政策を立案し、教育関連の法令の改定をしている時、四つの単語“原則、変則、反則、罰則”を定義するのがとても大変だった覚えがある。いや、当時だけではなく、今も現在進行形であるかも知れない。

私たちが生きている社会には原則があり、変則もあり、反則もあり、罰則もある。

原則は基本的な規則や法則を言い、変則は原則から少し外れた法則や規定を言い、反則は法則や規定を破ったもので、罰則は法規を破った行為に対する処罰を定めた規則である。

多くの人は言う。原則が守られて常識が通じる世の中で暮らしたいと。。。

ここで言う原則と常識は、誰もが喜んで納得して従うことができる普遍で、妥当なものでなければならない。ところが、世の中には不便で不当な規則もたくさんある。それで変則という言葉が生じてしまう。

また、誰かは反則をし、罰則に従って処罰される。

原則が息苦しくて不満に思えるために、変則で変化を試みるのだが、変則と反則の境界は本当に曖昧なところがある。滑稽なことに、変則は罰則の適用を受けないことがある反面、反則は罰則の適用を受ける。 こちらは若干の変則を使ったと主張するが、相手は反則だと言い張ると、いつの間にか反則になる時もあれば、逆に相手が確実に反則をしておいて今度は変則と言い張る場合もある。

学校のさまざまな規則に関して言うと、私は我が校のルールが比較的厳しいほうだと感じる時もあるが、とても美しくて大切なものだと思っている。理由は一つ。それが本当に日本的であり、うちの学校らしいから。。。

ところが、最近、我が校に若い先生たちが多く採用され、校則に対する教育観がそれぞれ違い、多様さを感じたりする。ただ、職員室内の教則関連の考え方にずれが生じ、互いに統一されていないため、時には教師間の意見が対立する傾向もあるようだ。

教師本人が校則に対して納得できていないので、なぜ学生たちを統制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理解ができなくなり、そのため学生たちを教育と言う名のもとで指導することに、強い自らの葛藤と悩みがあることを最近知った。

数ヶ月前に教職員会議を行い、教則について教師間の討論を校長として提案し、つい先月、教職員全員が深みのある討論と協議をしていくうちに、金剛学園の教職員がいつの間にか一つになっていくのを感じるようになった。

一つの屋根の下に様々な人々が集まっている我が家族、金剛学園という大きな枠の中で生きていく我が金剛家族たち!

その中で「教育者」である私たちが一つの物差しで、一つの声、一つの原則を守らなければ、つまり、基本ルールを少し変形して先生だけのルールを勝手に作って統制するならば、それはその先生の中では’変則’だと主張するかも知れないが、金剛という一つの組織という次元から見ると、それは’反則’に違いないと思う。

原則と常識を守ろうとする人が損をする組織になってはならない。少し自分と合わない原則があれば、お互いに協議し合わせながら、最善ではなくても次善の策を講じる私たち金剛学園になるように、私も最善を尽くして頑張っていきたい。 ファイト!

인간답다는 것은 人間らしいとは

<<웰빙, 웰다잉, 웰에이징>>

2019학년도가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월. 1년의 반이 흘러버렸다. 한 달에 한번은 이곳 “교장의 정원”에 들어와 글을 남기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이 현실.. 구차하고도 긴 변명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 시간 이후로는 자주 들어와 흔적을 남겨야지..하고 조심히 결심해 본다.

오늘은 좀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웰빙(Wellbeing) 이라고 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죽는 것을 웰다잉(Welldying) 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늙는 것을 웰에이징(Wellaging) 이라고 한다.

한때 한국에서 ‘웰빙’이라는 단어가 엄청난 붐을 일으켰었다.

‘웰빙’의 어원은 물론 영어의 ‘well-being’이지만, ‘well-being’이라는 단어에는 한국에서 쓰이는 그런 뜻은 없다. 영어 ‘well-being’에는 ‘안녕(安寧)’, ‘복지’라는 뜻밖에 없다.

철학에서는 ‘삶의 질’ 정도로 이해되는데, 누군가의 웰빙이 높다는 건 곧 그 사람의 삶이 높은 퀄리티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불었던 웰빙 열풍을 영어로 설명할 때는 ‘웰빙’을 아예 한국어 단어로 정착한 것으로 보고, 영어 ‘well-being’이 아니라 한국어를 로마자로 옮긴 ‘wellbing’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더 파생되어 만들어진 단어, 웰다잉. 웰에이징^^

사람의 연령에는 자연연령, 건강연령, 정신연령 등이 있다고 한다. 영국의 어떤 심리학자는 인생의 4분의 1은 성장하면서 보내고, 나머지 4분의 3은 늙어가면서 보낸다고 했다.

사람이 아름답게 죽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다 어려운 것은 아름답게 성장하거나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즉, 행복하게 성장하거나 늙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웰빙..웰다잉..웰에이징..

사람답게 잘 살고, 사람답게 늙어가며, 사람답게 죽는 것, 나한테는 다 같은 말처럼 들리는 이유는 뭘까. 결국 이 세 가지 단어가 추구하는 “사람답게”라는 공통어구 때문일 것이다.

이 세 단어를 만족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나는 두 포인트를 제시한다.

첫째, 잘 살고 아름답게 늙어가다가 멋지게 죽기 위해서는 일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열정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노년을 초라하지 않고 우아하게 보내는 비결은 열정이다.

어느 책 구절에, 세계 역사상 최대 업적의 35%는 60-70대에 의하여, 23%는 70-80세 노인에 의하여, 그리고 6%는 80대에 의하여 성취되었다고 한다.

결국 역사적 업적의 64%가 60세 이상의 노인들에 의하여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은 80이 넘어서였고, 다니엘 드 포우는 59세에 ‘로빈슨 크루소’를 썼고, 칸트는 57세에 ‘순수 이성비판’을 발표하였다고 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둘째,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서 초라하지 않으려면 대인관계를 잘 하여야 한다. 즉 인간관계를 ‘나’ 중심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중심으로 가져야 한다. 개와 고양이가 서로 사이가 안 좋은 이유는 서로 소통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는 반가우면 꼬리를 흔드는데 고양이는 상대를 공격할 때 꼬리를 흔든다. 즉, 개는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지만 고양이는 “이놈이 나를 공격하려고 하네?”하며 발톱을 세우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 신경 쓰는 일이 많아서인지 혈압이 평소보다 많이 오르는 것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인지 웰빙, 웰다잉, 웰에이징이라는 말이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누군가가 그랬다. 운동은 건강을 위해 필요하듯이 건강은 일을 위한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내가 현재 가장 소중히 생각하고 사랑하는 나의 직장 오사카금강학교, 그리고 내 소중한 가족을 위해 나의 건강도 조금은 생각하고 돌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ウェルビーイングウェルダイングウェルエージング>>

2019年度が始まったのが一昨日のような気がするのに、今はもう6月。1年の半分が過ぎてしまった。月に一度は「校長の庭園」に文章を残したいと思っていたが、思い通りにならないこの現実。長い弁明はしたくない。ただ、今後はこの「庭園」に入って足跡を残さなければと密かに決心してみる。

今日はちょっと特別な話をしたい。

人が人間らしく生きることを『ウェルビーイング(Wellbeing)』といい、人が人間らしく死ぬことを『ウェルダイング(Welldying)』という。そして人が人間らしく老いることを『ウェルエージング(Wellaging)』という。

一時期、韓国で『ウェルビーイング』という単語が大ブームを巻き起こしたことがある。『ウェルビーイング』の語源はもちろん英語の”well-being”であるが、”well-being”という単語には韓国で使われているような意味はない。英語の”well-being”には「安寧」「福祉」という意味しかない。

哲学では「生活の質」程度で理解できるが、誰かの「ウェルビーイングが高い」ということは、まさにその人の暮らしが高いクォリティを持っているということだ。

韓国で話題になったウェルビーイングブームを英語で説明する際には、「ウェルビーイング」を最初から韓国語の単語として考え、英語の”well-being”ではなく韓国語をローマ字に移した”wellbing”という場合もある。

ここにさらに派生して作られた単語、ウェルダイング。ウェルエージングなどもある。

人の年齢には自然年齢、健康年齢、精神年齢などがあるという。英国のある心理学者は「人生の4分の1は成長しながら過ごし、残りの4分の3は老いていきながら過ごす」と唱えた。

人間が美しく死ぬというのはさほど難しいことではない。しかし、難しいのは、美しく成長し、美しく老いていくことだと思う。すなわち、幸せに成長したり年を取ったりすることは容易ではない。

ウェルビーイング、ウェルダイング、ウェルエージング…

人間らしく生き、人間らしく老いて、人間らしく死んでいくこと。私にはみんな同じ言葉のように聞こえる理由は何だろうか。結局この三つの単語が追求する「人らしく」という単語のせいであろう。

この三つの単語を満足するための条件として、私は二つのポイントを提示したいと思う。

第一に、豊かに暮らし、美しく老い、かっこよく死ぬためには、仕事との関係が重要だと考える。年齢を重ねるほど情熱を失わない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

ある本の一節に、「歴史上の最大の業績の35%は60-70代の人によって、23%は70-80歳の老人によって、そして6%は80代の人によって成就された」とあった。つまり、歴史的業績の64%が60歳以上の老人たちによって成就されたということだ。

ゲーテが「ファウスト」を完成したのは80を超えた時であり、ダニエル・デフォーは59歳で「ロビンソン・クルーソー」を書いており、カントは57歳の時に「純粋理性批判」を発表したという。どれほどすばらしいことか。

第二、人間関係が大変重要だと思う。年を取ってみすぼらしくならないためには対人関係を円満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つまり人間関係を「私」中心ではなく、「人との関係」中心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犬と猫が互いに仲が良くない理由は、お互いの意思疎通の方法が違うためだという。犬は嬉しければしっぽを振るが、猫は相手を攻撃する時しっぽを振る。つまり、犬はうれしくて尻尾を振るが、猫は「こいつが私を攻撃しようとするのか」と爪を立てるのだ。人間関係もこういうものではなかろうか。

最近気を使うことが多いからか、血圧が普段より高いことが多い。そのためか、ウェルビーイング、ウェルダイング、ウェルエージングという言葉が、さらに大事に感じられる。誰かが言った。「運動は健康のために必要であると同じく、健康は仕事の前提条件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

私が今一番大切に思う、愛する私の職場の金剛学園。そして、私の大切な家族のために自分の健康も少しは考えて大事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自分に言い聞かせる。

 

2019年新年の挨拶 2019년 새해 인사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오래간만에 “교장의 정원”에 들어왔습니다. 바빴다고 하면 너무도 뻔한 핑계이겠지요^^

1월 7일인 어제, 전체 교직원들이 모여 신년 인사는 물론 첫 교직원 회의를 했습니다. 2019년을 맞이하여 한층 밝은 얼굴로 모인 교직원들께 다음과 같은 인사를 했습니다.

오사카에서 3번째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의 생활을 계산해 보니, 나고야대학에서 2년, 치바한국교육원장으로 4년, 오사카에서 3년. 총 9년이란 세월을 일본에서 생활했고, 이젠 정말 일본이 저의 제2의 고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 1년 여러 즐겁고 행복한 일들도 많았고 한편으로는 괴롭고 힘든 일들도 많았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정말 감사의 제목들이 많은 분들도 많았고, 한편 섭섭하고 서운한 순간도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스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이 하신 말씀을 읽고, 제 행동들에 대하여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기에, 그 말씀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혜민스님 왈, “인생에 있어 어떤 세 가지를 깨달았고, 그 세 가지를 깨달은 순간,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지는가를 알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첫째는, 내가 상상하는 것만큼 세상 사람들은 나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입니다.보통 사람은 제각기 자기 생각만 하기에도 바쁩니다. 남 걱정이나 비판도 사실 알고 보면 잠시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삶의 많은 시간을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걱정하면서 살 필요가 있을까요?

둘째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줄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입니다.내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줄 수 있을까요? 모두가 나를 좋아해 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지나친 욕심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면 오히려 자연의 이치인가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가면 됩니다.

셋째는, 남을 위한다면서 하는 거의 모든 행위들은 사실 나를 위해 하는 것이었다는 깨달음입니다. 내 가족이 잘되기를 바라는 기도도 아주 솔직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가족이 있어서 따뜻한 나를 위한 것이고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우는 것도 결국 외롭게 된 내처지가 슬퍼서 우는 것입니다.개인적으로는 이 세 번째 깨달음에는 동의는 하지 않습니다만^^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 하면 지난 한해 저로서는 누구나 납득할 정도로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린다 싶었지만, 백이면 백명 모두 이해해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기에 조금 섭섭하고 안타까워하며 때로는 분하게도 생각하는 제 자신을 바라볼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때 이 글을 보면서, 제 생각을 바꿔야겠다 싶었지요.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 그 일이 다른 사람에게 크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남 눈치 그만 보고,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소신있게 밀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시길 바랍니다. 정말 소신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면 생각만 하시지 말고 그냥 해버리십시오. 왜냐하면 내가 먼저 행복해야 세상도 행복한 것이고 그래야 또 내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이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한국어로 하면 “위험 감행”이라는 말입니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 가히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선택하지 않으면 우리들에겐 결정적인 “변환점”이 결코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학교의 발전을 위하여 리스크 테이킹을 할 각오가 되어 있으며 언제든지 움직일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도박’이라는 말과는 다릅니다. 도박은 노력도 안하면서 큰 것을 얻으려는 것이지만, 리스크 테이킹은 혼신의 노력과 도전 정신으로 무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금강학원이 하나로 뭉쳐서 앞으로 나아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교직원 한명한명이 새롭게 태어나 더욱 열심히 앞으로 전진하여, 새롭게 거듭나는 금강학원을 만들어 봅시다.

아무쪼록 2019년 우리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한 해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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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年あ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久しぶりに”校長の庭園”に入りました。かなり忙しかったと申しますと、あまりにも決まりきった言い訳になりますよね。^^

1月7日である昨日、全教職員が集まり新年の挨拶はもちろんのことで初の教職員会議を行いました。2019年を迎えていっそう明るい顔で集まった教職員たちに次のようなあいさつ言葉を申しあげました。

3年目の新年を大阪で迎えました。私の日本での生活は名古屋大学で2年、千葉で4年、そしてこの大阪で3年、あわせて9年になり、本当に日本が第二のふるさとだと言っても過言ではありません。

個人的に尊敬しているお坊さんがいらっしゃいますが、そのお坊さんがおっしゃった言葉があります。次の3つのことを悟った瞬間、どのように生きれば幸せになるのかがわかったということです。

1つ目は自分が思っているほど、世間の人は私に関心などないという事実です。普通、人は自分のことだけ考えるのが精一杯で、他人の心配や批判は一時のことに過ぎず、他人の目に自分がどう映るのかを心配する必要などないというのです。

2つ目は、この世のすべての人に好かれる必要はないという悟りです。自分が、この世のすべての人が好きではないのに、どうしてこの世のすべての人が私のことを好きになるはずがあるでしょうか。そんな必要はありません。それは度を超した欲張りというものです。誰かが自分を嫌いだというなら、むしろそのほうが自然だと思って通り過ぎればいいのです。

3つ目は、他人のためにしていると思っているほとんどの事は、実は自分のためにしていることだという悟りです。自分の家族がうまく行くようにと願うのも、正直な気持ちで眺めてみれば、家族に対して思いやりを持つ私のためであり、親が亡くなって泣くのも、結局は親がいなくなってさびしくなった自分の境遇が悲しくて泣いているのだというのです。個人的にはこの三つ目の悟りは、あまり同感していませんが…^^

なぜこんなことを申し上げるのかと言いますと、去る一年の自分としては、誰もが納得するほどの正当な目的を持って、一生懸命前だけを見て走っていると信じていました。しかし、百人なら百人皆が理解してくれない事もあり、がっかりすることもありましたし、時にはくやしく思う自分自身を眺める時もありました。そういう時にこの方の悟りを聞いて、自分の考えを変え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ったのです。

つまり、皆さんも自分が本当にやりたいと思うことがあるなら、他人の迷惑にならない限り、人目を気にせず、自分が本当にしたいことをしてほしいということです。なぜなら、自分がまず幸せになってこそ、周りも幸せになるからであり、そうしてこそ、自分が周囲の人を幸せにするからなのです。

愛する皆さん!
リスクテーキング(Risk taking)という単語をご存知ですか? 韓国語または日本語では”危険敢行”という言葉です。危険だということを知りながら行動に移すことは容易ではありませんが、それでもリスクを選ばなければ私たちには決定的な”変換点”が決して来ません。私は我が校の発展のためにリスクテーキングをする覚悟ができており、いつでも動く姿勢ができています。

この言葉は”賭博”という言葉とは異なります。賭博は何の努力もせずに大きなものを得ようとするものですが、リスクテーキングは渾身の努力と挑戦精神で私たちを武装して、前にどんどん進むことです。

金剛学園が一つになって前に進むことを心からお祈りします。教職員一人一人が新しく生まれ変われ、より一層前に進み、生まれ変わる金剛学園を作ってみましょう。

2019年 私たち皆が幸せであれたらいいと願っています。

カムサハムニダ!

 

 

기억의 이원화 記憶の二元化

<기억의 이원화>

오래간만에 이 방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처음 각오로는 매달 한번씩 글을 올려야지 싶었는데.. 조용히 앉아서 커피 한잔을 마실 시간이 없을 정도로 매일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레 글을 올리는 것도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보면 가끔 제 기억과 상대방 기억에 차이가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느 쪽인가가 착각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잘못된 기억을 머릿속에 입력시키고 완전히 그것이 사실인양 본인 머릿속에 정착화 시킬 때가 많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경우 이외에, 내 안에서 이원화되는 기억을 바라보곤 합니다.

우리가 ‘겪었던’ 과거라는 시간과,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가 가끔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말입니다.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사실인 ‘팩트’인데, 가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과거에 인간의 독특한 왜곡된 생각을 집어넣어 과거와는 조금 다른 사실로 기억하곤 합니다.

때로는 지난 과거가 사실보다 더 미화되기도, 때로는 지난 과거가 사실보다 더 나쁘게 변질되어 슬픈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이 나에 대해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되듯이, 지금의 나도 과거의 나에 대해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때의 나는 그렇게 해야만 했던 것이지요.

저 역시 이곳 금강에서 학교장으로서 근무하면서 판단한 여러 일들이, 후대에 어떻게 판단될지 모르나 그때의 저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그 당시에는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후대에 이해해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제 마음이 조금은 편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여러분들이 하셨던 행동들과 신념들에 있어 강한 확신을 가지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그 행동이 정말 좋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먼저 본인 스스로 그 신념에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주변 선배들이나 동료, 가족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조언을 구한다는 것, 꽤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용기를 내어 조언을 구할 때, 주변 선배나 동료, 가족들은 솔직한 객관적 평가를 해주고 어드바이스해 줄 수 있는 그런 우리 금강가족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금강 가족 여러분!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테리이며, 그리고 오늘은 선물이라고 합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버려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고 내일 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이라는 시간은 확실하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우리에게 주어진 이 ‘현재’를 감사히 여기면서 멋지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막막해보여도 분명 우리들의 길은 가장 아름다운 곳을 향해 뻗어 있을 겁니다.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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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憶二元化>

この部屋に入るのは久しぶりですね。初めは毎月一回ずつ掲載する予定だったのですが、、、

静かに座ってコーヒー一杯さえ飲む時間がないほど、毎日忙しく生活しているうちに、自然と遠ざかってしまいました。

仕事をし、そして多くの人と会っていると、たまに自分の記憶と相手の記憶に食い違いのあることがあります。どちらかが勘違いをしているか、あるいは間違って覚えているからでしょう。 私もそのようなことがしばしばあります。

時には、自分の中でさえ、記憶が不確かになることがあります。過去を美化して記憶していたり、反対に、実際にあった以上に悪く記憶してしまうこともあります。

しかし、今の記憶がどうあれ、その時の私はそうするしかなかっただろうし、その時はそれが最善だと思って、したのだろうと思います。

私もここ金剛で、学校長として勤務しながら判断したいろいろな事が、後からどう評価されるかわかりませんが、その時の私はそうするしかなかった、その当時は最善の決定だったと理解していただけることを望むだけです。

そう思うことで気持ちは楽になります。

この文を読んでいる皆さんも、何か迷うことあっても、信念と確信を持って行動なさるといいと思います。時にはその判断が間違っている時もあるかもしれません。そんな時は周囲の人に相談なさるといいと思います。

アドバイスを求めるのも時には勇気が必要ですが、金剛の家族はきっと親身になって相談に乗ってくれると思います。

愛する金剛の家族の皆さん!

昨日はヒストリーであり、明日はミステリーであり、そして今日はプレゼントだと言います。昨日はすでに過ぎてしまって二度と帰ってこない。明日は何が起こるか分からない。

しかし、今日という時間は確実に私たちに与えられている。だから、私たちは現在(present)をプレゼント(present)だと言うのでしょう。私たちに与えられたこの「現在」を有難く思いながら充実した「今日」を過ごそうではありませんか!

今ははるか遠くに見えますが、きっと私たちの道は最も美しいところに向けて伸びているでしょう。 ファイティング!

금강은 변화하고 있다

‘변화’란 무엇일까? 어떤 책에서, ‘변화’의 정의는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큰 고통을 감내하고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이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핵심은 세 가지다. ‘원하는 것’, ‘고통 감내’, ‘새로운 습관’.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교육부에서 근무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선발되어 재외 한국학교 교장으로 발령받아 출국하는 여러 훌륭하신 교장들을 봐왔고, 한편 불미스러운 일로 안타깝게 소환되거나 임기를 못 마치고 돌아오는 기관장들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기도 했다.

2016년 8월 금강학원 교장으로 선발된 나는, 금강이라는 학교를 일본 내 최고의 학교로 만들 수 있다는 커다란 ‘자신감’이라는 녀석을 데리고 당당히 일본에 건너왔다. 첫 여성 교장으로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잘 활용하여 열심히 하다보면 어떻게든 멋진 결과가 나올 거라는 왠지 모를 당당한<?> 자신감이 내 머리와 가슴 속에 든든히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이제 내 임기 중 반이 훌쩍 지나가고 4개월이 더 지나갔다. 처음에 그렇게 당당히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던 자신감이라는 녀석은 어느 순간 어딘가로 가버리고, 점점 주눅 들어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거울 속에 많이 비쳐졌다.

니시나리에서 난코로 오면서 지리적인 이유 등으로 학생 수가 반 이상 줄어들고 있는 우리 금강학원이지만, 능력 자체보다 적극적인 성격과 노력 하나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나이기에 그깟 학생 수는 금방 늘어날 것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지난 1년 반 동안 최선을 다해 생활해 왔다. 자리에 멋지게 앉아 결재만 하는 교장은 되고 싶지 않아서 그 누구보다 빨리 출근했고 열심히 발로 뛰고 릴레이 회의를 하면서 많은 부분을 바꿔가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결과는 빨리 나타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은 충분히 느끼고 있고, 같이 근무하는 교직원들도 교장을 잘 따라주고 평생 같이 근무하고 싶다고 말을 할 정도로 레포도 충분히 형성되었건만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에 조금씩 답답해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교사시절, 공부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무기력해진 학생들에게, 눈앞에 보이는 자그마한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꿈을 크게 가지고 열심히 전력하라고 말하던 나였는데,, 그건 내 마음속 영혼의 울림 없는 설교였던 것일까.

모처럼 평화롭고 조용한 토요일(5월 12일) 아침을 맞았다. 무심한 아들 녀석은 엄마를 홀로 두고 멀리 효고현에 있는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 타고난 막내 기질 탓인지 외로움과 고독이 무척이나 싫은 나의 발걸음은 어느 순간 학교로 향해 있었다.

교장실에 걸려진 역대 교장님들의 사진을 다시금 올려보았다. 다들 어떤 심정으로 교장실에 앉아 일을 하셨을까. 다들 웃으면서 인자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래, 윤 교장, 우리들이 지켜줄테니 잘 해봐. 우리가 못 이룬 꿈까지 꼭 이루란 말이야! 금강은 서서히 지금 변화하고 있어. 윤 교장 자신을 믿어봐”

그렇다. 금강은 확실히 ‘변화’하고 있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변화에도 순서가 필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키겠다는 목표를 간절히 세우고,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며, 그 결과로 얻어지는 새로운 습관을 완전한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 즉, 변화는 땀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 다시금 시작이다. 변화, 변혁..그리 쉽게 결과를 주지 않는 녀석들이다. 그래도 먼 미래의 멋진 금강의 모습을 상상하며, 끈질기게 원하면서, 그 과정 속의 힘든 여러 부분들을 잘 이겨내면서, 새로운 습관에 익숙해지다 보면 분명 우리 금강학원에 밝고 멋진 미래가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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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わっていく>

‘変化’とは何だろうか。ある本によると‘変化’の定義は「切実に望んでいる事をかなえるには大きな苦痛に耐え、新しい習慣を作ることだ」という。

ポイントは三つである。「望むこと」、「苦痛に耐えること」そして「新しい習慣」。このうち一つでも欠けたら変化は起きないそうだ。

教育部で勤務しながら、全国各地から選ばれ、在外韓国学校の校長として任命され出国する、多くの立派な校長たちを見てきたが、一方、よからぬことで残念ながら召還されたり、任期まで終えず途中で帰ってくる校長たちを見ながら心を痛めたりもした。

2016年8月、金剛学園の校長に選抜された私は、金剛という小さな学校を日本で最高の学校に作り上げ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大きな「自信」とともに堂々と日本に渡ってきた。初の女の校長としてソフトなカリスマ性をうまく活用して、一生懸命にやれば何とかいい結果が出るだろうという何とも言えない自信が私の頭と胸の中にしっかりと定着していたようだ。

もう私の任期の半分があっという間に過ぎ、さらにそれから4ヵ月以上が過ぎてしまった。

はじめのうちこそ堂々としていた私の自信というやつはいつの間にか、どこかへ行ってしまい、だんだんいじけて悩んで苦しんでいる自分の姿が鏡の中に多く映った。

西成区から南港に移転してきて地理的な理由などで、生徒数が半分以上減っている金剛ではあるが、能力はともかく積極的な性格と努力だけは誰にも負けない自分なので、生徒数なんかすぐに増えるものとあまりにも高をくくっていたような気がする。

今まで1年半の間、最善を尽くして生活してきた。椅子にカッコよく座って決裁ばかりする校長にはなりたくなかったので、誰よりも早く出勤し、熱心に走り回り、リレー会議をしながら多くの部分を変えていこうと努力した。しかし、結果はすぐには自分の前に現れてくれなかった。外から見てわからなくても、内側から少しずつ変わっていってるのは十分に感じられ、一緒に勤務する教職員たちも、校長によく従って「一生一緒に勤務したい」と言ってくれるほど良い関係も十分に形成されてはいるが、目に見えるはっきりとした結果が現われないことに、少しずつイライラする自分自身を発見したりした。

教師時代、勉強の成果が出ないといって挫折したり無気力になっている生徒に、目の前に見える小さな結果に一喜一憂せず、夢を大きく持って一生懸命努力しろと言っていた私だったのに…それは私の心からの言葉ではない、ただの虚しい説教だったのだろうか。

せっかく平和で穏やかな土曜日(5月12日)の朝を迎えたのに、無情な息子は母を家に一人置いて遠く兵庫県にいる友達の家に遊びに行った。生まれつきの末っ子気質のせいか寂しさと孤独がとても嫌な私は、いつの間にか学校に行く準備をしていた。

校長室にかかげてある歴代校長たちの写真を再び見上げてみた。みんなどんな心境で校長室に座って仕事をしたのだろうか。みんな笑いながら慈悲深く私を眺めている。「そう、尹校長、俺たちが見守ってあげるから、頑張ってやってみなさい。俺たちが実現できなかった夢を必ず成し遂げてくれ! 金剛は徐々に今変化しているよ。尹校長、自分自身を信じなさい!」

そうだ。金剛は確実に「変化」している。冒頭で言ったように変化にも順番がある。何をどのように変化させるかという目標を明確に立てて、その目標に至るための不断の努力と忍耐が必要であり、その結果として得られる新たな習慣を完全に自分のものにする作業。つまり、変化とはは汗を要求するものなのである。

そうだ。再び始めてみよう。変化、変革はそれほど簡単には結果を与えないやつらだ。それでも遠くの未来にあるすばらしい金剛の姿を想像して粘り強く求めながら、そこに至る過程がどんなに困難でも、新たな習慣に慣れていくうちに、確実はいつかはわが金剛学園に明るくて素晴らしい未来が訪れることと確信する。 ファイト!

뜨거운 우정! あつい友情!

여러분, 일전의 평창올림픽을 텔레비전에서 많이 봤을 것입니다.

스피드스케이팅 500미터에서 일본의 고다이라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것을 보셨나요? 한국의 이상화 선수가 은메달을 땄습니다. 이상화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금메달을 못따서 분해서 울었을까요? 모국에서 올림픽이 열렸는데 기대에 못미쳐서 울었을까요? 인터뷰에서 드디어 끝났구나..하는 안도감으로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아마 여러 복합적인 감정, 생각들이 났을 겁니다.

그걸 본 고다이라선수가 가까이 다가가서 “잘했어”라고 한국어로 격려를 했습니다. 둘은 매우 사이좋은 친구였습니다. 이걸 본 많은 관객들은 큰 감동과 함께 더 큰 박수를 쳤습니다. 시합이 끝날 때까지는 라이벌이었지만, 승부가 끝난 후에는 다시 친구사이로 돌아온 그 모습이 감동을 주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국경을 넘은 우정은 보통사람에게는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외국 사람과 친구가 되는 찬스는 잘 없으니까요

그러나 우리 금강학원 친구들은 어떨까요? 한국에서 온 친구도 있고 일본, 또 제3국의 친구들도 있어요. 우리 모두 매일 국제교류를 하는 기회가 많이 있는 이 환경, 얼마나 복받은 일인가요? 그러므로 이런 환경을 잘 살려 우리 모두의 우정의 끈을 더 넓혀갈 수 있습니다.

국경이란 것은 어른들이 만든 경계선입니다. 그러나 우리 친구들에게는 경계선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올림픽이 평화의 제전인 것처럼 이 금강학원의 친구라는 끈이 세계로 넓혀져서, 온 세계가 평화롭게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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皆さんは、今回の韓国の平昌オリンピックの時に、日本の小平奈緒選手がスピードスケート500メートルで金メダルを取ったことをよくご存じだと思います。

そして韓国のイ・サンファ選手が銀メダルでした。イ・サンファ選手は、ゴールした後、ひどく泣きくずれてしまいました。

負けた悔しさだったのでしょうか。地元開催のオリンピックなのに、期待に答えられなかったからでしょうか。目を真っ赤にして涙を流していました。

それを見た小平選手は近づいていって、イ・サンファ選手の肩を抱いて“잘 했어(よく頑張ったよ!)” と韓国語で励ましたそうです。そう、二人はとても仲のよい友人だったのです。この様子を見た多くの観客は、この二人の姿に大変感動しました。

試合が終わるまではライバルでしたが、勝負が終われば親友に戻った姿が多くの人の胸を打ったからだと思います。

しかし、このような国境を超えた友情は、普通の人にはなかなか出来ません。外国の人と友達になるチャンスはそうそうありませんから。

でも、私たち金剛学園のみなさんはどうでしょう。韓国から来た友人もいれば、日本の友人もいます。その他の国から来た友人もいます。

みなさんは毎日国際交流をするチャンスに恵まれているわけです。ですから、この環境を活かして、皆さんは皆さんの友情の輪を世界に広げていくことができるのです。

교직원 신년 인사 教職員の新年のあいさつ

안녕하십니까? 201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지난 1월 6일 첫 직원회의 때, 저희 금강학원 교직원들에게 했던 인사말씀입니다.참고해 주시기 바라며, 올 한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アンニョンハセヨ? 2018年の新年があけました。先週の1月6日初職員会議の時に、金剛学園教職員の皆さんに申し上げた言葉です。皆さんも読んでください。今年も是非とも宜しくお願い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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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난 1년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러분들께 지난 1년은 어떠셨습니까?

돌이켜보면 2017년은 제게 가끔은 외롭고 힘든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보낸 한해였다고, 보람되고 후회 없는 1년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공중에서 5개의 공을 돌리는 저글링이라고 합니다.

각각의 공은 일, 가족, 건강, 친구, 그리고 나 자신이고요. 이 5개의 공이 공중에서 계속해서 돌아가는,,그게 인생이라는 겁니다.

그 중에 일이라는 공은 고무공이어서 떨어뜨리더라도 바로 튀어 오르는 것이 특징이라 합니다.

그러나 다른 4개의 공들(가족, 건강, 친구, 그리고 나 자신)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떨어뜨리게 되면 상처입고, 긁히고, 깨져서 다시는 전과 같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5개 공들이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성공하는 인생이라고 한다는데요.

그럼 어떻게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첫째.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함으로써 당신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각자는 모두 다르고 특별한 존재들이며, 우리 자신에겐 많은 잠재적인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 둘째, 우리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가끔 우리는 지나친 주인의식 때문에 내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남을 무시하기 쉽지만, 가끔은 내가 아니면 그 누군가 내 대신의 역할을 할 사람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셋째. 여러분들의 목표를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두지 말고, 자신에게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즉, 겉으로 보여지는 체면, 명예, 주변의 평가 등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본인의 의지가 있다면 그 의지를 가지고 묵묵히 최선을 다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랬을 때 이 5가지 공은 조화롭게 돌아간다고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가끔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너희가 하고 싶은 꿈에 ‘가난해도’이라는 말을 붙여도 여전히 그것을 하고 싶다면,,그게 바로 너희들의 진정한 꿈이라고요.

여러분께 ‘가난해도’라는 말을 붙여도 하고 싶은 일이 지금 현재 있으십니까?

작가가 되고 싶다. 근데 가난한 작가가 되고 싶다. 경찰관이 되고 싶다. 근데 가난해도 경찰관이 되고 싶다.. 그런 꿈을 갖기에는 우리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해도’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꿈을 향해 살라고 하기에는 좀 지나치지만,, 가난해도라는 말 대신에 ‘힘들어도’ 지금 당장은 ‘내 편이 없어도’ ‘내가 지금은 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여러분들이 학교생활에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꿈을 향해 열심히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때 대성각, 재일본한국인교육연구대회 위로회에서 한 말씀 기억하십니까? 사랑이란 말은 너무 추상적이라서..사랑 대신 존중 배려 감사를 한다면,,그게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고요.

올해 1년은..

내가 가진 아흔아홉 개를 더 채우기 위해 남으로부터 하나 더 뺏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에게 아흔아홉 개를 주더라도 남은 하나를 더 주는 그런 마음을 갖는 여러분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그게 바로 존중이고 배려이고,,그런 가운데 감사와 사랑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들을 ‘과거’라고 하지요. 과거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시간들을 특별히 우리는 ‘기억’이라고 합니다. 그 수많은 기억들 중에서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 순간들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추억들이 우리 마음을 다 따뜻하고 아름답게 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당시엔 너무 힘들고 괴로웠지만 시간이 지나고나니 추억이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어찌보면 우리가 말하는 추억들 중에는 시련의 시간들이 더 많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나중에 금강학원에서 보낸 우리의 시간들이 떠올리기도 싫은 과거의 기억들로만 남을지, 아니면 웃으면서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추억이 될지 그것은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적어도 후자 쪽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제 생각이며 그렇기에 더더욱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러시길 바랍니다.

아무쪼록 저도 최선을 다해 올해 1년도 여러분들을 지원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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皆さん、明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昨年は1年間、本当にお疲れ様でした。

皆さんにとって、昨年1年間はどのような年でしたしょうか。振り返ってみると、2017年は私にとっては、時には孤独でつらい時もありましたが、私なりに一生懸命に過ごした1年であり、充実した悔いのない1年だったと言えます。

ところで、人生は空中で回る5つのジャグリングだといいます。それぞれのボールは仕事と家族、健康、友達そして私自身だそうです。この5つのボールが空中で回り続ける、それが人生だというのです。

'仕事'というボールはゴムボールであり、落としてもすぐ飛び上がるのが特徴です。しかし、他の4つのボール(家族、健康、友達、そして私)はガラスで出来ていて、落としたら、傷つき、割れて、二度ともとのような状態にはなれないといいます。

この5つのボールが互いにバランスがとれるようにすれば、人生は成功するというのですが、では、どうしたらバランスを維持できるでしょうか。

第一に自分を他の人々と比較することで、あなた自身を過小評価しないでください。 なぜなら私たちはそれぞれ異なり特別な存在であり、われわれ自身には多くの潜在的な能力があるからです。

しかし、一方、第二に、われわれ自身をあまり過大評価もしないでください。時に私たちは、過度な自尊心のために私ではなければだめだと思って他人を無視しがちです。しかし、時には、私がいなくても、誰かが私の代わりをしてくれるものだというように考えてほしいと思います。

第三、皆さんが目標を持つ時には、他人の評価をあまり気になさらず、ご自身が一番大切だと思われることを目標にされるといいと思います。つまり、表に見えるメンツ、名誉、周囲の評価などを意識しすぎず、本人の意志が強いなら、その意志を持って黙々と最善を尽くしてくださったらと思います。

そうした時、この5つのボールはバランス良く回るそうです。

私が高校の時に、国語の先生がおっしゃった話が時々思い浮かぶことがあります。

君たちがやりたい夢に「貧しくても」という言葉をつけても、依然としてそれをしたいなら、それがまさに君たちの真の夢だという話です。

皆さんに「貧しくても」という言葉をつけてもやりたいことが今ありますか。作家になりたい。貧しくても画家になりたい。 警察官になりたい。 貧しくても警察官になりたい。 そんな夢を持つには、私たちは今あまりにも年を取ったと思います。

「貧しくても皆さんがしたいことがあるなら、その夢に向かって生きていってください」というとちょっと大げさですが、「貧しくても」という言葉の代わりに「大変でも」「今すぐは自分の味方がいなくても」「私が今は負けているように見えても」皆さんが学校生活でやりたいことがあるなら、その夢に向かって頑張っていただきたいと思います。

皆さんは私がデソンガクのお店で、在日本韓国人教育研究大会の慰労会でお話ししたこと覚えていらっしゃいますか。 愛と言う言葉はあまりにも抽象的なので、愛の代りに尊重、配慮、感謝をして生活したら、それがまさに愛するということだとお話しました。

最後に、今年は.

自分が99個持っているのに、他人からさらに1個を奪いとるのではなく、他人に99個与えたうえに、さらに最後の1個まで与えられる、そういう心を持つ皆さんになっていただきたいと思います。 それがまさに尊重であり、配慮であり、そういう中で感謝と愛が出てくるのだと思います。

最後にお話します。

私たちは過ぎ去った時間を'過去'と呼びます。その過去の中で忘れられない時間を特別に'記憶'と呼び、その数多くの記憶の中で我々の心を暖かくしてくれた時を'思い出'と呼んでおります。

ところで、全ての思い出が私たちの心を暖かくて美しくしてくれるものではないと思います。当時はとても耐えがたく、辛かったけれども、時間がたってみたら思い出になったケースもあるでしょう。ひょっとしたら、思い出のなかにはそういう試練の時間がもっと多かったかもしれません。

なぜこういうのを申し上げるかというと、後で金剛学園で過ごした我々の時間を思い出したくもない過去の記憶としてだけ残すか、それとも笑顔で思い浮かべられる微笑ましい良い思い出になるか、それは時間が経ってみたら分かるでしょうが、少なくとも後の方にしたいのが自分の意志であり、だからこそ毎日毎日を最善を尽くしてやっていくのです。皆さんも是非そうしていただきたいと思います。

どうか、私も最善を尽くして今年1年皆さんを支援して尊重し、配慮しながら、愛します。どうか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소처럼 묵상[默想:meditation]하라!!

소와 양, 염소, 낙타 등은 되새김질하는 동물들이다. 이러한 동물들은 네 개의 위를 가지고 있다.젖소가 풀을 뜯을 때는 아침 일찍 풀밭으로 나가 마치 잔디를 깎는 기계처럼 풀에 머리를 대고 누가 방해만 하지 않으면 결코 고개를 들지 않는다.

젖소는 먹는 일에 완전히 집중을 한다.처음에는 먹이를 적당히 씹어서 삼킨다.그리고 10시쯤 되어 해가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그늘에 누워서 첫 번째 위로부터 음식을 조금씩 입으로 토해낸다. 그리고 그것을 철저히 씹는다.그리고나서 음식은 둘째, 셋째, 넷째 위로 보내진다. 그리고 마침내 소화된 음식물은 피 속에 흡수되어 말 그대로 젖소의 생명력의 원천이 된다.

인도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 휴버트 미첼 목사는 매일 아침 마을 근처 농장을 산책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런데 매일 산책을 할 때마다 소들이 자리에 서서 무언가를 계속 먹고 있기에 근처의 농부에게 물어보았더니 되새김질을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다음날, 그 다음날도 소는 정확히 미첼 목사님이 산책을 하는 시간에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계를 가져와서 시간을 재봤는데 소는 매일 같은 시간에 되새김질을 시작해 정확히 55 초씩 씹고 음식물을 다시 삼키는 것을 알았다.

1초의 오차도 없을 만큼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되새김질이 아닌가? 소가 되새김질하는 것이 마치 타이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정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목사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 나의 묵상도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하루의 상황과 컨디션에 상관없이 언제나 정확하게 성경 말씀을 읽고 또 묵상하는 것이 삶의 습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깨달음이었다.

소는 필요한 영양을 흡수할 만큼 정확한 시간을 되새김질을 통해 얻는다.우리도 매일 하루를 살아갈 영혼의 양식을 위해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소와 같이 매일 충분한 시간을 통해 묵상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할 것이다.

牛のように黙想[meditation]しなさい!!

牛や羊、ヤギ、ラクダなどは反芻する動物である。このような動物たちは四つの胃を持っている。乳牛が草を食べる時は朝早く草原に出て、まるで芝生を刈る機械のように芝生に頭を当てて誰かが邪魔さえしなければ決して頭をもたげようとしない。

乳牛は食べることに完全に集中する。最初は餌を適当にかんで飲み込む。そして10時ぐらいになると日差しが強くなり始め、日除けで横になって最初の胃から物を少しずつ口に戻す。そしてそれを徹底的に噛む。そうして食べ物は第二、第三、第四の胃に送られる。そして、つい消化された食べ物は血の中に吸収され、言葉そのまま乳牛の生命力の源泉になる。

インドで宣教をしているヒューバト・ミッチェル牧師は、毎朝村の近くの農場を散歩しながら一日を始めるという。 ところが毎日散歩をする度に牛が立って何かをずっと食べているのを見て、近くの農夫に聞いてみたところ、反芻をするのだと教えてくれた。その翌日も、その翌日も、牛は正確にミッチェル牧師が散歩をする時間帯に反芻をしていた。 もしかしたらと思い、時計を持ってきて時間を計ってみたら、牛は毎日同じ時間に反芻をし、正確に55秒ずつ噛んで食べ物を飲み込むことが分かった。

1秒の誤差もないほど正確に行われる反芻だった。牛の反芻がまるでタイマーを持っているかのように正確であるという事実を知った牧師は、大きな悟りを得たのである。

‘あ、私の黙想もこのような姿でなければならない。一日の状況とコンディションに関係なく、常に正確に聖書の教えを読み、また黙想するのが人生の習慣に繋が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悟りだった。

牛は、必要な栄養を吸収するのに要する正確な時間を、反芻を通じて得られる。私たちも毎日、一日を生きていく魂に向け、最小限の時間を投資しなければならない。牛と同様に、毎日十分な時間を通じて黙想し、自らを振り返る時間を必ず持つべきであ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