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이원화 記憶の二元化

<기억의 이원화>

오래간만에 이 방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처음 각오로는 매달 한번씩 글을 올려야지 싶었는데.. 조용히 앉아서 커피 한잔을 마실 시간이 없을 정도로 매일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레 글을 올리는 것도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보면 가끔 제 기억과 상대방 기억에 차이가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느 쪽인가가 착각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잘못된 기억을 머릿속에 입력시키고 완전히 그것이 사실인양 본인 머릿속에 정착화 시킬 때가 많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경우 이외에, 내 안에서 이원화되는 기억을 바라보곤 합니다.

우리가 ‘겪었던’ 과거라는 시간과,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가 가끔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말입니다.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사실인 ‘팩트’인데, 가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과거에 인간의 독특한 왜곡된 생각을 집어넣어 과거와는 조금 다른 사실로 기억하곤 합니다.

때로는 지난 과거가 사실보다 더 미화되기도, 때로는 지난 과거가 사실보다 더 나쁘게 변질되어 슬픈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이 나에 대해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되듯이, 지금의 나도 과거의 나에 대해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때의 나는 그렇게 해야만 했던 것이지요.

저 역시 이곳 금강에서 학교장으로서 근무하면서 판단한 여러 일들이, 후대에 어떻게 판단될지 모르나 그때의 저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그 당시에는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후대에 이해해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제 마음이 조금은 편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여러분들이 하셨던 행동들과 신념들에 있어 강한 확신을 가지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그 행동이 정말 좋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먼저 본인 스스로 그 신념에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주변 선배들이나 동료, 가족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조언을 구한다는 것, 꽤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용기를 내어 조언을 구할 때, 주변 선배나 동료, 가족들은 솔직한 객관적 평가를 해주고 어드바이스해 줄 수 있는 그런 우리 금강가족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금강 가족 여러분!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테리이며, 그리고 오늘은 선물이라고 합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버려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고 내일 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이라는 시간은 확실하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우리에게 주어진 이 ‘현재’를 감사히 여기면서 멋지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막막해보여도 분명 우리들의 길은 가장 아름다운 곳을 향해 뻗어 있을 겁니다.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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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憶二元化>

この部屋に入るのは久しぶりですね。初めは毎月一回ずつ掲載する予定だったのですが、、、

静かに座ってコーヒー一杯さえ飲む時間がないほど、毎日忙しく生活しているうちに、自然と遠ざかってしまいました。

仕事をし、そして多くの人と会っていると、たまに自分の記憶と相手の記憶に食い違いのあることがあります。どちらかが勘違いをしているか、あるいは間違って覚えているからでしょう。 私もそのようなことがしばしばあります。

時には、自分の中でさえ、記憶が不確かになることがあります。過去を美化して記憶していたり、反対に、実際にあった以上に悪く記憶してしまうこともあります。

しかし、今の記憶がどうあれ、その時の私はそうするしかなかっただろうし、その時はそれが最善だと思って、したのだろうと思います。

私もここ金剛で、学校長として勤務しながら判断したいろいろな事が、後からどう評価されるかわかりませんが、その時の私はそうするしかなかった、その当時は最善の決定だったと理解していただけることを望むだけです。

そう思うことで気持ちは楽になります。

この文を読んでいる皆さんも、何か迷うことあっても、信念と確信を持って行動なさるといいと思います。時にはその判断が間違っている時もあるかもしれません。そんな時は周囲の人に相談なさるといいと思います。

アドバイスを求めるのも時には勇気が必要ですが、金剛の家族はきっと親身になって相談に乗ってくれると思います。

愛する金剛の家族の皆さん!

昨日はヒストリーであり、明日はミステリーであり、そして今日はプレゼントだと言います。昨日はすでに過ぎてしまって二度と帰ってこない。明日は何が起こるか分からない。

しかし、今日という時間は確実に私たちに与えられている。だから、私たちは現在(present)をプレゼント(present)だと言うのでしょう。私たちに与えられたこの「現在」を有難く思いながら充実した「今日」を過ごそうではありませんか!

今ははるか遠くに見えますが、きっと私たちの道は最も美しいところに向けて伸びているでしょう。 ファイティング!

금강은 변화하고 있다

‘변화’란 무엇일까? 어떤 책에서, ‘변화’의 정의는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큰 고통을 감내하고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이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핵심은 세 가지다. ‘원하는 것’, ‘고통 감내’, ‘새로운 습관’.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교육부에서 근무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선발되어 재외 한국학교 교장으로 발령받아 출국하는 여러 훌륭하신 교장들을 봐왔고, 한편 불미스러운 일로 안타깝게 소환되거나 임기를 못 마치고 돌아오는 기관장들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기도 했다.

2016년 8월 금강학원 교장으로 선발된 나는, 금강이라는 학교를 일본 내 최고의 학교로 만들 수 있다는 커다란 ‘자신감’이라는 녀석을 데리고 당당히 일본에 건너왔다. 첫 여성 교장으로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잘 활용하여 열심히 하다보면 어떻게든 멋진 결과가 나올 거라는 왠지 모를 당당한<?> 자신감이 내 머리와 가슴 속에 든든히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이제 내 임기 중 반이 훌쩍 지나가고 4개월이 더 지나갔다. 처음에 그렇게 당당히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던 자신감이라는 녀석은 어느 순간 어딘가로 가버리고, 점점 주눅 들어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거울 속에 많이 비쳐졌다.

니시나리에서 난코로 오면서 지리적인 이유 등으로 학생 수가 반 이상 줄어들고 있는 우리 금강학원이지만, 능력 자체보다 적극적인 성격과 노력 하나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나이기에 그깟 학생 수는 금방 늘어날 것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지난 1년 반 동안 최선을 다해 생활해 왔다. 자리에 멋지게 앉아 결재만 하는 교장은 되고 싶지 않아서 그 누구보다 빨리 출근했고 열심히 발로 뛰고 릴레이 회의를 하면서 많은 부분을 바꿔가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결과는 빨리 나타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은 충분히 느끼고 있고, 같이 근무하는 교직원들도 교장을 잘 따라주고 평생 같이 근무하고 싶다고 말을 할 정도로 레포도 충분히 형성되었건만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에 조금씩 답답해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교사시절, 공부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무기력해진 학생들에게, 눈앞에 보이는 자그마한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꿈을 크게 가지고 열심히 전력하라고 말하던 나였는데,, 그건 내 마음속 영혼의 울림 없는 설교였던 것일까.

모처럼 평화롭고 조용한 토요일(5월 12일) 아침을 맞았다. 무심한 아들 녀석은 엄마를 홀로 두고 멀리 효고현에 있는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 타고난 막내 기질 탓인지 외로움과 고독이 무척이나 싫은 나의 발걸음은 어느 순간 학교로 향해 있었다.

교장실에 걸려진 역대 교장님들의 사진을 다시금 올려보았다. 다들 어떤 심정으로 교장실에 앉아 일을 하셨을까. 다들 웃으면서 인자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래, 윤 교장, 우리들이 지켜줄테니 잘 해봐. 우리가 못 이룬 꿈까지 꼭 이루란 말이야! 금강은 서서히 지금 변화하고 있어. 윤 교장 자신을 믿어봐”

그렇다. 금강은 확실히 ‘변화’하고 있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변화에도 순서가 필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키겠다는 목표를 간절히 세우고,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며, 그 결과로 얻어지는 새로운 습관을 완전한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 즉, 변화는 땀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 다시금 시작이다. 변화, 변혁..그리 쉽게 결과를 주지 않는 녀석들이다. 그래도 먼 미래의 멋진 금강의 모습을 상상하며, 끈질기게 원하면서, 그 과정 속의 힘든 여러 부분들을 잘 이겨내면서, 새로운 습관에 익숙해지다 보면 분명 우리 금강학원에 밝고 멋진 미래가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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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わっていく>

‘変化’とは何だろうか。ある本によると‘変化’の定義は「切実に望んでいる事をかなえるには大きな苦痛に耐え、新しい習慣を作ることだ」という。

ポイントは三つである。「望むこと」、「苦痛に耐えること」そして「新しい習慣」。このうち一つでも欠けたら変化は起きないそうだ。

教育部で勤務しながら、全国各地から選ばれ、在外韓国学校の校長として任命され出国する、多くの立派な校長たちを見てきたが、一方、よからぬことで残念ながら召還されたり、任期まで終えず途中で帰ってくる校長たちを見ながら心を痛めたりもした。

2016年8月、金剛学園の校長に選抜された私は、金剛という小さな学校を日本で最高の学校に作り上げ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大きな「自信」とともに堂々と日本に渡ってきた。初の女の校長としてソフトなカリスマ性をうまく活用して、一生懸命にやれば何とかいい結果が出るだろうという何とも言えない自信が私の頭と胸の中にしっかりと定着していたようだ。

もう私の任期の半分があっという間に過ぎ、さらにそれから4ヵ月以上が過ぎてしまった。

はじめのうちこそ堂々としていた私の自信というやつはいつの間にか、どこかへ行ってしまい、だんだんいじけて悩んで苦しんでいる自分の姿が鏡の中に多く映った。

西成区から南港に移転してきて地理的な理由などで、生徒数が半分以上減っている金剛ではあるが、能力はともかく積極的な性格と努力だけは誰にも負けない自分なので、生徒数なんかすぐに増えるものとあまりにも高をくくっていたような気がする。

今まで1年半の間、最善を尽くして生活してきた。椅子にカッコよく座って決裁ばかりする校長にはなりたくなかったので、誰よりも早く出勤し、熱心に走り回り、リレー会議をしながら多くの部分を変えていこうと努力した。しかし、結果はすぐには自分の前に現れてくれなかった。外から見てわからなくても、内側から少しずつ変わっていってるのは十分に感じられ、一緒に勤務する教職員たちも、校長によく従って「一生一緒に勤務したい」と言ってくれるほど良い関係も十分に形成されてはいるが、目に見えるはっきりとした結果が現われないことに、少しずつイライラする自分自身を発見したりした。

教師時代、勉強の成果が出ないといって挫折したり無気力になっている生徒に、目の前に見える小さな結果に一喜一憂せず、夢を大きく持って一生懸命努力しろと言っていた私だったのに…それは私の心からの言葉ではない、ただの虚しい説教だったのだろうか。

せっかく平和で穏やかな土曜日(5月12日)の朝を迎えたのに、無情な息子は母を家に一人置いて遠く兵庫県にいる友達の家に遊びに行った。生まれつきの末っ子気質のせいか寂しさと孤独がとても嫌な私は、いつの間にか学校に行く準備をしていた。

校長室にかかげてある歴代校長たちの写真を再び見上げてみた。みんなどんな心境で校長室に座って仕事をしたのだろうか。みんな笑いながら慈悲深く私を眺めている。「そう、尹校長、俺たちが見守ってあげるから、頑張ってやってみなさい。俺たちが実現できなかった夢を必ず成し遂げてくれ! 金剛は徐々に今変化しているよ。尹校長、自分自身を信じなさい!」

そうだ。金剛は確実に「変化」している。冒頭で言ったように変化にも順番がある。何をどのように変化させるかという目標を明確に立てて、その目標に至るための不断の努力と忍耐が必要であり、その結果として得られる新たな習慣を完全に自分のものにする作業。つまり、変化とはは汗を要求するものなのである。

そうだ。再び始めてみよう。変化、変革はそれほど簡単には結果を与えないやつらだ。それでも遠くの未来にあるすばらしい金剛の姿を想像して粘り強く求めながら、そこに至る過程がどんなに困難でも、新たな習慣に慣れていくうちに、確実はいつかはわが金剛学園に明るくて素晴らしい未来が訪れることと確信する。 ファイト!

뜨거운 우정! あつい友情!

여러분, 일전의 평창올림픽을 텔레비전에서 많이 봤을 것입니다.

스피드스케이팅 500미터에서 일본의 고다이라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것을 보셨나요? 한국의 이상화 선수가 은메달을 땄습니다. 이상화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금메달을 못따서 분해서 울었을까요? 모국에서 올림픽이 열렸는데 기대에 못미쳐서 울었을까요? 인터뷰에서 드디어 끝났구나..하는 안도감으로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아마 여러 복합적인 감정, 생각들이 났을 겁니다.

그걸 본 고다이라선수가 가까이 다가가서 “잘했어”라고 한국어로 격려를 했습니다. 둘은 매우 사이좋은 친구였습니다. 이걸 본 많은 관객들은 큰 감동과 함께 더 큰 박수를 쳤습니다. 시합이 끝날 때까지는 라이벌이었지만, 승부가 끝난 후에는 다시 친구사이로 돌아온 그 모습이 감동을 주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국경을 넘은 우정은 보통사람에게는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외국 사람과 친구가 되는 찬스는 잘 없으니까요

그러나 우리 금강학원 친구들은 어떨까요? 한국에서 온 친구도 있고 일본, 또 제3국의 친구들도 있어요. 우리 모두 매일 국제교류를 하는 기회가 많이 있는 이 환경, 얼마나 복받은 일인가요? 그러므로 이런 환경을 잘 살려 우리 모두의 우정의 끈을 더 넓혀갈 수 있습니다.

국경이란 것은 어른들이 만든 경계선입니다. 그러나 우리 친구들에게는 경계선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올림픽이 평화의 제전인 것처럼 이 금강학원의 친구라는 끈이 세계로 넓혀져서, 온 세계가 평화롭게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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皆さんは、今回の韓国の平昌オリンピックの時に、日本の小平奈緒選手がスピードスケート500メートルで金メダルを取ったことをよくご存じだと思います。

そして韓国のイ・サンファ選手が銀メダルでした。イ・サンファ選手は、ゴールした後、ひどく泣きくずれてしまいました。

負けた悔しさだったのでしょうか。地元開催のオリンピックなのに、期待に答えられなかったからでしょうか。目を真っ赤にして涙を流していました。

それを見た小平選手は近づいていって、イ・サンファ選手の肩を抱いて“잘 했어(よく頑張ったよ!)” と韓国語で励ましたそうです。そう、二人はとても仲のよい友人だったのです。この様子を見た多くの観客は、この二人の姿に大変感動しました。

試合が終わるまではライバルでしたが、勝負が終われば親友に戻った姿が多くの人の胸を打ったからだと思います。

しかし、このような国境を超えた友情は、普通の人にはなかなか出来ません。外国の人と友達になるチャンスはそうそうありませんから。

でも、私たち金剛学園のみなさんはどうでしょう。韓国から来た友人もいれば、日本の友人もいます。その他の国から来た友人もいます。

みなさんは毎日国際交流をするチャンスに恵まれているわけです。ですから、この環境を活かして、皆さんは皆さんの友情の輪を世界に広げていくことができるのです。

교직원 신년 인사 教職員の新年のあいさつ

안녕하십니까? 201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지난 1월 6일 첫 직원회의 때, 저희 금강학원 교직원들에게 했던 인사말씀입니다.참고해 주시기 바라며, 올 한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アンニョンハセヨ? 2018年の新年があけました。先週の1月6日初職員会議の時に、金剛学園教職員の皆さんに申し上げた言葉です。皆さんも読んでください。今年も是非とも宜しくお願い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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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난 1년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러분들께 지난 1년은 어떠셨습니까?

돌이켜보면 2017년은 제게 가끔은 외롭고 힘든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보낸 한해였다고, 보람되고 후회 없는 1년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공중에서 5개의 공을 돌리는 저글링이라고 합니다.

각각의 공은 일, 가족, 건강, 친구, 그리고 나 자신이고요. 이 5개의 공이 공중에서 계속해서 돌아가는,,그게 인생이라는 겁니다.

그 중에 일이라는 공은 고무공이어서 떨어뜨리더라도 바로 튀어 오르는 것이 특징이라 합니다.

그러나 다른 4개의 공들(가족, 건강, 친구, 그리고 나 자신)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떨어뜨리게 되면 상처입고, 긁히고, 깨져서 다시는 전과 같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5개 공들이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성공하는 인생이라고 한다는데요.

그럼 어떻게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첫째.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함으로써 당신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각자는 모두 다르고 특별한 존재들이며, 우리 자신에겐 많은 잠재적인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 둘째, 우리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가끔 우리는 지나친 주인의식 때문에 내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남을 무시하기 쉽지만, 가끔은 내가 아니면 그 누군가 내 대신의 역할을 할 사람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셋째. 여러분들의 목표를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두지 말고, 자신에게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즉, 겉으로 보여지는 체면, 명예, 주변의 평가 등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본인의 의지가 있다면 그 의지를 가지고 묵묵히 최선을 다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랬을 때 이 5가지 공은 조화롭게 돌아간다고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가끔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너희가 하고 싶은 꿈에 ‘가난해도’이라는 말을 붙여도 여전히 그것을 하고 싶다면,,그게 바로 너희들의 진정한 꿈이라고요.

여러분께 ‘가난해도’라는 말을 붙여도 하고 싶은 일이 지금 현재 있으십니까?

작가가 되고 싶다. 근데 가난한 작가가 되고 싶다. 경찰관이 되고 싶다. 근데 가난해도 경찰관이 되고 싶다.. 그런 꿈을 갖기에는 우리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해도’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꿈을 향해 살라고 하기에는 좀 지나치지만,, 가난해도라는 말 대신에 ‘힘들어도’ 지금 당장은 ‘내 편이 없어도’ ‘내가 지금은 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여러분들이 학교생활에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꿈을 향해 열심히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때 대성각, 재일본한국인교육연구대회 위로회에서 한 말씀 기억하십니까? 사랑이란 말은 너무 추상적이라서..사랑 대신 존중 배려 감사를 한다면,,그게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고요.

올해 1년은..

내가 가진 아흔아홉 개를 더 채우기 위해 남으로부터 하나 더 뺏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에게 아흔아홉 개를 주더라도 남은 하나를 더 주는 그런 마음을 갖는 여러분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그게 바로 존중이고 배려이고,,그런 가운데 감사와 사랑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들을 ‘과거’라고 하지요. 과거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시간들을 특별히 우리는 ‘기억’이라고 합니다. 그 수많은 기억들 중에서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 순간들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추억들이 우리 마음을 다 따뜻하고 아름답게 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당시엔 너무 힘들고 괴로웠지만 시간이 지나고나니 추억이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어찌보면 우리가 말하는 추억들 중에는 시련의 시간들이 더 많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나중에 금강학원에서 보낸 우리의 시간들이 떠올리기도 싫은 과거의 기억들로만 남을지, 아니면 웃으면서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추억이 될지 그것은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적어도 후자 쪽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제 생각이며 그렇기에 더더욱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러시길 바랍니다.

아무쪼록 저도 최선을 다해 올해 1년도 여러분들을 지원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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皆さん、明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昨年は1年間、本当にお疲れ様でした。

皆さんにとって、昨年1年間はどのような年でしたしょうか。振り返ってみると、2017年は私にとっては、時には孤独でつらい時もありましたが、私なりに一生懸命に過ごした1年であり、充実した悔いのない1年だったと言えます。

ところで、人生は空中で回る5つのジャグリングだといいます。それぞれのボールは仕事と家族、健康、友達そして私自身だそうです。この5つのボールが空中で回り続ける、それが人生だというのです。

'仕事'というボールはゴムボールであり、落としてもすぐ飛び上がるのが特徴です。しかし、他の4つのボール(家族、健康、友達、そして私)はガラスで出来ていて、落としたら、傷つき、割れて、二度ともとのような状態にはなれないといいます。

この5つのボールが互いにバランスがとれるようにすれば、人生は成功するというのですが、では、どうしたらバランスを維持できるでしょうか。

第一に自分を他の人々と比較することで、あなた自身を過小評価しないでください。 なぜなら私たちはそれぞれ異なり特別な存在であり、われわれ自身には多くの潜在的な能力があるからです。

しかし、一方、第二に、われわれ自身をあまり過大評価もしないでください。時に私たちは、過度な自尊心のために私ではなければだめだと思って他人を無視しがちです。しかし、時には、私がいなくても、誰かが私の代わりをしてくれるものだというように考えてほしいと思います。

第三、皆さんが目標を持つ時には、他人の評価をあまり気になさらず、ご自身が一番大切だと思われることを目標にされるといいと思います。つまり、表に見えるメンツ、名誉、周囲の評価などを意識しすぎず、本人の意志が強いなら、その意志を持って黙々と最善を尽くしてくださったらと思います。

そうした時、この5つのボールはバランス良く回るそうです。

私が高校の時に、国語の先生がおっしゃった話が時々思い浮かぶことがあります。

君たちがやりたい夢に「貧しくても」という言葉をつけても、依然としてそれをしたいなら、それがまさに君たちの真の夢だという話です。

皆さんに「貧しくても」という言葉をつけてもやりたいことが今ありますか。作家になりたい。貧しくても画家になりたい。 警察官になりたい。 貧しくても警察官になりたい。 そんな夢を持つには、私たちは今あまりにも年を取ったと思います。

「貧しくても皆さんがしたいことがあるなら、その夢に向かって生きていってください」というとちょっと大げさですが、「貧しくても」という言葉の代わりに「大変でも」「今すぐは自分の味方がいなくても」「私が今は負けているように見えても」皆さんが学校生活でやりたいことがあるなら、その夢に向かって頑張っていただきたいと思います。

皆さんは私がデソンガクのお店で、在日本韓国人教育研究大会の慰労会でお話ししたこと覚えていらっしゃいますか。 愛と言う言葉はあまりにも抽象的なので、愛の代りに尊重、配慮、感謝をして生活したら、それがまさに愛するということだとお話しました。

最後に、今年は.

自分が99個持っているのに、他人からさらに1個を奪いとるのではなく、他人に99個与えたうえに、さらに最後の1個まで与えられる、そういう心を持つ皆さんになっていただきたいと思います。 それがまさに尊重であり、配慮であり、そういう中で感謝と愛が出てくるのだと思います。

最後にお話します。

私たちは過ぎ去った時間を'過去'と呼びます。その過去の中で忘れられない時間を特別に'記憶'と呼び、その数多くの記憶の中で我々の心を暖かくしてくれた時を'思い出'と呼んでおります。

ところで、全ての思い出が私たちの心を暖かくて美しくしてくれるものではないと思います。当時はとても耐えがたく、辛かったけれども、時間がたってみたら思い出になったケースもあるでしょう。ひょっとしたら、思い出のなかにはそういう試練の時間がもっと多かったかもしれません。

なぜこういうのを申し上げるかというと、後で金剛学園で過ごした我々の時間を思い出したくもない過去の記憶としてだけ残すか、それとも笑顔で思い浮かべられる微笑ましい良い思い出になるか、それは時間が経ってみたら分かるでしょうが、少なくとも後の方にしたいのが自分の意志であり、だからこそ毎日毎日を最善を尽くしてやっていくのです。皆さんも是非そうしていただきたいと思います。

どうか、私も最善を尽くして今年1年皆さんを支援して尊重し、配慮しながら、愛します。どうか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소처럼 묵상[默想:meditation]하라!!

소와 양, 염소, 낙타 등은 되새김질하는 동물들이다. 이러한 동물들은 네 개의 위를 가지고 있다.젖소가 풀을 뜯을 때는 아침 일찍 풀밭으로 나가 마치 잔디를 깎는 기계처럼 풀에 머리를 대고 누가 방해만 하지 않으면 결코 고개를 들지 않는다.

젖소는 먹는 일에 완전히 집중을 한다.처음에는 먹이를 적당히 씹어서 삼킨다.그리고 10시쯤 되어 해가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그늘에 누워서 첫 번째 위로부터 음식을 조금씩 입으로 토해낸다. 그리고 그것을 철저히 씹는다.그리고나서 음식은 둘째, 셋째, 넷째 위로 보내진다. 그리고 마침내 소화된 음식물은 피 속에 흡수되어 말 그대로 젖소의 생명력의 원천이 된다.

인도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 휴버트 미첼 목사는 매일 아침 마을 근처 농장을 산책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런데 매일 산책을 할 때마다 소들이 자리에 서서 무언가를 계속 먹고 있기에 근처의 농부에게 물어보았더니 되새김질을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다음날, 그 다음날도 소는 정확히 미첼 목사님이 산책을 하는 시간에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계를 가져와서 시간을 재봤는데 소는 매일 같은 시간에 되새김질을 시작해 정확히 55 초씩 씹고 음식물을 다시 삼키는 것을 알았다.

1초의 오차도 없을 만큼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되새김질이 아닌가? 소가 되새김질하는 것이 마치 타이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정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목사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 나의 묵상도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하루의 상황과 컨디션에 상관없이 언제나 정확하게 성경 말씀을 읽고 또 묵상하는 것이 삶의 습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깨달음이었다.

소는 필요한 영양을 흡수할 만큼 정확한 시간을 되새김질을 통해 얻는다.우리도 매일 하루를 살아갈 영혼의 양식을 위해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소와 같이 매일 충분한 시간을 통해 묵상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할 것이다.

牛のように黙想[meditation]しなさい!!

牛や羊、ヤギ、ラクダなどは反芻する動物である。このような動物たちは四つの胃を持っている。乳牛が草を食べる時は朝早く草原に出て、まるで芝生を刈る機械のように芝生に頭を当てて誰かが邪魔さえしなければ決して頭をもたげようとしない。

乳牛は食べることに完全に集中する。最初は餌を適当にかんで飲み込む。そして10時ぐらいになると日差しが強くなり始め、日除けで横になって最初の胃から物を少しずつ口に戻す。そしてそれを徹底的に噛む。そうして食べ物は第二、第三、第四の胃に送られる。そして、つい消化された食べ物は血の中に吸収され、言葉そのまま乳牛の生命力の源泉になる。

インドで宣教をしているヒューバト・ミッチェル牧師は、毎朝村の近くの農場を散歩しながら一日を始めるという。 ところが毎日散歩をする度に牛が立って何かをずっと食べているのを見て、近くの農夫に聞いてみたところ、反芻をするのだと教えてくれた。その翌日も、その翌日も、牛は正確にミッチェル牧師が散歩をする時間帯に反芻をしていた。 もしかしたらと思い、時計を持ってきて時間を計ってみたら、牛は毎日同じ時間に反芻をし、正確に55秒ずつ噛んで食べ物を飲み込むことが分かった。

1秒の誤差もないほど正確に行われる反芻だった。牛の反芻がまるでタイマーを持っているかのように正確であるという事実を知った牧師は、大きな悟りを得たのである。

‘あ、私の黙想もこのような姿でなければならない。一日の状況とコンディションに関係なく、常に正確に聖書の教えを読み、また黙想するのが人生の習慣に繋が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悟りだった。

牛は、必要な栄養を吸収するのに要する正確な時間を、反芻を通じて得られる。私たちも毎日、一日を生きていく魂に向け、最小限の時間を投資しなければならない。牛と同様に、毎日十分な時間を通じて黙想し、自らを振り返る時間を必ず持つべきである。

 

<교육부 추억①-教育部での思い出①>

※本文(韓国語)に続いて日本語訳がございます。ご覧下さい。

 

2003년 3월, ‘교사’에서 전직하여, 한국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교육부」라는 정부조직에 들어가서 12년을 근무하면서 참으로 다양한 일을 접했고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맡았던 여러 업무 중 가장 보람되면서도 한편 가장 힘들었던 일이 학적을 담당한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학교생활기록부’(일본의 ‘지도요록’에 해당)의 민원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담임이 작성하는 ‘종합의견’란의 내용이 대학 입시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학부모들이 정정을 요청하는 민원이 다반사이긴 하나, 결국 담임과 학교측이 정정을 거부하여 소송으로까지 번진 건도 적지 않으며, 그 외에도 학교 간 경쟁으로 학생부 기록 부풀리기, 담임이 학부모로부터 뇌물을 받고 학생의 성적을 조작한 민원 등, 셀 수 없는 여러 사례를 봐왔다.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는 말 그대로 학생의 학교생활 및 학적을 기록한 장부이다. 즉, 학교 성적뿐만 아니라 학교에서의 특별 활동, 행동 특성, 신체적 발달 사항 등이 기록된다. 정확히는 「초·중등교육법」 제25조의 규정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 성격은 법정 장부로서 반드시 작성해야 하는 강제성이 있다. 주로 학급의 담임교사에 의해 작성되며, 작성된 결과는 학생의 교수-학습 지도 자료로 활용함과 동시에,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학생활동 결과를 입력하여 학생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자료이므로, 상급학교의 진학, 취업 등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최근 각 대학이 학생부로 심사하는 비율을 높이면서(소위 ‘학생부 종합전형’), 학생부의 기록이 결국 대학 합격으로 연결된다는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학부모와 학생들의 학생부에 대한 관심 증대는 물론 그에 따른 민원은 정말 엄청났다.

실제 2018학년도 4년제 대학의 전체 모집인원 중 74%는 수시전형인데, 그 중 학생부로만 보는 전형이 83%일 정도로, 학생부가 대세는 대세인 것이다.

 

당연히 사교육 시장도 ‘학생부 종합전형’을 위한 맞춤형 컨설팅으로 바뀌고 있다.

교육부 근무 당시 과장님 지시로 입시학원에서 실제 컨설팅을 어떻게 하는지 가보라고 하여, 소위 잘 나간다는 서울 강남의 한 컨설팅 학원의 갔을 때의 일이다.

“동아리는 ‘학생부의 꽃’이다”

강단에 서 있는 강사가 동아리는 ‘학생부의 꽃’ 이라고 외치자, 앉아 있던 학부모들도 다 함께 그 말을 구호처럼 외친다. 그 광경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이는 고교시절 동아리활동이 학생부에 반영, 기록되므로, 동아리와 관련한 스펙도 잘 고려해서 써야한다는 말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고등학생들의 소논문 쓰기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애플리케이션 만들기가 대세다.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한 스펙도 유행이 있는데 강남의 사교육이 이 유행을 선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교육부가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해 학생부에 학교밖에서 하는 소논문활동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자, 이제 사교육 시장은 교내 활동으로 손을 뻗쳤다. 그게 바로 동아리활동인 것이다.

 

동아리도 우리들이 학창시절 활동했던 그 동아리가 아니다. 단순히 학생들끼리 모여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남들과 다른 차별성을 갖춘 그 뭔가를 창출해 내고 그걸 학생부에 적어야만 학생부 종합전형을 위한 ‘스펙’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학원을 다닐 수 있는 학생들이 소수라는 것이다. 이러한 학원의 수강료가 과연 얼마라고 생각하는가?

가장 비싼 과목은 200만원이 넘는다. 한 과목일 경우이다. 이런 비싼 컨설팅을 받지 않아도 수험생 본인의 실력이 뛰어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면 좋겠지만, 2017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들의 자녀들에겐 너무 힘든 상황일 것이다.

실제 우리 친언니 아이가 이번에 고3인데, 강남의 유명한 학원에서 컨설팅을 받고 큰 마음 먹고 신청하려고 했다가, 3과목에 1천만 원이라는 말을 듣고 눈물을 머금고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교육부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지난 8월 브리핑에서 학생부 종합전형 개선방안도 언급했다.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수 있도록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고, 사교육 유발요소도 대폭 개선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실제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정도의 효율적인 개선이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한국의 이런 상황에 비하면 일본에 부임하여 느낀 것 중 가장 큰 충격은, 일본의 경우 학교에서 기록하는 ‘지도요록’이나 ‘학교 성적’에 그다지 한국처럼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이 너무 과했기 때문에 거기에 적응되어 상대적으로 놀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한국 교사들은 학생부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그에 따른 잡무도 많다.

물론 우리 금강학원 선생님들을 보면 지도요록이나 성적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여러 다양한 행사와 교육활동 등으로 늘 늦게까지 일하고 계시니, 교장으로서는 늘 죄송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가 교실에서 하는 ‘수업’임과 동시에 학생들에의 ‘상담 및 생활지도’이다. 이것 없이 공교육을 바로 세울 수 없다.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

그러한 ‘행복교육’의 실현이,,, ‘공교육’을 통해 가능해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

 

 

<<教育部での思い出>>

2003年3月、’教師’から転職して、韓国教育の政策を立案する「教育部」という政府組織に入って12年間勤めながら実に様々な業務に接してきたし、多くの人たちに会ってきた。

受け持ったいろんな業務のうち一番やり甲斐を感じながら一方では最も大変だった仕事が学籍の担当の仕事だった。その中でも’学校生活記録簿'(日本の’指導要録’に該当)への国民の苦情は、本当に想像を絶するものだった。

 

担任が作成する’総合意見’欄の内容が大学入試に不利に作用するということで保護者が訂正を要請するクレームは日常茶飯事ではあるが、結局、担任と学校側が訂正を拒否して訴訟にまで広がった件も少なくない。これ以外も学校間競争で指導要録の記録の水増し、担任が保護者から賄賂を受け取って学生の成績を捏造した件など、数え切れない多くの事例を見てきた。

 

学校生活記録簿の重要性

学校生活記録簿(以下’指導要録’)はその言葉通り生徒の学校生活や学籍を記録した帳簿である。つまり、学校の成績だけではなく、学校での部活動、行動の特性、身体的な発達事項などが記録される。正確には”小․中等教育法”第25条の規定に基づいており、その性格は法定帳簿として必ず作成しなければならない強制性がある。主に、当該生徒が所属したクラスの担任教師によって作成され、その結果は、生徒の教授-学習指導資料として活用するとともに、学校で行われている大半の学生活動の結果を入力し生徒を総体的に理解する資料になるので、上級学校への進学、就職などに非常に重要な資料として活用される。

 

最近、各大学が指導要録で審査する比率を高めた結果(いわゆる’指導要録総合選考’)、指導要録の記録が、結局大学の合格まで繋がるという認識が高まるにつれ、保護者や生徒たちの指導要録に対する関心の増大はもちろん、それによる苦情は本当に凄かった。

実際2018学年度4年制大学の全体募集定員の中で74%は随時選考だが、そのうち、指導要録だけで判断する選考は83%であるほど、指導要録が占める割合は大きかった。

 

時代に合わせた教育市場

当然、私教育市場も’指導要録総合選考’のためのオーダーメード型コンサルティングに変わっている。

教育部で勤務していた当時、課長の指示で有名な塾に行って実際のコンサルティングをどうしているのか調査してみろと言われ、ソウル江南(カンナム)のあるコンサルティング塾に行った時のことだ。

“部活は’指導要録’の花だ!”

講壇に立っている講師が部活は’指導要録の花’と叫ぶと、座っていた父兄らも一緒にその言葉を掛け声のように叫ぶ。その光景はどれほど衝撃的だったのか。。。

上の事例は、高校時代の部活が学生簿に記録されるため、部活と関連したスペックもよく考慮して書くうべきだという言葉である。

 

昨年までは高校生たちの小論文を書くことがとても重要だったが、今はアプリ作成がほとんどである。指導要録総合選考のためのスペックも流行があって、ソウル江南の私教育がこの流行を先導しているといっても過言ではない。結局、教育部はこのような状況を見かねて、指導要録に学校以外での小論文活動を記録しないように禁じたら、私教育市場は校内活動に手を伸ばした。それが、部活の記録なのだ。

 

部活も私たちが学生時代に活動したあの部活ではない。単純に生徒同士が集まって歌を歌い、踊りをおどることだけでは足りない。部活を通じて他人とは異る独自性を持って何かを創出し、それを指導要録にうまく書き入れないと、指導要録総合選考に向けた’スペック’にならないからだ。

問題は、こうした塾に通える生徒たちは限られているということだ。このような塾の受講料はいったいいくらになるかお分かりいただけないと思う。

最も高い科目は200万ウォンを超える。一科目の場合だ。こんな高価なコンサルティングを受けなくても受験生本人の実力が優れていて競争で勝ち抜けたらいいが、2017年を生きていく大韓民国の平凡な国民らの子供たちにとってはあまりにも大変な状況である。

実際、私の3番目の姉の長女が今年高校3だが、江南の有名な塾にコンサルティングを受け、心を決めて申請しようとした所、3科目に1千万ウォンという言葉を聞いて涙をのんでそのまま帰ってきたという。

 

教育部もこうした事実を知らなくはない。金サンゴン教育部長官は、さる8月のブリーフィングで、指導要録総合選考を改善することを約束した。指導要録総合選考に対する不信感を解消できるよう、公正性と透明性を強化して、私教育を誘発する要素も大幅に改善すると強調したが、実際国民が肌で感じるほどの効率的な改善がどれほど可能なのか疑わしいばかりだ。

 

韓国と日本の教育への関心の差

韓国のこのような状況に比べると、日本に赴任して感じたことの中で最も大きいショックは、学校で記録する’指導要録’や学校の成績にあまり韓国のような大きな関心はないということだった。韓国があまりに度を越したためにそこに適応して相対的に驚きすぎだったかもしれない。

そのため、韓国の教師らは指導要録に気を使わなければならないし、それに伴う雑務が意外に多い。

もちろん、われわれ金剛学園の先生たちを見たら、指導要録や成績とはまた別の次元で、様々な行事と教育活動などでいつも遅くまで働いていらっしゃるので、校長としてはいつも申し訳ないし、ありがたい気持ちでいっぱいである。

 

学校で一番重要なのは、教師が教室で行う'授業'であると同時に、生徒らへの'相談や生活指導'だ。これなしに公教育を立て直すことはできないのだ。

 

夢と才能を育てる幸福教育。

この幸福教育の実現が’公教育’を通して可能になる日が来るのを望んでいる。

 

学校法人金剛学園(小・中・高等学校)のホームページはこちら

나 어렸을 적.. 私の子供の時。。

굉장히 거센 바람과 비.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태풍’이라는 녀석은 올해도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며 우리를 찾아왔다. 일본 오사카에서 느끼는 태풍의 강도는 한국에서보다 훨씬 센 듯한 느낌이다.

나 어렸을 적.. 행여 천둥, 번개에 내가 놀랄까봐 세 명의 딸들을 옆에 두고, 막내인 나만 포근하게 안아주셨던 엄마 품이 있어 참으로 행복했다.

결혼하여 딸들을 연달아 세 명 낳고, 아들이기를 바라다가 또 임신이 되신 우리 엄마.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별의 아이를 낳아보고 싶으신 우리 부모님이셨다.
배가 유난히 불러 아들인 줄 알았는데 낳아보니 또 딸이었다고 한다. 그게 나였다…
그때부터 파란만장한 나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집은 서대문 냉천동의 한옥집이었다.
안방과 건넛방, 작은 마당 넘어 공부방, 그리고 좁다란 담장길을 따라 아주 자그마한 골방이 있는, 그런 아담한 집이었다.
그곳에서 난 초등학교 2학년까지 살았고, 그 후 아주 크고 넓은 2층 양옥집으로 이사갔지만, 어린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그 한옥집은 아직도 내겐 마음의 고향이다.
첫째언니는 굉장한 큰 덩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엄마가 임신 중에 좋은 영양제를 많이 드신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우리 불쌍한 동생들을 무섭게 거느렸다.
둘째언니는, 첫째언니의 몸이 너무 커서 힘들게 낳으셨던 엄마였기에 이번엔 일절 영양제도 안 먹고 일부러 몸도 많이 움직이고 일을 하여, (첫째언니 때와는 반대로) 아주 작고 비실비실한 몸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첫째와 둘째 딸이 너무 극과 극의 대조를 보였기 때문에, 셋째와 넷째는 정상적으로 낳으려고 나름의 노력을 하셨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 딸 넷은 온 동네를 누비며 재미있게 오손도손 서로를 아끼고 감싸며 행복하게 자라났다. 부모님이 없을 때는 엄마 한복들을 꺼내 입고 공주놀이를 하며 놀았다. 첫째언니는 늘 왕비역할이었고, 둘째언니는 공주, 셋째언니는 신하, 막내인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김없이 거지가 되어 엄마의 예쁜 한복을 입을 기회조차 없었다. 한번은 배구놀이를 한답시고 안방에 줄을 긋고 풍선을 배구공으로 하여 한국팀과 일본팀이 되어 뛰어놀다가, 부모님이 제일 아끼시던 도자기를 깨뜨려서 아버지의 무서운 회초리 세례와 함께 ‘골방’에서의 한 시간 반성이라는 벌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의 여신은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고, 우리 네 명의 딸들은 각자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첫째언니는 독일로 유학을 떠나 오랜기간 머물다가 대학교수가 되어 돌아왔고, 둘째언니는 프랑스어를 전공했지만 전공언어를 전혀 써보지도 못하고 인연도 없던 일본으로 시집가 살다가 위암에 걸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녀석을 두고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 성악을 전공한 셋째언니는 음악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이젠 옛날의 천방지축 개구장이 딸들의 모습이 아닌, 각자의 삶을 멋지게 거느리며 살아가는 어엿한 대한민국 중년여성들이 된 것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아침이면 태양을 볼 수 있고 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음에 행복하고,
잠이 들면 다음날 아침 깨어날 수 있음에 또한 감사하다고..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무사히 건강하고도 행복하게, 또한 평안하게 살아올 수 있었으니 그또한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내 나이 마흔 일곱.
내게도 ‘가정’이라는 것이 생겼고, 사랑스러운 아들들도 곁에 있다.

그러나 가끔씩 내 마음 한 켠이 허전하고 답답한 것은..
아마도 어렸을 적 내 가족들과 함께 지냈던 그 추억의 시간들로 돌아갈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그리움들이 교차해서가 아닐까.

오늘처럼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바람이 거세게 부는 무서운 날씨엔,, 어린 시절 그저 부모님 밑에서 철없이 울고 떼쓰면 모든 것이 해결됐던 그 두껍고도 강력한 ‘보호막’이.. 그 ‘울타리’가… 무척 그립고 아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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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の子供の時。。

とても激しい風と雨。
毎年この時期になると必ずやってくる’台風’という放浪者は、今年も強力なパワーを誇り、私たちを訪ねてきた。大阪で感じる台風は韓国のそれより、はるかに強いように感じる。

子供の時、もしかすると雷、稲妻で私がびっくりするかもしれないと思って、三人の娘たちをそばに置いて、末っ子の私だけを優しく抱いてくれた母の懐が本当に幸せだった。

結婚して娘たちを相次いで三人生み、次は息子であることを望むうちに、また妊娠してしまった母。
今までとは違う性別の子供を生んでみたい、つまり、今度こそ男の子を欲しいと思っていた母だった。
いやにお腹が突き出して息子だとばかり思ったのに生んでみたらまた娘だった。それが私だった。
その時から波乱万丈の私の人生が始まった。

韓国での幼少期(4姉妹の生い立ち)

私が生まれた時、我が家はソウルの西大門冷泉洞にある韓屋だった。奥の間とむかい側の部屋、小さな庭の向かいに勉強部屋、そして小さな塀に沿いにとても小さな小部屋がある、こじんまりとした小さな韓屋だった。そこで私は小学2年生まで暮らし、その後はとても大きくて広い二階建ての洋館に引越ししたが、幼い頃の思い出がそのまま詰まった、その韓屋がいまだに私の心のふるさとである。

一番上の姉は、大柄な人で、(母が妊娠中に良い栄養剤をたくさん飲んだためだというが)強力なカリスマで私たちか弱い妹たちを引き連れた。
二番目の姉は、一番上の姉の体が大きすぎて産むのに大変な思いをした母だったので、今回は一切栄養剤も飲まずに意識して体もたくさん動かして仕事をしたので、(一番上の姉の時とは正反対で)非常に小さくひょろひょろした体で生まれたという。長女と次女がとても極と極の対照を見せたため、三女と四女は、普通の子に生もうとそれなりの努力をしたという。

とにかく、私たちは町中を楽しく走り回りながら、仲良くお互いをいたわり、かばいあって幸せに育った。両親がいない時は母の韓服を取り出して着てお姫様遊びをして遊んだりもした。一番上の姉はいつも王妃の役で、下の姉は姫様、三番目の姉は臣下、末っ子の私はいつも自分の意志とは関係なく決まって乞食になり、母のきれいな韓服を着る機会すらなかった。ある時はバレーボールの遊びをすることになり、奥の間で真ん中に線を引き、風船をボールとして韓国チームと日本チームに分かれて遊び回っていたが、親が一番大事にしていた陶磁器を割って父の猛烈なむち洗礼とともに、あの怖い’小部屋’での一時間もの反省という罰を受けたりもした。

それぞれの道へ

しかし、歳月の女神は私たちをそのまま放っておかず、私たち四人の娘たちは各自の道を行くことになった。

ピアノを専攻した一番上の姉はドイツに留学し、そこで長い期間滞在して、ついに大学教授になって戻ってきた。二番目の姉はフランス語を専攻したが、専攻言語を全く使う機会もなく、縁も所縁もなかった日本に嫁ぎ、胃がんになって、愛する夫と息子を置いたまま先に天国に行ってしまった。声楽を専攻した三番目の姉は音楽教師として勤めている。

もう昔のわんぱく娘たちの姿でなく、守るべきものをしっかり携えながら生きていく、いつの間にかれっきとした大韓民国の中年の女性になったのだ。

誰かがこう言った。

朝には太陽が見られ、夜には星を見ることができることが幸せで、
寝たら翌日の朝目覚めることができることもありがたいと。。。

振り返ってみると、今まで無事に健康で幸せに、また安らかに過ごして来れたから、これ以上ありがたいことはないと思う。

母親となった今

もう私も四十七才。
私にも’家庭’というのができ、可愛い息子たちもそばにいる。

しかし、たまに私の心がどこか物足りなくて、もどかしい理由は。。。

おそらく子供の頃、家族と一緒に暮らしていた、その思い出の時間に戻りたいという懐かしさと、二度と戻れないというもどかしさが次々と交錯しているからではなかろうか。

今日のように激しい雨が降り、風が吹き荒ぶ恐ろしい天気の日には、ただただ幼い頃親の下で分別なく泣いて駄々をこねたら、すべてが解決できた、その分厚くて強力な’保護膜’が、、、その’垣根’が、、、とても懐かしく、かすかに感じられる。

本校主管で”第54回在日韓国人教育研究大会”が奈良県で開かれました。

지난 8월 17일과 18일(1박2일) 본교 주관으로 “제54회 재일본한국인교육연구대회”가 나라현에서 열렸습니다. 이 대회는 일본 전역에 있는 한국학교, 한국교육원, 민단 교육관계자, 민족학급, 한글학교에서 종사하는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보공유 및 토론을 하는 의미있는 워크숍입니다. 본교 주관인만큼 본교 전 교직원들이 단합하여 대회를 주관하였고, 모든 참가자들이 본교 선생님들의 놀라운 팀워크와 매끄러운 진행, 단합된 행동 등에 감탄을 했습니다.

다음 글은 폐회식 때 대회장으로서 마지막 인사를 했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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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두 마리의 개(犬)를 키운다고 합니다. 이 두 마리의 개에게는 이름이 있는데, 하나는 “선입견”이고, 또 하나는 “편견”입니다.

이 두 마리의 개는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고 더 넓어지며 더 단단해집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우리 교원들은 특히나 이 두 마리의 개를 절대 키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또는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는지요?

그런데 또 한 마리의 특별한 개가 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는 개입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라는 뜻이지요. 직접 보지 않고 들은 얘기로 상대를 판단하면 큰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사실을 그대로 보고 느끼고 파악하며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해야 합니다.

이 개의 애칭은 ‘일견’(一見)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우리 교사들이 “일견”을 키우고 “선입견”과 “편견”을 제압하면서 동시에 정확한 눈으로 학생들과 주변사람들을 바라봐야할 것 같습니다.

학교는 교장의 열성만큼 발전하고 학생은 교사의 사랑만큼 성장한다고 합니다.
아무쪼록 사랑과 정열로 최선을 다하는 우리 재일본한국인교육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와 오늘의 이틀을 위해 대회장인 저를 중심으로 저희 학교 교직원들이 올해 일찍부터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잘 따라와준 우리 교직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본 대회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께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점이 있으셨다면 양해해 주시고, 내년 대회를 열게 될 교토에서 더 멋진 대회가 되도록 잘 인수인계하겠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去る8月17日と18日(1泊2日)本校の主管で”第54回在日韓国人教育研究大会”が奈良県で開かれました。

この大会は、日本全域にある韓国学校、韓国教育院、民団の教育関係者、民族学級、ハングル学校に従事している先生たちが一カ所に集まって情報共有や討論をする有意味なワークショップです。

今年は本校の主管であるだけに、本校すべての教職員たちが一致団結して大会を主管しましたし、全ての参加者たちが本校の先生たちの驚くべきチームワークと滑らかな進行、団結した行動などに感動していました。 下記の文は、閉会式の時、大会長としてお話しした挨拶の内容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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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は誰もが先入観と偏見を持っている

人は誰もが心の中に二匹の犬を飼っているそうです。この二匹の犬には名前がついていますが、一匹目の名前は”先入見”(日本では先入観ですが、韓国では'先入見'または'先入観'の両方を言います)という名で、二匹目の名前は”偏見”という名だそうです。

この二匹の犬は、時間が経つほどもっと大きくなり、もっと広くなり、もっと丈夫になります。児童生徒たちを教える我々教員たちは、この二匹の犬を絶対に育ててはいけないと思いますが、知らないうちに、私達は子供たちだけでなく周囲の人々にもあまりにも多くの先入見と偏見を持っ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先入見”と”偏見”を制圧しながら正確な目で相手を見なければいけない

ところで、私達の心の中にはもう一匹の特別な犬がいるそうです。”百聞は一見に如かず”という犬だそうです。これは”百回聞くより実際に一度見た方が良い”という意味ですね。直接見ないで聞いた話だけで相手を判断したら大きな間違い(失敗)を犯すことになります。事実をありのまま見て感じて把握しながら理解するためには、その対象と開かれた対話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の犬の愛称は’一見’と呼ぶそうです。児童生徒たちを教える私達は、こういう”一見”を育て、”先入見”と”偏見”を制圧しながら正確な目で相手を見なければいけないと思います。

無限の愛と情熱を持って悔いのない最善を尽くす在日本韓国人教育者になって頂きたい

学校は校長の情熱の熱さと強さに比例して発展し、児童生徒は教師の愛の深さと広さに比例して成長するそうです。どうか無限の愛と情熱を持って悔いのない最善を尽くす在日本韓国人教育者になっていただけたらと思います。昨日と今日の二日間のために、うちの学校の教職員一同は今年は特に早い時期から、最善を尽くして準備を致しました。よくついてきてくれた教職員達にこの場を借りて深い感謝の気持を伝えたいと思います。

最後に

なにとぞ本大会に出席してくださった皆様に少しでも不便な点がございましたら了解していただいて、来年の大会の主管校の京都ではもっと素敵で盛大な大会になるように引継ぎをきちんとさせていただくことを約束します。 お気をつけてお帰りください。감사합니다,

充実した夏休みをお過ごしください。

<긴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여러분, 4월에 여러분과 첫인사를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방학식 날이 되었습니다.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여러분들은 후회 없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지요?

사랑하는 우리 금강학원 학생 여러분!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을 낭비하여 실패한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시간이 있다 혹은 시간이 없다는 말을 곧잘 합니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24시간이요, 1년은 다 같은 365일입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공정하게 주어진 시간,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여야 할 것인가를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제 방학을 맞이하여 여러분들에게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똑같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개학이 되어 친구들이 만나보면 시간을 잘 활용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의 차이는 매우 크게 벌어져 있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앞으로의 방학 기간을 최대한 잘 활용할 줄 아는 학생들이 되어 주길 바라며 더불어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금강학원 선생님 여러분들께도 한 말씀 드립니다. 다음달이면 제가 금강학원에 온 지도 만1년이 됩니다. 짧은 교직생활이지만, 제가 1년간 지켜본 금강학원 선생님들은 정말 다른 학교 선생님들보다 많은 열정과 사랑으로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교장으로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먼 여행이란>
일전에 ‘생활지도협의회’ 시 조금 언급한 바 있습니다만,
인생의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냉철한 머리를 갖는 것보다 따뜻한 가슴을 갖는 것이 그만큼 더 어렵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이고, 일선현장이며 우리에게 휴식처를 안겨주는 숲입니다.

우리들이 걸어갈 교육의 길, 아이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 한결같아야하는 우리 교직자의 모습, 아마도 머리에서 가슴을 거쳐 발로 가야하는 기나긴 여행일지 모릅니다.
그 여행을 가는 길이 때론 어렵고 때론 힘들지 몰라도 그 여행의 끝은 ‘보람’이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믿으며 하루하루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작지만 사랑이 넘치는 우리 학교, 모두 주인공이 되는 금강학원의 여러 학생과 선생님 여러분, 아무쪼록 9월 1일 건강한 모습으로 모두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長い夏休みを迎えて

皆さん、アンニョンハセヨ?
4月に皆さんと始業式のあいさつをしたのが昨日のようですが、もう夏休みに入るようになりました。さる4月から7月の今日に至るまでみなさんは悔いのない最善を尽くしたと自信を持って言えますでしょうか。

愛する金剛学園のみなさん!
私たちは'時間'の流れの中で過ごしています。
私たちの周りには与えられた時間をうまく活用する人がいれば、時間を浪費し、失敗した人も少なくありません。

人々は、時間がある、あるいは時間がない、という言葉をよく言います。 しかし、私達に与えられた時間は同じで、変わりはありません。
一日は誰にでも公平な24時間であり、1年は皆同じ365日です。 ただ、それをどのように使うかによって結果が変わってしまいます。
ですので、私たちに公平に与えられた時間、限定された時間をどのように管理すべきかを皆さんはじっくりと考えてみてください。
これから夏休みを迎えて、皆様に自由な時間が与えられることになります。 これはみなさんに与えられる同じ時間です。

ところで、開校して、クラスの友達に会ってみたら、時間をうまく活用した児童生徒とそうでない児童生徒の違いは非常に大きく出てくると思います。
どうか、今後の夏休みの期間を最大限活用できる児童生徒になり、また元気な姿で会えることを楽しみにしています。

金剛学園の先生方にも一言お話したいと思います。来月になると私が金剛学園に来て満1年になります。
短い教職生活ですが、私が一年間見てきた金剛学園の先生方は本当に他校の先生達より多くの情熱と愛で一所懸命教えていることをよく知っておりますし、校長としてとてもありがたく思っております。

人生の遠い旅行とは?

この間、'生活指導協議会'の時、少しお話したと思いますが、
人生の最も遠い旅行は頭から胸までの旅行だと言われています。

冷静で冷徹な頭を持つより温かい胸、すなわち心を持つのがもっと難しいから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しかし、それよりもっと遠い旅行があるそうです。それは胸から足までの旅行です。足は実践であり、現場でもあり、私達に休憩を与えてくれる森でもあります。

私たちが歩いていく教育の道、子供たちに対する無限の愛、一貫しなければならない教職者の姿、おそらく頭から胸を経て、足まで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長い旅行になるかもわかりません。
その旅の道が時には難しく、時には大変かも知れませんが、その旅の終わりは"やり甲斐"という形で我々に訪れてくると信じ、毎日毎日力を出していただきたいと思います。

小さいけれども、愛があふれるわが学校、だれもが主人公になれる金剛学園を作っていくために、これからも金剛学園の児童生徒と先生方のみなさん、頑張ってやっていきましょう。
どうか、9月1日、元気なお姿でお会いしましょう。

お疲れ様でした。カムサハムニ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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祝辞に込めた思い~第二の新しい舞台へあがる卒業生へ~

※本文(韓国語)に続いて日本語訳がございます。ご覧下さい。

지난 2월 4일, 금강학원에 부임하여 처음으로 고교 졸업식에 참석하였습니다. 그 전날 졸업식 예행연습을 한 후에, 호텔에서 테이블 매너시간(호텔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매너도 배우고 졸업을 앞둔 졸업생들의 소감을 한명씩 발표하는 자리)을 통하여 햇병아리 사회인으로서의 준비시간을 가졌습니다. 미리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이 테이블 매너시간은 눈물을 참기 힘들 정도로 감동적이고 슬픈 시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저는 의외로 그런 시간은 잘 참는다고 속으로 자부하면서 당당히 참석했었지요.
그런데 역시나,, 고3 학생들 한명한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금강’에서 자라난 학생들의 사랑과 눈물, 행복 등의 다양한 추억거리가 느껴지면서 저 역시 짠한 그 무언가로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이제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서 있는 우리 학생들이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교장으로서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망설이고 또 고민했었습니다. 역대 교장은 한국어로 축사를 했다고 하는데, 한국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기 때문에 100% 한국어로 하기에는 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축사 후에 아이들에게 일본어로 한마디 짧게 더 해줘야겠다고 결심했지요.
저는 오히려 앞부분의 한국어 축사보다, 전체 학생들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일본어로 이야기를 준비하는 내용이 더 긴장되고 고민되었습니다.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본교 체육관 문을 통하여 이제 당당히 세상 속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는,,, 정말 마지막 순간에 와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해줄 말을 생각하기 위해 한달 이상을 고민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교장으로서 여러분께 마지막 숙제를 드리겠습니다. 오늘밤 여러분들은 자서전을 미리 써보기 바랍니다. 자서전을 쓰라는 말은 “설명서를 읽어라”라는 말과 같습니다.
설명서를 읽으면, 몰라서 헤매거나 시간, 노력 등을 헛되이 쓰지 않아도 됩니다. 모르는 것은 설명서가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들 인생에는 설명서라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들 인생은 설명서 없이는 기계를 조작하거나 지도, 나침반 없이 먼 여정을 떠나는 것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자서전을 미리 써본다는 것, 그 자서전이 바로 자기 인생의 설명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밤 여러분들의 앞으로 펼쳐질 멋진 인생의 자서전을 쓰고, 자신의 길을 여러분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면 정말 좋겠습니다.
제2의 인생길이 펼쳐질 터닝포인트가 되는 오늘, 여러분의 자서전을 써보면서 나만의 무대의 멋진 주인공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금강의 선생님들은 언제나 같은 장소인 바로 이곳에서 여러분들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니, 무서워하지 말고 앞으로 당당히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高等学校卒業式前夜の卒業生との食事会

 今年の2月4日、金剛学園に赴任して初めて高校の卒業式に参加しました。その前日、卒業式のリハーサルをした後、ホテルでテーブルマナーの時間(ホテルで夕食をしながらマナーを学び、卒業を控えた卒業生たちの所感を一人ずつ発表する場)に駆け出しの社会人としての準備時間を持ちました。
 あらかじめ教頭先生から、このテーブルマナーの時間は涙を堪えきれないほど感動的でありながら寂しい時間でもあると聞いていましたが、私は意外とそういうことには慣れていると心の中で自負しながら、堂々と出席しました。

 ところがやはり、、卒業生たち一人一人の話を聞きながら、’金剛’で育った生徒たちの愛と涙、幸せなどの様々な思い出が伝わってきて、胸が熱くなりました。
 もう新しい人生の出発点に立っている生徒たち…この生徒たちに最後に校長として何を言ってあげればよいのか悩みに悩みました。歴代の校長は韓国語で祝辞をしたそうですが、韓国語をよく理解できない生徒もいるために100%韓国語で話すことに私は抵抗がありました。考えたあげく祝辞の後に日本語で一言付け加えて言おうと決心しました。

 私は前の部分の韓国語の祝辞より、卒業生すべてに分かってもらえる日本語で話をする内容に緊張し、悩んでしまいました。 卒業式を最後に本校の体育館の扉を通り、世の中へと堂々と新しい出発をすることになる、本当に最後の瞬間に来ている生徒たちに話したい言葉を考えるため、一ヵ月以上悩んだと思います。その話がこちらです。

卒業生への祝辞~最後の宿題~

 “校長として今日、みなさんに最後の宿題を出したいと思います。今晩、前もって皆さんの自叙伝(自分の話)を是非とも書いてみてください。自叙伝を書けというこの言葉は「説明書を読みなさい」という言葉と同じです。
 説明書を読めば、わからなくて迷うことがなく、時間や努力を無駄に使わなくてすみます。わからないことは説明書があるので何とか解決できます。

 しかし、私たちの人生には説明書というものがありません。私達の人生は説明書なしで機械を操作したり、地図や羅針盤なしで遠い道のりに出発することと同じかもしれません。
 ですから、自叙伝をあらかじめ書いてみるということ、その自叙伝がただちに、自分の人生の説明書にもなりうるということを是非とも覚えていただきたいです。

 今晩、皆さんのこれからのすばらしい人生の自叙伝を書き、自分の道を自分の力で切り開いてください。第2の人生のターニングポイントである今日、皆さんが自叙伝を書きながら自分だけの舞台のすばらしい主人公になってほしいと願っています。
 金剛の先生たちはいつも同じ場所で皆さんを見守っていますので、何事にも恐れず前を向いて堂々と進んでください。カムサハムニ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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