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한 가지 소망이 있다> (私には願いが一つある)

<나에게는 한 가지 소망이 있다> (私には願いが一つある)
살다보면,,
그 당시의 나로선 최선을 다해서 한 일들인데도 뒤돌아보면 내가 한 일들에 부족하고 허전한 그 뭔가의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당시의 나로선 만나는 사람들한테 최선을 다하고자 했던 것들이 뒤돌아보면 안타까운 그 뭔가의 답답함을 느낄 때가 꽤 있다.

열 명 중 일곱 명은 나에게 전형적인 O형 스타일이라고 하지만, 가끔 A형이냐고 묻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소심’함을 상대가 알아차렸구나 싶어 뜨끔해지곤 한다. 아마 생물학적으로 A형인 아버지의 유전자가 내 피에 어렴풋이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난 것들에 대한 부족함과 아쉬움, 답답함, 허전함 등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그만큼 더더욱 그리움과 애착이 생기게 되는 것 같다.
그만큼의 소망과 그만큼의 사랑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인디언 부족의 속담 중에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다. 그리고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겠지만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고교시절 존경하던 영어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울면서 태어나 웃으면서 가는 사람이 행복한 인생이란 것.
더 자세히 말하면 여러 사람들의 축복과 웃음 속에 태어나서 다른 사람들의 비통과 눈물 속에 떠나는 사람이 위대한 인생이라는 것이다.

최근 생각이 많은 탓인지 불면증에 시달려 잠을 충분히 못자는 날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과연 울면서 태어나 웃으면서 가는 인생을 내 자신 살아갈 수 있을까 시름에 잠기게 되곤 한다.

나에게는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소망이 한 가지 있다.
그건,, 가진 것보다 안 가진 것을 더 감사할 줄 아는 것이고,
기쁨보다 내게 닥친 절망을 더 사랑할 줄 아는 것이다.
가진 것과 기쁨은 내게 세상적인 즐거움만 주지만, 안 가진 것과 절망은 나를 한층 더 성숙시키기 때문이다.

근데 금강학원에 부임하면서 어느 순간 더욱 더 절실한 소망이 생겼다.
우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을 사랑으로 교육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들이 부디 언제까지고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또한 ‘금강’을 선택한 것이 과연 그들 인생에 있어 성공의 선택이었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소망만큼은 나 자신에 대한 소망..
‘금강’에서 근무한 시간들이 내 인생의 최고의 순간들이기를,, 과연 웃으며 눈 감는 이 세상 마지막 순간까지 금강학원에서 흘린 열정의 땀과 사랑의 눈물이 헛되지 않았음을 감사할 수 있기를 정말 간절하게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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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には一つの願いがある>>
 生きていると、、、
その時の私としては、最善を尽くしてやったつもりなのに、振り返ってみると、私がしたことに何か物足りなさを感じる時がある。人との関係においても同じである。当時の私としては、出会った人々に最善を尽くそうとしたつもりが、振り返ると、心残りで、何かしらのもどかしさを感じる時がかなりあったりする。

10人中7人は、私に典型的なO型タイプだと言うが、たまにA型ですかと聞いてくる人と出会う。そのたびに、私の心のどこかの’小心’さが、相手にばれてしまったんだと思い、ドキッとする。おそらく生物学的に、A型である父親の遺伝子が私の血にかすかに残っているためのようだ。

 過ぎたことに対する物足りなさや心残り、そして、もどかしさや寂しさなどがあるからこそ、私たちの人生はそれだけ懐かしさと愛着を感じるようになるのではないかと思う。また、それだけの願いと、それだけの愛があるのではないのかと...

 インディアンのことわざに、
 "君が生まれた時、君は泣いていたが、世の中は喜んでいた。そして、君が死ぬ時、世の中の人は皆、君のために泣くだろうが、君はむしろ喜びながらこの世を去っていく、そんな人生を送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言葉がある。
 高校時代に尊敬していた英語の先生が教えてくださった言葉である。

泣きながら生まれ、笑いながら死んでいくことが、幸せな人生だということ。さらに言えば、多くの人々の祝福と笑顔の中で生まれて、多くの人々の悲痛と涙の中で去っていくことが、偉大な人生だということである。

最近、考え事が多いせいか、不眠症に悩まされて眠れない日々が続く中、果たして泣きながら生まれて、笑いながら去っていく人生を、自分自身が送れているのか、とても不安で心配になる。

 私には生きていく中で、一つの願いがある。
それは、満たされることより、満たされないことにもっと感謝し、喜びよりも私に差し迫る絶望感をもっと受け入れることである。
 満たされることと喜びは、私にとって世俗的な幸福ではあるが、満たされないことと絶望感は、私をさらに成長へと導いてくれるからである。

ところが、金剛学園で勤務していると、いつからか、もっと切実な願いが出来てしまった。
 可愛くて愛らしい子どもたち、そして、その子どもたちを愛と情熱で指導するために最善を尽くしている先生たちが、いつまでも元気で幸せでありますように、、、また、「金剛」を選んだことが、彼らの人生における最も実り豊かな選択であったことを願うことである。

そしてもう一つ。この願いだけは、自分自身に対する願いである。
それは「金剛」で過ごした時間が、自分の人生において最高の時間であったこと。笑いながら目を閉じ、この世で最後の瞬間を迎える時まで、金剛学園で流した情熱と愛の涙が無駄ではなかったと感謝できることを、心より願ってやまない。

<건강이 제일의 재산이다> (健康が一番の財産である。)

<건강이 제일의 재산이다>

모처럼 휴일을 맞아 집안을 청소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한국에 있는 어떤 지인이 보내온 글이 너무 마음에 와닿아 여기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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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특실에 계시는 똑똑한 노인의 글☆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니…
인생의 전반전은
학력, 직위, 권력, 재력 그런 것들이 높고 많으면 좋은 것이었지.

하지만 인생의 후반전은 달랐다네.
전반전의 승리를 위해 온 힘을 쏟은 몸은
후반전에 혈압, 심장, 당뇨 등 성인병에 시달리게 되어
나의 명줄을 의사에게 구걸해서 겨우 연장전 속에 살고 있다네.

이제야 알겠더군.
전반전에 높이 쌓았던 모든 것들을
후반전, 연장전에선 누릴 수가 없다는 걸…

나의 글을 읽는 그대들에게 전하노니~
아프지 않아도 해마다 건강검진을 받아 보고
목마르지 않아도 물을 많이 마시며
괴로운 일 있어도 훌훌 털어버리는 법을 배우며
바보스럽게 양보하고 베푸는 삶도 한번 만들어 보게나.
돈과 권력이 있다 해도 교만하지 말고
부유하진 못해도 작은 것에 겸손히 만족을 알며
피로하지 않아도 휴식 할 줄 알며
아무리 바빠도 몸을 움직이고 운동하게나.

사람의 가치는 무엇이 증명해 주는지 알고 있는가?
바로 건강한 몸이라네.

차를 몰아줄 기사는 월급주면 얼마든지 구하고 돈을 벌어줄 당신 사업장의 직원은 월급만 많이 주면 늘 옆에 둘 수 있지만,
당신을 대신해서 아파줄 사람은 결코 없을 테니 건강을 잃지 마시오.

그러니 전반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무 욕심을 내지 말고
후반전, 연장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 인생이 끝나지 않았으니
행복한 노년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점검하며 사시라…

남은 인생, 절대 코로나19는 걸리지 말고, 건강관리 잘하고 웃는 날만 있기를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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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이나 공감 가는 내용들이다.

내게 있어 ‘건강’이라는 두 글자는 인생 우선순위의 최하위에 있어왔다. 왜냐하면 워낙 건강하게 태어났기에 굳이 ‘건강’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일 게다.
그런데 요즘 내 몸들이 내게 반항을 한다.. 원래 암의 가계력이 많은 우리 집안인 데다가, 나이 들면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아지면서 몇 년전부터 혈압이 무척 높고 만성두통, 심한 척추협착증 등 잘 들여다보면 아픈 곳이 많은 몸이다.
몸의 각 부위별로 내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못 들은 척, 아니 애써 외면하면서 그냥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는 이제야 왜 선인들이 건강을 챙기면서 살라는 말을 하는지 알 것 같다.
최근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가니 의사선생님이 몸도 돌보면서 살라고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절대 후회할 날이 올 거라고 경고한다.

난 음식 중에 떡볶이를 제일 좋아한다. 주변에선 아직 어린아이 식성이라고 놀리지만, 그때마다 막내들의 특성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핑계대곤 한다.
빨갛고 매콤한..그러면서도 달짝지근한 떡볶이.
특히나 나에겐 잊혀지지 않는 떡볶이 맛이 있다.
아무리 이곳저곳을 훑어봐도 찾을 수 없는 그 맛..
결혼하기 전까지 우리 언니랑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집 앞의 그 맛있는 떡볶이집에서 떡볶이와 만두를 섞어 잘도 먹어댔다. 매운 떡볶이가 위에 좋지 않다고,,건강에 안 좋으니 그만 먹으라고 매번 저녁마다 혼내시던 아버지. 소귀에 경 읽듯 으레 읊어대시던 아버지의 잔소리는 이젠 듣고 싶어도 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지금도 떡볶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반사신경처럼 ‘건강’, ‘아버지’, ‘그리움’이라는 단어로 연결되곤 한다.

세상이 서글퍼지고 힘들어 쓰러질 때, 가끔씩 나는 그 당시 언니랑 호호거리며 맛있게 먹어대던, 그 떡볶이가 그리워 미칠 때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떡볶이의 맛보다.. 그 속에 묻혀서 날 가슴 아리게 하는 옛날 추억들이 더 그리워서가 아닐까 싶다.

건강하자. 내 인생 우선순위에 이제부터는 ‘건강’이라는 단어를 상위에 랭크시키도록 해보자.
다만,, 오늘 하루만큼은 떡볶이를 아주 맵게 만들어서 먹어봐야겠다..

(健康が一番の財産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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せっかくの休日を迎え、家を掃除してじっと座っていると、韓国にいる知人から送ってもらった文章が心に響いたので、ここに紹介してみ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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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院の特別室にいらっしゃる賢い老人の文章☆

過ぎ去った人生を振り返れば、、、
人生の前半戦は
学歴、地位、権力、財力などあればあるほどよかった。

しかし、人生の後半戦は違った。
前半の勝利のために全力を尽くした体は、
後半戦には血圧、心臓、糖尿などの成人病に悩まされ、私の命綱を医師に託し、やっと延長戦の中で生きているんだ。

今やっと分かったよ。
前半に高く積み上げたすべてのものを
後半戦、延長戦では享受できないことを。。。

私の文章を今読んでいるあなた達に伝えよう。
病気にかからずにいても、毎年健康検診を受け、
喉が渇かなくても、水をたくさん飲み、
つらいことがあっても、気にしない方法を身につけ、
むやみに争わず譲歩し、進んで自分から恩恵を与えるような人生に変えてみよう。
お金と権力があったとしても、傲慢にならず、
富裕ではなくても、小さいことに謙虚に満足し、
疲れてなくてもよく休み、
いくら忙しくても、体を動かして運動してね。

人の価値というのは、何が証明してくれるか知っているのか。
それはまさに健康というものだよ。

車を運転してくれる運転手は、給料を払うといくらでも雇えるし、
お金を稼いでくれるあなたの職員たちは、給料さえ沢山あげたらいつでも周りに置くことができるけれども、
あなたの代わりに病気にかかってくれる人は決していないので、健康だけは失わないでね。

だから、
前半戦を走っている人たちはあまり欲を張らずに、また後半戦、延長戦を生きている人たちは、まだ人生が終わっていないから、
幸せな老年のためにでも、今から自分の体を点検しながら生きなさい。。。

残りの人生、
絶対にコロナ19にかからず、健康管理に気をつけ、笑える日ばかりであるように祈って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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とても共感を呼ぶ内容である。
私にとって「健康」という2文字は人生の優先順位の中の最下位のものだった。今も確かにそうだと思う。なぜならば、生まれつきの健康で丈夫な体なので、わざわざ「健康」を念頭に置かなくても、今まで大した問題はなかったからであろう。

ところが、最近私の体が私に反抗し始めた。もともと我が家は癌にかかる家系である上に、年を取るにつれてストレスを受けることが多くなり、数年前から血圧が非常に高く、しかも慢性頭痛、ひどい脊椎狭窄症など、あっちこっち悪いところが多くなってきたからである。
体の部位ごとに、みんな私に”助けて!どうか助けて!”と哀願しているが、その声を聞いても聞かないふりをし、いや、わざとそっぽを向いて生きている私としては、今なぜ先人が健康を見守って生きろと言っていたのか、やっと分かるような気がする。
最近、体の具合があまり良くなくて病院へ行ったら、お医者さんから体の面倒も見ながら生きろと。そうじゃないと絶対後悔する日が来るだろうと言われたのである。

私は食べ物の中でトッポッキが大好物だ。周りからは”まだ子どものような嗜好だ”とからかわれているが、その都度”末っ子の特性だから仕方ない”と言い訳する自分がいる。
真っ赤で超辛い…一方で甘い味のするトッポッキ。
特に、私には忘れられないトッポッキの味がある。
いくらあちこちのお店を探してみても見つからないその味。
結婚する前まで、姉と私は毎日のように実家のすぐ前にある行きつけのおいしいトッポッキ屋でトッポッキと餃子を混ぜてよく食べていた。”辛いトッポッキは胃に良くないから、また健康にも悪いから食べるな!”と、毎回怒っていたお父さん。馬の耳に念仏のように、耳にタコができるほど言っていた父の小言は、今は聞きたくても聞きたくても、聞くことが出来ない。。
そのためか、大人になった今もトッポッキという単語を思い浮かべると、条件反射のように”健康”、”お父さん”、”懐かしさ”という単語につながったりする。

時々さびしく思ったり、体調を崩して倒れそうになる時、たまに私は姉とよく食べてた、あのトッポッキが恋しくて恋しくてたまらなくなったりする。
それはたぶん、当時のトッポッキの味より、、、その中に埋もれていて私を悲しませる昔の思い出があまりにも懐かしいからではないかと思う。

健康になろう。自分の人生の優先順位に、”健康”という単語を上位にランクさせるようにしてみよう。
ただ、今日一日だけはトッポッキを超辛く作って食べてみようと思う。

인연 (因緣)

그다지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어려서부터 유독 좋아하는 책이 있다.

피천득 씨의 『인연』이라는 수필이다.

「그리워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이 구절은 몇 번을 읽어도 내 마음을 잔잔하게 흔들어놓는 대목이다.

‘인연’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유치원 시절 내 짝이었던 남자아이가 그 주인공이다. 내 인생의 첫사랑이었던 아이다. 그 아이의 이름은 아직도 내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아니, 안 잊혀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첫사랑의 ‘첫’이라는 접두어의 신선함과 소중함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일 게다.

5살…너무 어려서 세상을 알지도 못하는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과묵하면서도 배려있는 그 남자아이가 무척 좋았다. 마음속 고백을 하지 못하고 설레는 마음만 조용히 간직했던 나. 그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땅만 쳐다보며 수줍게 말을 나눈 추억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지금이라면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을 텐데…하는 생각도 하면서 가끔 혼자 미소짓곤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겐 의외로 제대로 표현조차 못하는 바보 같은 성격의 나이기도 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로 여러 어렵고 힘든 문제에 부딪혔을 때, 도저히 머리를 굴리고 굴려도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깊은 사색에 젖곤 한다.

왜 이런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을까 하는 원인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본다. 이유를 찾고 또 찾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봉착한 사건 내지는 현재 상황에 있어 ‘우연’과 ‘필연’의 상관관계를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 내 스스로 현실 상황과의 ‘인연’의 끈을 찾아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긍정적 마인드로 파헤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이끌면서 내 자신을 합리화하게 된다.

크리스천이면서 ‘운명’과 ‘인연’을 중시하는 이러한 불교적인 사고를 하는 내게, 가끔 주변사람들은 모순된 인간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모순된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 무척이나 존경하고 좋아했던 국어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그 국어선생님은 틈만 나면 우리에게 늘 말씀하셨다. “어떤 누군가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면 그건 분명히 그럴만한 운명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라고. 즉, 인생에서의 만남은 모두 운명적인 그 뭔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분은 무슨 근거로, 아직 온전히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중학교 학생들에게 ‘운명론’을 이야기하셨을까..

서두가 좀 길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현재의 나는 금강학원의 교장으로서 많은 보람과 사랑과 감사를 느끼면서 생활하는 한편, 가끔 여러 난제(難題)에 부딪히다 보면 과연 내가 현명하게 이 현실을 잘 뚫고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웅크리고 있는 나를 바라보게 된다. 결론적으로는 내가 금강학원에 오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자 ‘운명’이고, 이 강한 ‘인연’을 잘 승화시켜서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오게 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다짐을 하곤 한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하여 학생 모집의 홍보에 비상이 걸렸다. 온라인을 통한 홍보 전략을 어떻게 세우냐에 따라 내년도 학생 모집 결과의 최대 관건이 될 거라 예상된다.

그래서 일전 간부회의 시 강하게 부탁한 것이 있다. 우리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금강을 왜 선택했는지에 대한 이유 등을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으며, 선택과 집중을 통한 홍보 계획을 세우자고. 그리고 우리 금강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온 단 한명의 고객<?>일지라도 그 ‘짧은 만남’을 ‘질 긴 인연’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이다.

세상에는 평생 같은 곳에서 살아도 인연이 아닌 사람이 있고, 잠시 눈빛만 마주쳤는데도 피할 수 없는 인연인 사람이 있다. 인연인 줄 알고 믿었는데 아닌 사람도 있고, 인연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인연인 사람도 있다.

길 줄 알았던 인연이 아주 짧은 경우도 있고, 반대로 아주 짧을 것이라 생각한 인연이 의외로 길게 평생을 가는 경우도 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교육부에서 재외동포교육 업무를 담당하면서 바라본 금강학원은 내게 있어서 여러 재외 한국학교 중 하나라는 것 이외에 아무런 존재의 의미가 없었다. 그 낯선 이름 ‘금강’이 이렇게 내 평생의 ‘강하고도 질긴 인연’이 될 존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금강학원에 온 것이 이미 정해져 있던 나와의 ‘인연’이자 ‘운명’이라면, 여기에서 만나는 모든 학생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학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과의 74년간의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금강학원,

태생 자체는 재일한국인들을 위하여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어렵게 만들어진 학교였다. 그러나 기나긴 시간을 거쳐 오면서 2020년을 살아가는 지금의 금강학원에겐 더 큰 사명이 주어졌다.

한국적인 우수함과 일본적인 지역 특수성을 잘 조합하면서, 나아가 세계를 가슴에 품은 국제적인 인재를 만들어내는 것. 바로 금강학원의 존재 의미이다.

인생의 여러 선택지 중 ‘금강학원’이라는 답을 선택하여 우리 학교에 들어온 소중하고도 사랑스러운 학생들이 먼 훗날 과연 ‘금강’을 택한 것이 그들 일생의 최고 인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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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まり本を読むのが好きではない私だが、学生時代から特別に好きな本がある。

ピ・チョンドゥク(皮千得)氏の「因縁」という随筆である。

「恋しいと慕いながらも1度出会ってまた会えなくなったり、一生忘れられないのに会わずに生きる事だってある。」

この一節は、何度読んでも、私の心を穏やかに揺さぶるくだりである。

自分には「縁」という単語を思い浮かべると、思い出す人が一人いる。「人」というより、幼稚園の頃の私のパートナーだった男の子である。私の人生の初恋だった子。その子の名前は未だに私の心の奥底にある。いや、忘れられないのかもしれない。それほど初恋の”初”という接頭語の新鮮さと大切さが大きく働いているのだろう。

5才、幼すぎて世間知らずの子供なのに、無口でありながらも思いやりのあるその男の子がとても好きだった。心の奥底からの素直な告白ができず、ときめく心だけをこっそりと秘めていた私。その子をまともに見つめることもできず、地面だけ眺めて、はにかむように言葉を交わした思い出がまだ記憶に新しい。今なら積極的に話しかけたはずなのに…と、たまに一人で微笑んだりするが、一方では本当に好きな人が出来ると意外とまともに表現することすらできない不器用な性格の私でもあった。

人生の中で、時には困難で大変な様々な問題にぶつかった時、どうしても頭をかかえて悩んでみても解決策が出ない場合は、すべてを投げ出して深い思索にふけったりする。

なぜこのような問題にぶつかったのか、その原因を遡り続ける。理由を求めてまた探していくうちに、ある瞬間、ふと自分が直面した事件や現在の状況における「偶然」と「必然」の相関関係を考えるようになり、そうしていくうちに、結局自ら現実の状況との「縁」の紐を見つけ出し、すべてを受け入れて肯定的なマインドで掘り下げ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結論を導きながら自分自身を合理化するようになる。

クリスチャンでありながら「運命」と「縁」を重視するような仏教的な思考を持っている私に、周囲の人たちから矛盾した人間だと時々言われたりする。この矛盾した考えを持つようになったのは、中学校時代、とても尊敬し、好きだった国語の先生の影響が大きかった。その国語の先生は時間さえあれば私たちにいつもこうおっしゃった。「もし誰かと会って縁を結ぶことになったら、それはそうするだけの運命的理由が絶対あるからだということを忘れないでください」と。つまり、人生での出会いは全て運命的な何かがあるということだった。その先生は、何を根拠にまだ価値観が完全に確立されていない中学生たちにそういう”運命論”を話されたのだろうか。

前置きが少し長かったかもしれない。

なぜこのような話をしているのかというと、現在の私は金剛学園の校長として、多くのやりがいと愛と感謝を感じながら生活する一方で、時々様々な難題にぶつかっている。その難題を私が果たしてうまく乗り越え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かという不安に恐れおののくことがあった。結論から言うと、私が金剛学園に赴任したのは、「偶然」ではなく「必然」であり、「運命」だった。そしてこの強い「縁」を必ずよい結果につなげるように努力すべきだと何度も心の中で誓っているのである。

今年は新型コロナウイルスにより新入生募集に赤信号が灯った。オンラインを通じた広報戦略をどのように立てるかによって、来年度の結果が大きく変わってくる。そのため、この前の幹部会議の時に強くお願いしたことがある。「生徒たちが何故本校を選んだのかということについて綿密に分析する必要があり、それに基づいた広報計画を立てなければいけない」、そして「我々の金剛に好奇心を持って訪ねてきた顧客<?>がたった一人であっても、その”短い瞬間の出会い”というものを”強い絆”に変えなければならない」と。

世の中には一生同じ所で暮らしていても「縁」で結ばれない人もいれば、少し目が合っただけで一目で結ばれる強い「縁」もある。縁だと思って信じたのに、後で振り返ると縁ではない人もいれば、縁があるわけがないと思ったが縁がある人もいる。長いと思っていた縁がとても短い場合もあり、反対にとても短いと思った縁が意外に長く一生続く場合もある。

2012年から2014年まで教育部の在外同胞教育の業務を担当しながら(担当として)眺めていた金剛学園は、私にとって多くの在外韓国学校の一つに過ぎない存在、それ以上でも以下でもなかった。見慣れない名前の「金剛」がこれほど、私の生涯にとって大切な「縁」になるとは夢にも思わなかった。

74年間の長い歴史と伝統を誇る金剛学園。

もともと在日韓国人のためにみんなが少しずつ寄付し、苦労して作られた学校だった。しかし、長い時間を経て2020年を生きる今の金剛学園には、より大きな使命が与えられた。

韓国的な優秀さと日本の地域的特殊性をうまく組み合わせ、世界にはばたく国際的な人材を作り出すこと。これがまさに金剛学園の存在意義である。

人生の様々な選択肢の中から”金剛学園”という答えを選び、私どもの学校に入ってきてくれた大切で愛らしい児童生徒たちが、後日、果たして”金剛”を選んだのが彼らの一生の最高の縁だったと堂々と言えることを心から期待してやまない。

인생 학교(人生 学校)

삶이 하나의 놀이라면 이것이 그 놀이의 규칙이다.

당신에게는 육체가 주어질 것이다.

좋든 싫든 당신은 그 육체를 이번 생 동안 갖고 다닐 것이다.

당신은 삶이라는 학교에 등록할 것이다.

수업 시간이 하루 스물네 시간인 학교에.

당신은 그 수업을 좋아할 수도 있고

쓸모없거나 어리석은 것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충분히 배우지 못하면 수업이 반복될 것이다.

그런 후에 다음 과정으로 나아갈 것이다.

당신이 살아있는 한 수업은 계속되리라.

당신은 경험을 통해 배우리라.

실패는 없다.

오직 배움만이 있을 뿐

실패한 경험은 성공한 경험만큼

똑같이 중요한 과정이므로

‘이곳’보다 더 나은 ‘그곳’은 없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당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어떤 삶을 만들어나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다.

필요한 해답은 모두 자신 안에 있다.

그리고 태어나는 순간

당신은 이 모든 규칙을 잊을 것이다.

– 체리 카터 스코트 –

 

생각해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

좋든 싫든 이번 생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태어나는 순간, 인생의 입학식을 치루고

죽음이라는 순간, 인생의 졸업식이 있기까지

사람은 누구나 ‘인생 학교’의 학생인 것이다.

수없는 경험을 통해 인생을 터득해 가는 것,

그 경험들이 때로 실패하거나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초 긍정 마인드로 나아가며,

때로는 ‘성공’이란 이름으로 우리 앞에 멋진 결과를 보이거나 혹은 성공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생각보다 좋은 결과가 나타날 때 우리는 자만하거나 잘난척하는 일 없이 자기만의 자리에서 묵묵히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겸손과 노력, 절대 포기하지 않는 긍정 마인드로 인생을 살아간다면

우리네 ‘인생 학교’의 마지막은 ‘우등생’으로 졸업하며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나이 이제 50. 지천명에 해당하는 나이.

‘윤유숙 인생 학교’에서 현재 ‘금강학원’이라는 코스를 밟고 있는 중이라 하겠다.

그런데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금강학원’을 초일류 코스로 만들어가는 중에

2020년 5월…‘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났다.

모든 행사가 멈춰졌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사라졌다. 시끄러워야할 학교가 너무 조용해졌다.

코로나라는 인류의 새로운 강적 속에, 우리 선생님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우리 아이들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 금강은 11일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학생들의 분산등교도 시작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선생님들과의 활기찬 대화, 즐겁게 주고받는 인사, 오리엔테이션,, 집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공립학교와는 달리, 사립학교 특성상 우리 금강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 아이들..그럼에도 불구하고 등교일에 맞춰 밝은 얼굴로 등교해준 우리 아이들이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고마웠다. 이제 예전의 일상으로 서서히 돌아갈 수 있을까?

나에겐 늘 하나의 신념이 있다.

이 세상엔 우리한테 불가능한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생각’만이 존재한다고..그러니, 모든 일은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살아가자고..

우리 금강학원이 가장 전성기 시절의 학생 수를 넘어선 400명대 규모로 되는 날이 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용기 없는’ 생각만이 존재한다.

요즘 두통이 좀 심하다. 가끔씩 나를 찾아오는 만성두통..아마 생각할 일이 많아서인 듯하다.

나이가 든 탓인지, 내 인생 학교의 졸업식이 언제일까 하는 두려움이 가끔 물밀 듯이 들곤 한다.

그럴수록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할 수 있다. 잘 될 거다. 아니, 꼭 그렇게 만들고야 말 것이다..라고..

어떤 삶을 만들어나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시인의 말처럼, 내가 지금 나만의 “윤유숙 인생 학교”에서 지금 현재 딱 밟고 있는 “금강학원”이라는 코스가 초일류 코스로 부상하도록 앞으로도 지금처럼 선두에 서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생각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 주변에 많이들 존재하겠지만, 그것이 과연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꼭 보여주고 말겠다. 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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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が一つの遊びなら、これこそ遊びのルールである。

あなたには、肉体が与えられるだろう。

善かれ悪しかれ、あなたはその肉体を

一生の間は、持ち歩くのであろう。

あなたは人生という学校に登録するだろう。

授業時間が一日24時間の学校に。

あなたはその授業が好きになるかもしれないし、

いやになったり、愚かなことだと考えることもあるだろう。

でも、十分学んでおかないと、その授業は永遠に繰り返されるだろう。

そして、その後、次のステップに進むだろう。

あなたが生きている限り、授業は続くのであろう。

あなたは”経験”というものを通して、学ぶだろう。

失敗はない。

もっぱら学びだけがあるのみで、

失敗した経験は成功した経験同様重要な過程なので

“ここ”より勝る”そこ”はない。

他の人はみんなあなたを映す鏡である。

どんな人生を作っていくのかは、全面的に自分次第である。

必要な解答は全て自分の中にある。

そして生まれる瞬間

あなたはこのすべてのルールを忘れるのだろう。

– シェリー·カータースコット –

 

考えてみれば

人間という存在は、本人の意志とは関係なくこの世に生まれ、

好むと好まざるとに関わらず、この世で自分ならではのやり方で最善を尽くして生きていくのだ。

生まれる瞬間、人生の入学式が行われ、死を迎える瞬間、人生の卒業式まで人はだれでも”人生学校”の生徒なのである。

数えきれない経験を通じて人生を体得していくこと、その経験が、時には失敗したり良くない結果をもたらしても【超肯定マインド】で前進し、

時には”成功”という名前で素晴らしい結果を見せたり、または成功まではいかなくても思ったより良い結果が目の前に現われる時、私たちは自慢したり偉そうにすることもなく、自分の居場所で黙々と一生懸命生きなければならない。

謙遜と努力、何事にも絶対あきらめないプラス思考で人生を生きていけば、私たちの”人生学校”の最後は”優等生”として卒業して目を閉じられるだろう。

自分の年齢、もはや50。「天命を知る」歳。。

現在、”尹裕淑人生学校”の中で、”金剛学園”というコースを歩んでいる。

最善を尽くして”金剛学園”を、超一流コースにしていこうとしている中で、2020年5月、”コロナウイルス”という伏兵に出会ってしまった。

すべての行事が中断されてしまった。子供たちが教室からいなくなってしまった。騒がしいはずの学校がとても静かになってしまった。

“コロナウイルス”という人類の新たな強敵との戦いの中、私ども教師達は私たちにできる限りの最善を尽くしながら、子どもたちを最大限守ろうと努力している。

我が金剛は11日から1週間に1回ずつ生徒たちの分散登校も始めた。子供たちの笑い声、先生方との活気ある対話、楽しく交わしている挨拶、新入生のオリエンテーション…

生徒たちの自宅から近い距離に位置する公立学校とは違い、私立学校の特性上、うちの金剛学園から遠く離れた所に住んでいる我が子供たち。。それでも、自分達の登校日に合わせて明るい顔で登校してくれた子供たち。とても可愛らしくて、またありがたかった。はたして、もとの日常に戻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か。

私には常に一つの信念がある。

この世には私たちに不可能なことが存在するのではなく、

“不可能だと思う考え”だけが存在すると。だから、すべての事は私達の熱い情熱と志があったら、絶対に成し遂げられるとの前提で生きていこう。

われわれの金剛学園の在籍数が400人規模になる日が来ることは決して不可能なことではなく、そうはならないという「勇気のない思い」だけが存在する。

個人的なことではあるが、最近、頭痛がひどい。たまに私を襲う慢性頭痛..恐らく悩み事が多いからであろう。

年を取ったせいか、自分の人生学校の卒業式はいつなのかという恐怖がたまに沸き立つ。

そういう怖い心配症があればあるほど、自分に催眠をかけまくる。出来る。うまく行く。いや、きっと、そうさせてみせる。と。。

どんな人生を送るかはすべて自分次第だというある詩人の言葉のように、私が、今私ならではの”尹裕淑人生学校”で歩んでいる”金剛学園”というコースが超一流コースに急浮上するよう、これからも今のように先頭に立って最善を尽くすつもりである。

この考えが不可能だと思う人はおそらく周りにたくさんいるだろうが、それが決して不可能なことではないということを必ず見せてあげたい。その日は、多分遠くないと確信する。

"정답"은 없다. "좋은 답"이 있다.   "正解"はない。"良い答え"はある。

정말 오래간만에 “교장의 정원”에 들어와 본다. 일복을 타고난 탓인지 아니면 일을 계속 만들어내지 않으면 불안증에 걸려버리는 천성(天性) 탓인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 같다.

다만 원래라면 요즘 시기는 아이들의 함성과 선생님들의 지도 소리, 운동회 준비로 한창 먼지를 날리고 있어야 할 학교여야 하는데, 아이들은 온데간데 없고, 온라인을 통한 수업 준비로 평소보다 더 바빠진 선생님들만이 분주하게 오가며 학교를 지킬 뿐이다.

“코로나19”가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를 점령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3월 11일 팬데믹 공식 선언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팬데믹(pandemic). 전세계적인 유행병을 의미한다.

어원을 살펴보면 그리스어로 pan은 모두를 뜻하고, demic은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전염병이 세계적으로 전파되어 모든 사람이 감염되었다란 의미인 것이다.

전문가 말에 의하면,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염병이 발생하면 그 위험도에 따라 전염병 경보단계를 나눈다고 하는데,

1단계는 동물 간의 한정된 전염으로 사람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 상태

2단계는 바이러스가 동물 사이에서 퍼졌다가 소수 사람들에게 전염된 상태

3단계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증가한 상태

4단계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급속히 퍼져, 세계적인 유행병이 발생할 수 있는 초기상태

5단계는 바이러스가 널리 퍼져, 같은 대륙의 최소 2개 국가에서 전염병이 대유행한 상태

6단계는 대륙을 넘어 다른 권역의 국가에서도 추가로 전염이 발생한 상태. 즉,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바로 이 6단계가 전염병 최고 경고단계인 팬데믹(pandemic)인 것이다. 한 마디로 팬데믹 뜻은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뜻하며, 전염병 경보단계 중에서 가장 위험한 상태라는 것이다.

실은 텔레비전에서 연일 코로나 관련 기사가 나오는 가운데에도 나 자신,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피부에 와닿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나, 아베 수상이 긴급사태선언을 발령하고 학교가 임시휴업이 되고 인기 유명 연예인이 어느 날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는 것을 보면서, 또한 세계보건기구의 6단계를 보니까 이제야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나약하며, 인간이 이기지 못하는 바이러스 존재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은 일본의 유명 코메디언 시무라 켄 씨는 내가 일본에 처음 유학한 1992년부터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해온 인물이었다. 아무리 바쁘고 할 일이 많아도 텔레비전에 시무라 켄 씨가 나오면 리모컨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는 것이, 가족 이외에 내게 웃음과 위로를 주는 유일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유치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의 연기에 같이 웃으며 때론 코끝이 찡한 대사로 마음이 짠하게 했던 그. 내년이면 내 나이 50, 공자가 말한 <지천명>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도 꿈많은 청춘 20대 때 보낸 유학시절의 기쁨이고 행복이던 시무라 켄 씨가 나오는 방송은 예전처럼 내겐, 피로하고 힘든 시간을 풀어주는 행복한 일상이었는데. 그런 그가 코로나로 한순간 죽음을 맞았다.

일본인보다 더 슬프고 힘든, 말로 표현 못할 박탈감에 그의 애도 특집 방송을 보며 혼자 울고 또 울었다. 아마 그 뒤에 가려진 내 젊은 20대가 그리워서였을지도 모르며 내 힘든 여러 시간들을 달래준 시무라 켄 씨에 대한 감사와 안타까움이 더 사무친 탓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본래의 테마로 돌아오자.

코로나19가 발생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만 해도,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의 팬데믹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팬데믹이라는 용어를 남용하면 불안감을 증가시킬 것을 우려해 사용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세계 각지에서 감염자가 대규모로 발생하며 앞으로도 바이러스가 더 퍼질 것이 확실한 상황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WHO에서도 팬데믹 선언이라는 큰 결단을 한 것이다.

한편 세계보건기구 WHO는 “역사상 처음으로 통제될 수 있는 첫 팬데믹이 될 것”이라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의료진을 격려하며 “엔데믹(endemic)이 오고 있다”고 말한 가운데 유럽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이탈리아의 외교장관은 잘못된 정보가 오히려 “인포데믹(infodemic)을 초래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엔데믹’은 특정 지역이나 인구에 집중돼 유행하는 전염병, ‘인포데믹’은 어떤 문제에 관해 정보가 넘쳐 문제 해결에 해로운 현상을 말한다.

여러 새로운 단어가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지 새삼 알게 된 요즘이다.

다만, 보이지 않는 무서운 바이러스가 우리 몸을 파고들고 잠식당할지라도 우리의 마음과 정신까지 잠식당하지 않도록 강하게 우리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마 마크롱 대통령 말처럼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점차 전환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전환에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캐치해야 한다.

‘블랙 스완 효과’가 그것이다. 매우 예외적이어서 발생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유럽인들은 1697년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검은색 백조를 처음 발견하기까지는 모든 백조는 흰색이라고 인식하였는데 검은색 백조를 발견한 이후로 ‘검은 백조’는 ‘진귀한 것’ 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는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상황이 실제 발생하는 것’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우리는 일상 속에 파격적인 “비일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블랙 스완과 어떻게 향후 공존할 수 있을까?

향후 모든 국가는 이렇게 블랙 스완에 대응하는 사회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고 고영삼 부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은 이야기한다.

미국의 9·11테러,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그리고 이번의 전염병 사건에서 보듯이 앞으로는 예측하지 못한 방어 불능의 커다란 역습이 간헐적으로 우리 인간세계를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번에 코로나19를 아주 잘 넘긴 좋은 예를 남겼다. 한국 정부가 코로나 감염자 관련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운영한 민주적 거버넌스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다.

한편 일본은 동경 올림픽이라는 전 세계적인 큰 행사의 성공적 대응을 고려한 나머지, 코로나19에 대한 초동대응의 미흡으로 지금 많은 감염자가 속출하고 있으나, 하루빨리 일본인 특유의 침착함과 성실함, 협력체제 구축으로 이 난관을 극복하길 바랄 뿐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현재 본교도 임시휴교 상태이므로 학생들이 등교는 못하고 있으나,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우리 금강 선생님들의 학생들을 향한 사랑과 정열이 그 어떤 학교보다 빨리 빛을 발하였기에 여기에 소개 겸 자랑<?>을 하고자 한다.

임시휴교 선언을 한 그 다음 날 바로 우리 교직원들은 전체 회의에 들어갔다. 사회적 거리두기 및 재택근무 등이 퍼져가는 시기에 교사들은 본인들의 건강보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학습 결손을 메꿀 것인지를 고민하고 협의하며 회의를 거듭했다.

중고등학교는 라인(Line)을 통한 화상통화를 통한 온라인 교육 실시, 소학교는 유튜브 동영상 발신을 통한 수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바로 우리는 그 준비에 돌입했다. 평소 대면 수업보다 3,4배의 정성과 노력이 더 들어가는 것이 원격수업이라는 것을 이번에 뼈저리게 실감하였다. 화면에 판서 등이 어떻게 하면 잘 비춰질지의 각도 조절은 물론, 인터넷이나 기기 환경이 안 좋은 아이들을 위하여 학생들에게 우리 선생님들이 직접 학교 기기를 갖다주며 수업결손을 메꾸기 위해 노력하였다.

한편 핸드폰이 없거나 집중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소학교 학생들을 위해 10분 정도의 수업 동영상을 만드는 소학교 선생님들의 경우 수업내용을 잘 응축하고 이해하기 쉽게 어떻게 잘 영상을 구성하면 좋을지 노심초사하며 이전보다 더 고생하면서 작업하는 여러 선생님들 보며 가슴 뭉쿨해지는 장면이 너무 많았다. 급기야 지난 30일에는 중고 교사들이 직접 학생들 한명한명에게 새로운 학년 교과서들을 직접 전해주며 얼굴을 한명한명 보고 격려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여 전원 하루종일 팀을 짜서 전체 학생들에게 배달해주는 “일일 택배원” 노릇도 자처하였다.

과거의 위대한 혁신은 모두 위기를 통해 탄생했다. TV, 복사기, 라디오 등의 제품은 생각해보면 모두 대공황 시절에 개발되었다.

역사를 살펴보면 혁신은 언제나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서 등장했다.

다급한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은 좋은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혁신과 창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위기가 위대한 혁신을 부른다.

하루빨리 코로나 이전의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더불어 우리 금강은 코로나라는 위기에 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진정한 승자가 되어 웃는 그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객관식 시험보다 주관식 시험을 좋아했다. 정해진 답보다는 나만의 답이 좋게 인정되는 그 쾌감이 정말 좋았다.

아직 코로나19를 이기는 특효약은 개발되지 않고 있다.

정답은 없다. 그러나 좋은 답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파이팅 금강! 파이팅 지구!

 

"正解"はない。"良い答え"はある。

本当に久しぶりに”校長の庭園”に入ってみた。生まれつきの仕事好きのせいか、それとも仕事をしていないと不安になる性分(しょうぶん)のせいか、最近まで夢中になって前だけを見て走ってきた。

しかし、そのような状況が一変した。

本来なら、今の時期、学校では体育大会の準備のために、子どもたちの歓声や先生方の指導の声であふれているはずなのに、子供たちの影も形もない。先生方がオンライン授業の準備のためにいつも以上に慌ただしく行き来しているのを見守っているだけである。

“コロナ19″が2020年を生きる我々に襲いかかるとは、誰も予想できなかっただろう。世界保健機関(WHO)が今年3月11日、パンデミックの公式宣言をした。

“パンデミック(pandemic)” とは、世界的な流行病を意味する。

語源を見ると、ギリシャ語で”pan”は”すべて”、”demic”は人を意味するそうだ。伝染病が世界的に伝播し、全ての人が感染したという意味である。

専門家の話によると、世界保健機関(WHO)は伝染病が発生すると、その危険度に応じて伝染病の警報段階を次のように分けると言われている。

第1段階は、動物間の限られた伝染で、人間には害を与えない状態

第2段階は、ウイルスが動物の間で広がった後、少数の人たちに移った状態

第3段階は、人々の間で伝染病が増加した状態

第4段階は、人々の間で伝染病が急速に広がり、世界的な流行病が発生し得る初期状態

第5段階は、ウイルスが広まり、同じ大陸の少なくとも2カ国で伝染病が大流行した状態

第6段階は、大陸を越えて他地域の国でもさらに伝染が発生した状態。すなわち、伝染病が世界的に広がった状態を意味すると言う。

まさにこの6段階が伝染病の最高警告段階であるパンデミック(pandemic)である。一言で言えば、パンデミックの意味は世界的に伝染病が大流行する状態を意味し、伝染病の警報段階の中で最も危険な状態だということだ。

テレビで連日コロナ関連のニュースが報道される中、私自身は正直この事態がどれだけ深刻なのか肌で感じられないでいた。しかし、安倍首相が緊急事態宣言を発令して学校が臨時休業となり、有名な人気芸能人がある日突然コロナに感染して死亡し、WHOがパンデミック宣言するのを見て、ようやく事の深刻さを実感し、ウィルスがいかに恐ろしいものであるかを知った。有名な芸能人とはご承知の通り志村けん氏である。

実は、志村けん氏は、私が日本に初めて留学した1992年から個人的にとても尊敬してきた人物だった。いくら自分が忙しく、やることが多くても、テレビに志村けん氏が映ったら、その時まで回していたリモコンを止めて彼を見つめることが、家族以外で私に、笑いと慰みを与えてくれる唯一の幸せな時間だった。幼稚なコメディであることを承知の上で、彼の演技に笑いつつ、時には鼻先がじいんと来るセリフで心を熱くさせた志村けん氏。来年、私の年齢は50になる。孔子が言った「天命を知る」歳になっても、夢多き20代の青春時代の喜びであり幸せだった頃と同様今の私にも、疲れてつらい心身を和ませてくれる幸せな日常だったのに。。そんな彼がコロナで突然亡くなってしまった。

私は外国人なのに、言葉に出来ない喪失感のあまり、彼の哀悼特集番組を見ながら一人で泣き続けた。たぶん私が20代だったころの辛い時間を慰めてくれた感謝と切なさのためだったのだろう。

再び本来のテーマに戻ろう。

コロナ19が発生して間もない頃は、世界保健機関はコロナ19のパンデミックの可能性を認めながらも、パンデミックという用語を乱用すると不安が増すことを懸念してあまり使わなかった。

しかし、世界各地で感染者が大規模に発生し、今後もウイルスがさらに広がることが確実な状況であることを予感し、WHOでもパンデミックの宣言という大きな決断を下したのだ。

一方、世界保健機関WHOは”史上初めて統制できる初のパンデミックになる”と肯定的な態度を見せた。

フランスのマークロン大統領が医療陣を激励する場で”エンデミックが来ている”と述べた中で、欧州で最も多くの確診者が出たイタリアの外相は、誤った情報がむしろ”インフォデミックを招いている”と警告した。

“エンデミック”は特定地域や人口に集中して流行する伝染病、”インフォデミック”は、ある問題に関して情報が溢れ、問題解決に有害な現象をいう。

さまざまな新しい単語がやたらと溢れているような気がする。

新型コロナウィルスという目に見えない敵と戦うということが、どれほど恐ろしいことか、改めて気づかされているが、ただ、目に見えない、恐ろしいウイルスが私たちの体を蝕(むしば)むとしても私たちの心と頭まで侵食されないように強く私たち自らをコントロールしなければならない。

おそらく、マークロン大統領の言葉のように、パンデミックがエンデミックへと次第に転換されるだろう。そして我々は今後注意し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がある。それは「ブラックスワン」(黒い白鳥)という現象である。

「めったに起こらないが、一度起こると壊滅的被害をもたらす事象」のことである。

ヨーロッパ人は、1697年にオーストラリア大陸で黒い白鳥を初めて発見するまで、すべての白鳥は白いと認識していたが、黒い白鳥を発見して以降、”黒い白鳥”は”珍しいもの”または”存在しないと考えるもの”、または”不可能だと認識された状況が実際に発生すること”を指す隠喩的表現として使用された。

私たちは日常の中で破格な”非日常”とも言えるこのブラックスワンと、今後どのように共存できるだろうか?

韓国の高永三(コ·ヨンサム)人材生涯教育振興院長は

「今後、すべての国は、このようなブラックスワンに対応する社会システムを備えなければならない」と話している。

米国の9·11テロ、日本の東日本大震災に伴う福島原発の事故、そして今回の新型コロナ感染症被害のような予測できないテロや自然災害が断続的に人間世界を苦しめる可能性があるからだ。

韓国は今回の「コロナ19」をうまく乗り越えることが出来たと言える。韓国政府が感染者の情報をすべて公開し、徹底的に管理したからだ。

一方、日本は東京オリンピックを考慮したあまり、初動対応が遅れ、現在でも多くの感染者を出している。しかし、日本人の落ち着きと誠実さ、そして積極的な協力体制を作ることで、一日も早くこの難関を克服することを願うばかりである。

コロナウイルスの影響で現在本校も臨時休校の状態なので児童生徒たちは登校できないが、”危機はチャンス”という言葉のように、私たち金剛の先生方の、生徒たちに対する愛と情熱がどの学校よりも早く光を放ったので、ここに紹介をすると共に、自慢<?>したいと思う。

臨時休校宣言をした翌日に、全教職員が出勤し、全体会議に入った。ソーシャルディスタンスを置くことや在宅勤務などが広まっている時期に、教師らは本人の健康よりどうすれば児童生徒らの学習の欠損を埋めることができるかについて悩み、協議を重ねた。

中·高校はライン(Line)を通じた映像通話でのオンライン教育の実施、小学校はユーチューブ動画配信を通じた授業を行うことを決め、直ちに我々はその準備に突入した。遠隔授業というのは、普段の対面授業より、3,4倍の情熱と努力が必要だということを今回身にしみて実感した。画面に板書などがどのように映し出されるかといった角度調節はもちろん、ネット環境が十分ではない子供達のために、先生たちが直接生徒達に学校の機器を持っていって授業の欠損を埋めるために努力した。

また、小学生向けに10分程度の授業動画を作るのに、どうすれば授業内容を凝縮できるか、10分程度の授業動画を作る小学校の先生たちの場合、授業内容をよくも凝縮して理解しやすくするために、どのようにうまく映像を構成すればいいかを常に気にしながら、以前よりもっと苦労しながら作業する多くの先生たちを見て、胸が熱くなる場面があまりにも多かった。その後、先月30日には、中高の教師たちが直接生徒一人一人に、新学年の教科書を直接手渡し、顔を一人一人見て励ましの挨拶をしたいと言って、全員一日中チームを組んで全生徒に配達する”一日宅配員”役も自主的に行った。

過去の偉大な革新はすべて危機の中で誕生した。テレビ、コピー機、ラジオなどの製品は、考えてみればすべて大恐慌時代に開発された。歴史を見れば、革新はいつも深刻な経済危機の中で登場した。切羽詰った危機に直面すれば、人々は良い時代には感じられなかった革新と創造の必要性を痛感するようになる。危機が偉大な革新をもたらすのである。

一日も早くコロナ以前の平和な世の中が再び訪れることを、そして私たち金剛はコロナという危機に負けず積極的に対処することで真の勝者となり、笑える日が来ることを心から願うばかりだ。

私は子供の時から選択式試験より記述式試験が好きだった。決まった答えよりは、自分ならではの答えを提出し、先生から"上手い!"と認められるその快感が本当に最高だった。

まだコロナ19に勝つ特効薬は開発されていない。

正解はないしかしずあるだろう

ファイト金剛!ファイト地球!

줄탁동시(啐啄同時)

줄탁동시

 2020년의 새해가 밝았다. 이제 내 나이 앞자리에 5라는 숫자가 붙었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50대가 내 앞에 펼쳐진 날, 의외로 담담한 기분이 들었다. 참으로 묘했다.

40대를 맞이했을 때 당시도 한국이 아닌 일본 치바에서였다. 당시 치바한국교육원장으로 근무하던 때였다. 전혀 내 인생에 오지 않을 것 같은 40대를 맞이했다는 사실이 그 당시에는 신선한 충격이었으면서, 동시에 ‘나이란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하다’고 내 자신에게 외치던, 왠지 모를 당당함이 나를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50대를 맞이한 지금은 그만큼의 연륜이 쌓인 탓일까, 조금은 겸허하고 침착해진 윤유숙이 되어, 내게 다가오는 주변 환경을 조용히 바라보게 된 것 같다.

지난 6일 다시금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우리 교직원들의 신년 직원회의를 위하여 일부러 바쁘신 가운데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에 와주신 최윤 이사장님의 정열적인 지휘 하에 하루종일 교직원 연수를 진하고 강렬하게 진행하고, 올 한해도 교직원 모두 열심히 금강학원을 멋지게 이끌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다음날인 7일 사랑스런 우리 아이들을 맞이하였다.

개학식에서 교장으로서 아이들에게 강조한 내용이 있다.

그게 바로 “줄탁동시(啐啄同時)”이다.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기 위해 껍질 안에서 아직 여물지 않은 부리로 사력을 다하여 껍질을 쪼아대는 것을 줄(啐 : 떠들 줄)이라 하고, 이 때 어미 닭이 그 신호를 알아차리고 바깥에서 부리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啄 : 쫄 탁)이라 한다.

이 때, 줄(啐)과 탁(啄)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 생명이 온전히 탄생한다는 것이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이론이다.

나는 이 원리가 우리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라 생각하였고, 그 부분을 아이들과 선생님들께 파워포인트로 그림을 보여주면서 강조하였다.

알 껍질을 쪼는 병아리는 생명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제자이며,

병아리를 세상에 나오게 하기 위하여 알 껍질을 같이 쪼아주는 어미 닭의 모습은 바로 제자에게 깨우침과 생명의 길을 일러주는 스승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어미 닭이 일방적으로 병아리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작은 도움만 줄 뿐,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결국 ‘병아리 자신’이다.

마찬가지로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아무리 열심히 정열을 가지고 임하려 해도, 배우는 학생들 역시 그 마음을 갖지 않으면 교사들의 가르침은 일방통행이 될 수밖에 없고, 반대로 학생들이 강렬히 원하는 그 마음에 선생님들이 따라가주지 못한다면 진정한 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줄탁동시”가 잘 이루어지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우선 내가 먼저 ‘변화’해야 한다. 나 스스로가 늘 주변 환경에 잘 대응하고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는 ‘상대방’이라는 존재의 인정이다. 나만이 이 세상의 위대한 존재가 아니라, 상대방과의 공존을 통해 진정한 사회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마지막은 ‘타이밍’이다.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타이밍이라는 요소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줄탁동시’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가르침이자 매력적인 이치이다. 지금 우리 금강(金剛)은 상호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선생님과 제자가, 학부모님과 자녀가, 그리고 교장과 선생님들이, 선생님과 선생님이,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상호 존중하고 서로 금강학원의 밝은 미래를 위해 노력해 갈 때 최상의 “베스트 스쿨”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내 인생 멘토가 새해 첫날인 1월1일, 내게 보내온 시를 여기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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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기적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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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멘토가 내게 보내준 이 시의 의미는 뭘까..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 역시 지난 1년 때론 뛰면서 때론 날면서 때론 구르면서 지내왔다. 도착점이 너무 멀어서 때론 화도 나고 때론 좌절하고 때론 조바심을 내며,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얼떨결에 모두와 같이 도착점에 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한해를 날고뛰었던 사람이나 태평하게 걸어온 사람, 또는 엉금엉금 기었던 사람 모두똑같이 ‘새해’를 선물로 받은 점은 내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시간이 주는 선물은 참으로 공평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 새해 첫날이었다…

암튼 올 한해 2020년, 작년보다 더 다이나믹한 한해가 내 앞에 펼쳐지겠지만, 담담하게 한편으론 당당하게 열심히 살아보려 한다.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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啐啄同時

2020年の新年を迎えた。もう自分の年齢の十の位に「5」という数字がついた。絶対来ないだろうと思った50代が自分の目の前に開かれた日、意外と淡々とした気持ちになった。実に妙だった。

40代を迎えた当時も韓国ではなく日本だった。当時、千葉韓国教育院長として勤務していた時であった。全く自分の人生に来ないだろうと思っていた40代を迎えたという事実が、その当時は新鮮な衝撃ではあったが、同時に「年齢なんてただの数字に過ぎない」と自分自身に言い聞かせながら、なぜか自分でもわからない堂々さが自分を支配していた時代だった。それが50代を迎えた今、それなりの年輪を刻んだせいか、少しは謙虚で落ち着いた尹裕淑になって、自分を取り巻く環境を少しは客観的に見るようになった。

6日から再び学校生活が始まった。我々教職員の新年職員会議のために、多忙な中、1泊2日の日程でわざわざ日本に来て下さった崔潤理事長の情熱的な指揮の下、一日中内容の濃い教職員研修を精力的に行い、今年も教職員一同と心血を注いで金剛学園を率いていこうという決心をしながら、翌日の7日、愛らしい我々の子供たちを迎えた。

校長として、始業式で子どもたちに強調した内容がある。

それがなにかと言うと「啐啄同時」という言葉である。

卵の中のひよこが卵の殻(から)を割ってこの世に出るために殻の中で、まだ力の弱くくちばしで死力を尽くして殻をつつくことを'啐'(そつ)といい、この時、親鶏がその合図を察知して外側からくちばしでつついて割ってあげることを'啄'(たく)という。

このとき、'啐'(そつ)と'啄'(たく)が同時に起きなければ、生命が完全に誕生することが出来ないというのが、「啐啄同時」の意味である。

私は、この原理がまさに先生や子どもたちにも当てはまる言葉だと考え、その部分を子どもたちと先生にパワーポイントを作り、絵を見せながら強調した。卵の殻をつつく雛鳥は、命に向かって前に進む'弟子'であり、雛鳥を世に出させるために卵の殻を一緒についばむ親鶏の姿は、まさに弟子に悟りと命の道を教える師匠を象徴するものだと。

親鶏が一方的にひよこを世に出させるのではなく、それこそ'小さな助け'を与えるだけで、卵を割って出てくるのは結局ひよこ自身なのである。同じように、教える先生たち方がいくら熱心に情熱を持って臨もうとしても、学ぶ生徒たちがその心を持たなければ、教師たちの教えは一方通行にならざるを得ない。逆に生徒たちの学びたいという強い意欲に先生たちが応え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真の教育は成り立た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

では、このような「啐啄同時」がうまくいくためには、どのような過程が必要なのだろうか?

まず、自分自身が先に'変化'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自らが常に周りの環境にうまく対応し、合わせようとする努力が必要なのである。二つ目は、'相手'という存在を認めること。自分だけがこの世の偉大な存在ではなく、相手との共存を通じて真の社会が成り立つという考え方を絶えず持たなければならない。最後は ‘タイミング’である。完璧なコミュニケーションをするためには、'タイミング'という要素が絶対的に重要である。

「啐啄同時」は、世の中を生きていくのに欠かせない教えであり、深遠な道理である。 今、我が金剛は相互努力が必要な時期である。先生と弟子が、父母と子供が、そして校長と先生方が、先生と先生が、父母と先生方が互いに尊重し合い、互いに金剛学園の明るい未来のために努力して行く時、理想的な「ベストスクール」が作られると確信する。

最後に、私の人生の助言者の方が新年初日の1月1日、私に送ってくださった詩をここに紹介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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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年最初奇跡 パン チルファン

コウノトリは飛んで

馬は走って

亀は歩いて

カタツムリは這って

セミの幼虫は転がりながら

同じ日の同じ時刻、元旦に着いた。

岩は座ったまま着いて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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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の人生の助言者が何故自分にこの詩を送ってくださったのか、この詩の意味はいったい何だろうか、考えてまた考えた。

私も、ここ1年、時には走り、時には飛び、時には転びながら戦ってきた。到着点があまりにも遠すぎて、時には怒ったり、時には挫折したり、時にはいらいらしたりしながら、早くすぎていく時間をつかみたいと思った時が多かったが、ある瞬間、ふとみんなと同じように到着点に来ていたのではないのかなぁと思う。

一年を飛び回った人、のんきに歩いてきた人、あるいはのそのそと這った人、皆同じように’新年’を迎えたという点は、自分にとっては示唆することが多かった。

'時間'というものが我々にくれるプレゼントというのは、まさに公平だということを改めて実感した元旦だった。

とにかく今年2020年、昨年よりももっとダイナミックな一年になると予想されるが、淡々と、一方では堂々と一生懸命に生きていきたいと決心する。がんばりましょう!

<젊은 선생님의 고민과 교직선배로서의 내 답변><若手教員の悩みと、教職先輩としての自分の答え>

어느 날 매우 열정적이고 매사에 열심히 일하는 어떤 젊은 교사가 내게 상담을 요청했다. 최근 본인이 고민 중인 내용을 글로 정리하였다고 건네주면서 말이다. 편지를 받고 집에 귀가하여 늦은 밤까지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이 고민을 교장에게 건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였을까? 아무리 바빠도 이 선생님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져 주고자, 그 다음날 바로 내 마음속 생각들을 정리하여 건네주었다.

당사자에게 양해를 구하여 여기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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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선생님의 고민이 담긴 편지>

오늘부터 교육에 대한 고민을 기록해 가려고 한다. 이유로서는 ①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점을 잘 모르게 되었다. ②내 수업이 정말 좋은 수업인 것인지, 나쁜 수업인 것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단지 잘 모르는 수업이 나쁜 수업이라고는 할 수 없다. 모르니까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기에) ③이 기록이 도움이 되고 또 나 자신을 구제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한다.

고민하게 된 발단은 00월 00일 00중학교 연수에서다. 모든 선생님, 지식인들이 자기들의 생각이나 방식이 다 맞는 것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확실히 치밀하게 쌓여져있는 연륜 부분은 있었으며 배울 만한 점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학력이나 학생들의 마음을 키우는 것까지 연결될지는 의문이다. 원래 거기에 있던 학생들이 현명하고, 또한 주어진 과제를 선생님의 「지시대로 잘 할 수 있다」는 느낌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해서만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교육이란 것은 교과학습 안에서 ‘마음’도 키울 수 있어야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날의 연수에서의 수업은 그러한 인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업을 하고 어떤 작용을 하면 그러한 상황이 되는 것일까.

2019년 00월00일 행한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내용이 잘 전해지지 않았거나 또는 나름 학생들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임해주긴 했으나, 「지시대로 따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무슨 이유인지 나 자체가 판단할 수 없게 되었고, 수업 방식을 어떻게 풀어야할지 모르게 되었다. 어떻게 즐겁게,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수업에 임하게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역시 「동기 유발」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내 예전 졸업논문을 다시 한번 펼쳐보게 되었다. 논문을 읽으면서, 달성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가기까지의 과정에서 학생들의 상황을 통해 「가치를 결정해 가는 것」이 필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달성목표를 개별적으로 설정하기도 하므로, 그게 직접적인 원인이 안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업의 흐름을 초등학생과 같이 과제화하여 행하는 것도 중학생이라면 가능하지만, 이전에 한번 해봤을 때 그다지 변화를 볼 수 없었으므로, 이 부분도 조금은 미묘하다.

여기서부터 더 막연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막연하게 「동기 유발」이 답이라는 느낌은 든다. 그러나 대책안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교사로서 수업을 하는 중에 왜 교사를 하고 있는지 자문자답해 본다. 물론 사고력을 키우기 위함도 있으나 조금 그 생각이 변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애초 내가 생각해 온,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는 것에 의문을 갖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내일부터의 수업에서는 「가치를 결정하는 것」과 「목표를 설정하는 것」을 다시 한번 행해 보려 한다.

<교직선배로서의 내 답변>

존경하는 ◯◯선생님께

교육이란 무엇인가? 계속 내 자신에게 자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교육이란 가르치고 양육한다는 말입니다. ◯◯ 선생님은 아직 결혼을 안 하셔서 모르겠지만, 사람을 가르치고 양육한다는 것이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도 부모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라서, 전혀 나와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난 생명체들을, 그것도 ‘단체’라는 조직 속에서 올바르게 교육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평소에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교사에게 있어 수업은 생명이지요. ‘교사는 수업으로 말한다’라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수업이 제대로 안 되면 교사는 교직에 보람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사가 수업 기본이 갖추어져 있고 학생들도 기본 학습태도가 되어 있다면 그렇게 큰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교사와 학생 상호간에 존경과 학습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면 금상첨화겠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을 수업의 주체,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한편, 학생이 배움의 즐거움, 공부하는 기쁨을 느끼면 성공인 것이긴 하나, 인간의 집중 능력이 10분 정도라 하니, 45분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는 정말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제 자신의 교사시절을 돌이켜보면 아이들에게 늘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면 좋을지 늘상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8년간의 투쟁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모둠학습, 발표학습, 토론학습 등, 그 사이사이에 교과지식 등의 설명 등을 능숙하게 조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 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제 교사의 일방통행식, 주입식, 지식전달 강의식 수업은 통하지 않는 시대이지요.

다만 제가 3년차 교사시절, ◯◯ 선생님과 똑같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 선생님같은 겸손함이나 학구적인 태도와는 달리, 난 굉장히 유능한 교사라는 일종의 자만과 오만함으로 가득찬 교사였습니다. 난 재미있게 아주 설명도 잘하는 교사인데 왜 아이들이 100% 따라오지 못할까, 그게 아이들의 문제일까, 교사인 나의 문제일까 늘 고민하면서 말이죠..

2년간 아주 깊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5년차까지요. 아니, 교사를 마치고 교육행정 업무로 가기까지 계속 그러한 고민은 조금씩 계속 하면서 저 자신이 겸손해지고 부드러워졌던 것 같습니다. 다른 교사들의 장점도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요..

다만 지금 교장이 되어 생각하는 제 지론은 이렇습니다.

지금 내 눈앞에 사과를 다 먹고 남은 씨앗이 있을 때, 조그만 씨앗 하나와 과수원에 있는 큰 나무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씨앗 하나가 정상적으로 발육하고 성장했을 때 그것이 바로 큰 나무로 성장하는 것인데.. 나는 사과가 아니라 복숭아가 먹고 싶다고 그 씨앗을 복숭아로 취급하고 키운다면 과연 그 씨앗이 복숭아 나무로 바뀔까

교육은 본래 그 존재가 가지고 있던 것이 잘 발현되도록 끌어내 주는 것이지 내가 원하는 쪽으로 그 존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진정한 교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말이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사들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내적 성분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보단 부모가 교사가 어른들이 원하는 쪽으로 그 방향을 이끌어 가려고 하지 않나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무의 어린 묘목은 종류에 따라 특성이 다 다릅니다. 물을 좋아하는 녀석, 물을 싫어하는 녀석, 햇빛을 좋아하는 녀석과 싫어하는 녀석. 그런데도 보통 어른들은 자신들이 정한 방향으로 그 묘목을 키우려고 하지요.

교육은 밖에서 무엇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밖으로 꺼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늘상 마음속에 넣고 원점에서 생각하려 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마 ◯◯ 선생님 수업도 같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바라보는 ◯◯ 선생님의 시각이 두 종류 있다고 봅니다. ‘◯◯교과 선생님’인 ◯◯ 선생님과 ‘인간’ ◯◯ 선생님을 보는 시각.

아마 ‘인간’ ◯◯ 선생님에 대해서는 핸섬하고 머리 좋고 부드럽고 섬세하면서도 멋진 선생님으로 생각할 것이고, ‘◯◯교과 선생님’인 ◯◯ 선생님으로 대할 때는 어려운 ◯◯이라는 교과가 무척이나 따분하지만, 아마 수업을 재미있게 가르치려고 하시는 열성파 선생님이기에 잘 들어주는 분위기? 아마 그런 아이들이 태반일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드리는 이 편지에는 ◯◯ 선생님이 원하는 답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저는 교사시절 고민하지 않았던, 교육행정 업무를 할 때는 고민하지 않았던, 한국 내 학교의 관리직 시절 때는 고민하지 못했던, 재외 한국학교이면서 일조교인 우리 금강학원의 교장이기에 가지는 여러 고민들 때문에 좀 힘들긴 합니다. 가장 힘든 시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내 자식 같고 형제 같은 선생님 중에 그 누구라도 깊은 고민이 있다면 가장 먼저 치료해 주고 싶고 가장 많이 같이 고민해주고 싶은 사람이기에.. 그것도 장래가 촉망되는 우리 ◯◯ 선생님이기에 어젯밤 주신 글을 읽고 또 읽어봤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의 고민은 계속될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고민에 “파도‘가 있을 겁니다. 자신감을 갖게 될 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무척 힘들어지는 시기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럴 때마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인간 ◯◯ 선생님도, ◯◯ 교과 ◯◯ 선생님도 스스로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년차 봐온 ◯◯ 선생님을 제가 100프로 단언하여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들 한 명한 명을 위해 고민하시고, 그리고 아이들 앞에 서서 부끄럽지 않은 교사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 선생님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끼기에, 그 모습이 잘 전달되기에, 앞으로도 멋진 교사로서 나아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한 가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고민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앞으로 경력을 쌓아가면서 그러한 고민 후에 나오게 되는 또 다른 고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그런 과정이 ◯◯ 선생님의 ‘연륜’으로 연결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급하게 쓰느라 틀린 일본어도 많았을 텐데 이해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어떤 답장도 필요 없습니다.

언제든지 또 어떤 내용이든지 좋으니 말씀 걸어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若手教員みと教職先輩としての自分>

ある日、非常に情熱的で熱心な、ある若い教師が私に相談に来た。最近、本人が悩んでいる内容を文章にまとめたと言い、それを私に渡した。家に持ち帰り、夜更けまで何度も読み返した。自分の悩みを校長に持ってくるまでどんなに悩んだろうか。いくら自分が仕事に忙しくても、この先生の悩みを少しでも触れてあげないといけないと思い、その翌日すぐ自分の心の中の色々な考えを記して、その先生に渡した。

それが以下の内容。本人に了解を得てここに紹介する。

若手教師みのめたお手紙

今日から教育に対する悩みを記録していくことにした。理由としては、①教育とは何かということがわからなくなってきている、②自分の授業が本当に良い授業なのか、悪い授業なのかが判断できなくなってきている(単に分からない授業が悪い授業とは言えない。分からないから無意識に生徒たちが思考することもある)、③この記録が役立ち、自分を救うことにつながるかもしれないと考えたため、ここに記す。

悩むようになった発端は00月00日の00中学校の研修だ。すべての先生、有識者が自分の考え、やり方が正しいと言いたげな雰囲気を醸し出していた。確かに、緻密に積み上げられている部分はあるし、学ぶべき点も多くある。しかし、それが学力や生徒の心を育てることにつながっているのかが疑問である。その中学校の生徒たちはもともと賢い生徒であり、与えられた課題を先生の「指示通りにこなしている」という感じであった。私はそれではいけないと思う。真の教育とは、教科学習の中で‘心’も養われるべきである。しかし、そのような印象は受けなかった。

では、どのように授業や働きかけをすればそのような状況になるのか。

2019年00月00日に行った授業の中で、生徒に伝わらなかったり、それなりに積極的には取り組んでくれているが、「指示に従っている」感は抜けなかった。自分の気持ちの持ちようなのか、何なのか判断できなくなり、授業の仕方がわからなくなった。どのように楽しく、積極的に、能動的に授業に向かうことができるのか。

そこで、やはり「動機づけ」なのかなと思い、自分の卒業論文をもう一度読み直してみた。それを読み、達成目標を設定し、そこに行く過程で生徒の状況を「価値づけしていく」ことが必要なのかと考えた。しかし、達成目標を個々に設定したりしているのもあり、そこが直接的な原因ではないのかもしれない。授業の流れを小学生のように課題化して行うことも中学生ならば可能ではあるが、以前やったこともある中で変化は見られなかったことから、そこも微妙な印象。

ここから、さらに漠然とするようになったが、なんとなくと「動機づけ」のような感じはしている。が、対策案が思い浮かばない。自分が教員として授業をしている中で、なぜしているのかということを自問自答している。もちろん思考力をつけるためであるが、少しぶれてきているのかもしれない。そもそも自分が考えてきた、思考力を伸ばせると思っていたやり方に疑問を感じているような気がする。

明日からの授業では、「価値づけ」と「目標設定」をもう一度行いたいと思う。

<尊敬する○○先生>

<教育>とは何か? ずっと自問してきた言葉でもあります。<教育>とは「教えて育つ」ということですが、’人’を教えて養育するということを、どう説明したら良いかわかりませんが、自分の子ですら親の思うように上手く育たないものなので、全然違う環境の中で育ってきた’生命体’を、それも「集団」という組織の中で一律に教育するということがいかに難しいことか常に悩んでいるところでもあります。

教師にとって、授業はまるで<生命>そのものであるでしょう。「教師は授業を通してものを言う」という話もあるくらいですからね。授業がうまくいかなければ教師は教職にやりがいを感じられないのではないかと個人的には思っています。

教師に授業の基本が備わっており、生徒も基本的な学習態度ができているなら、それほど大きな問題はないと思います。教師と生徒たちの間に互いに尊敬と学習に対する共感が形成されていれば、なおさらでしょうね。

最も重要なことは生徒を授業の主体、主人公にすることです。一方、学生が学ぶことの楽しさ、勉強する喜びを感じたらその授業は成功だとは思いますが、人間の集中できる能力は10分程度だといわれているから、45分を面白くするためには本当に大変な努力が必要です。私自身も教師時代を振り返ってみると、子供たちが毎回の授業でどうしたら積極的に取り組んでくれるかということを、教師として8年間、毎日悩みに悩みながら格闘していたと思います。グループ学習、発表学習、討論学習など、その間に教科知識などの説明などを上手に調和させるための努力を続けていた記憶があります。教師の一方通行式、詰め込み式、知識伝達だけの講義式の授業は通用しない時代ですからね。

ただ、私も、○年目の教師時代を迎えている○○先生と同じ悩みを持っていました。その時の私は○○先生のように謙虚でもなく、学究的な態度も持っていませんでした。私はとても有能な教師だという一種の慢心や傲慢に満ちていました。私の話は面白いし、説明もとてもうまく出来る教師なのに、なぜ子どもたちが100%ついてこないのだろうかと。自分の目には、みんな生徒たちが笑っていながら楽しく授業はしているものの、なんで子供たちが積極的に取り組んでいる様子は見えてないのかという問題で悩んでいました。教師の問題なのか、生徒の問題か。。

2年間、とても深く悩んでいたと思います。5年目までその悩みは続きました。いや、教師から教育行政職に移るまでずっとそういう悩みを持ちながら、少しずつ謙虚になってゆき、柔らかくもなっていったような気がします。他の教師たちの長所にも次第に気づくようになりました。

(ただ、機会があれば、なんで学校を離れて教育行政職に移ったのか、いつかまたお話します。)

ただ、今校長になって考える私の持論はこうです。

りんごを食べ終えて残った種を今度は桃が食べたいと言って、その種を桃として育てても、果たしてその種は桃の木に変わるでしょうか。教育は、本来そのもの、存在自体が持っているものがよく発現できるように、よく引き出せるようにしなければいけないものであって、自分が望む方向へその存在を勝手に変えるのではないという事実を認めてこそ、真の教師になると思います。

私の今言いたい話が上手く○○先生に伝わるか、理解できるか、わかりません。

今の我々教師たちは、子どもたちが持っている適性や素質を見抜くことよりも、親や教師、大人が望む方向へ導こうと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もしそうだとしたら、大いに反省する必要があると思います。幼い苗木は種類によって特徴が異なります。水が好きなもの、嫌いなもの。日差しを好むもの、好まないもの。それなのに、大人達は自分たちの決めた方向にその苗木を育てようとしていると思います。

教育とは、外部から何かを注入するのではなく、もともと持っていた素質を外に出してあげることだということを常に忘れないようにしています。

多分、○○先生の授業も同じだと思います。子供たちの○○先生に対する見方は二種類あると思います。「○○の先生」としての○○先生と、「人間」としての○○先生の二種類です。

たぶん「人間」○○先生に対してはハンサムで頭がよくて柔らかくて繊細で素敵な先生だと思っているでしょうし、「○○の先生」である○○先生として接する時は難しい○○という教科はとても退屈だけど、授業を楽しく熱心に教えようとしている先生なのでちゃんと聞こうという子達が大半だと思います。

私が今差し上げるこの手紙には○○先生が望む答えがないかもしれません。

私は教師時代の時には悩んでもいなかったこと、また教育行政職の時代にも、韓国内で中学校の管理職をしていた時代にも悩んでいなかったことを、今我が金剛学園の校長として働きながら、毎日悩んでいます。

初めて経験するような問題が毎日起こるので、ちょっと大変ではあります。三年目になる今が一番大変な時期かもしれません。でも、そういう忙しい中でも、我が子のような、家族のような先生方に深い悩みがあったら、一番先に走って一緒に悩んであげたいし、痛いところは治療してあげたいし、とにかくそういう気持ちで、あまりにも整理できてない文章ではありますが、何とか早く書いて上げたい気持ちで書きしました。しかも将来が嘱望される○○先生のことですから、昨晩くださった手紙を繰り返し繰り返し読みました。

これからも今の悩みは続くでしょう。たぶんそんな悩みたちに “波” があるはずです。自信を持つようになる時もあるでしょうし、逆にもっと大変になる時期もきっとあると思います。その度に、絶対にあきらめず、’人間’○○も

‘教師’○○にも、絶対自信も持ち、確信を持ってください。

私は100%断言できます。わずか○年間しか、先生を見ていませんが、先生は子供たち一人一人のために悩み、そして、子供たちの前に立って恥ずかしくない教師の姿を一生懸命に努力して見せようとしています。その様子を子供たちはよく見ていますので、先生は将来必ず立派な教師になると確信しています。

また、ひとつ自信を持って申し上げられることは、これからキャリアを積んでいく中で、そのような悩む過程が絶対に必要ですし、もし悩みが解決できたとしても、またその後、別の悩みが出て来ることを忘れないでください。そのような悩みと答え探しの繰り返しが○○先生の’年輪’につながると確信しています。

時間がなくて急いで書いたので間違えた日本語も多かったと思いますが、理解して読んでください。この手紙には何の返事もいりません。悩み事が出来たらいつでもまたどんな内容でもいいですので、お話しいただければ本当にうれしいです。

편견 偏見

강원구님의 글을 읽으면서 무척 동감이 되었기에 여기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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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편견이 생겼다.

진심으로 다가가면 상대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편견이었다.

오히려 진심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보는 능력이 훨씬 중요했다.

세상은 함께 가야만 살 수 있는 거라 생각했다. 편견이었다.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만 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5년째 일을 재계약을 해서 내가 잘난 거라 믿었다. 편견이었다.

같이 일하는 분들이 나를 어여삐 봐주는 거였다.

공과 사는 다른 거라고 굳건히 믿으며 살아왔다. 편견이었다.

공도 사도 다 사람 사는 세상임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편견이었다.

도움을 주고받는 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잘 바꾸질 않는다. 편견이었다.

물은 오래도록 고이면 썩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치는 인연은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편견이었다.

말 그대로 스치는 인연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수많은 편견들을 보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바보인 만큼 나도 바보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것만큼은 편견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 강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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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람인지라 자꾸 편견 아닌 편견이 생기곤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내 속마음을 말하고 진심으로 다가가면 다 이해해 줄거라 생각했다. 편견이었다.

사람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열과 사랑을 가지고 학교를 이끌면 바로 효과가 나타날 것 같았다. 편견이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이며, 그 효과는 절대 쉽게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교장으로 있는 한 절대적으로 모든 구성원이 날 좋아하고 따를 거라 생각했다.

근데 그건 편견이었다.

그저 주변의 칭찬과 입에 발린 말들만 내가 듣고 싶을 따름이었다.

편견이란,,자기가 겪어보지 않았거나 또는 잘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좋게 생각하거나 아니면 나쁘게 생각하는 두 종류의 생각,,그 중간이란 것은 없지 않나 싶다.

한국 사람들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제일 선호한다. 일명 “철밥통”이니까..

철밥통이라는 말은 밥통이 철로 되어있으니 그 얼마나 단단한가. 즉 어떤 경우에도 잘리는 일 없이 안정적이고 나중에 은퇴 후 연금까지 받을 수 있다는 말에서, 철밥통 같은 직장이라는 말을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고생해서 공부하여 공무원이 된 사람들이, 일하다가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그만두기도 하고 자살까지 한 사람들도 있다. 답은 단순하다.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편견. 있을 수 있다.그러나 편견이 내 본래의 생각을 잡아먹어서는 안되며,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싶다.

금강학원이 500여명 이상, 아니 1,000명 이상의 큰 학교로 성장함은 물론 글로컬(글로벌+로컬) 리더로 자라날 아이들의 집합체가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사실을,,

이것은 절대 윤유숙이 갖는 편견이 아닌, “절대적 사실”로 꼭 이루어 낼 것이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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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ウォングさんという方の文章を読みながらとても同感したので、ここに紹介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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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きていて、私も知らないうちに偏見ができた。

 

本気で近づけば相手もそうなるだろうと思った。偏見だった。

むしろ真心で近づいてくる人を見る能力がはるかに重要だった。

 

世の中は一緒に生きていってこそ生きられるものだと思った。偏見だった。

一緒に生きていける人だけが一緒に行くのがもっと重要だということが分かるようになった。

5年目仕事を再契約をしたので、自分が偉いと信じた。偏見だった。

一緒に働く人たちが自分を大目に見てくれていたのだ。

公と私は別だと堅く信じながら生きてきた。偏見だった。

公も私も、人が生きる世の中では全部同じだということを知った。

誰かの役に立つだろうと信じた。偏見だった。

助け合うのは人間の領域ではないということに気が付いた。

人でも物でもなかなか変えられない。偏見だった。

水は長い間たまってしまったら腐るということを知った。

すれ違う縁はないと思った。偏見だった。

言葉通り、すれ違う縁も多いことを知った。

私の数多い偏見を見ながら、私は分かるようになった.

私がバカなだけに私もバカたちが好きだということを…

これだけは偏見でなかったらいいなぁ。

ー姜ウォング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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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も人間なので、しきりに"偏見ではない偏見"が生じたりする。

すべての人に私の本音を言って、心から近づけば、すべての人が理解してくれると思った。偏見だった。人々は簡単には変わらないことを知った。

情熱と愛を持って学校をリードしていけば、すぐに効果が現れるだろうと思った。偏見だった。

教育は百年の大計であり、その効果は決してすぐには現れないことを知った。

私が校長を務めている限り、絶対的に全てのメンバーが自分のことを好きになり、従うだろうと思った。しかし、それは偏見だった。

ただ、周りのほめ言葉と耳に聞きやすい言葉だけを私が聞きたいだけだった。

偏見とは、自分が経験していないことか、またはよく知らないものについて、良く思うか、悪く思うか、の2つの考えである。その中間というものはないのではないかと思う。

韓国人は公務員という職業を一番好む。いわゆる「鉄の飯びつ」だから。

「鉄のおひつ」という言葉は、おひつが鉄でできているので、どれほど固いことか。つまり、どんな場合でも首になることなく安定的で、引退後は年金までちゃんと受け取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言葉から「鉄のおひつのような安定した職場」と言う。

しかし、そのように苦労して勉強して公務員になった人々が、働くうちにうつ病になったりして、辞めたり、自殺までした人もいる。答えは単純だ。適性に合わなかったからだ。

偏見、あり得る。

しかし、偏見が自分の本来の考え方まで食い止めてはならず、自分が誤った考えをしていることを自ら認識しなければならない。

しかし、しかし、それでも、それにもかかわらず、自分は信じたい。

金剛学園が500人以上、いや1,000人以上の大きな学校へと成長することはもちろん、グローカル(グローバル+ローカル)リーダーとして育つ子供たちの集合体になる日が必ず来るという事実を。

これは絶対尹裕淑が持つ偏見ではなく、「絶対的事実」として必ず成し遂げられると確信する。 ファイト!

 

원칙 변칙 반칙 벌칙(原則 変則 反則 罰則)

오늘은 내 평소 지론을 말하고 싶다.

예전 교육행정 업무들을 할 때의 일이다.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법령 개정 등을 하면서 네 단어 “원칙, 변칙, 반칙, 벌칙” 을 정의 내리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아니, 그 당시 뿐 아니라 지금도 현재진행형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원칙이 있고 변칙도 있고 반칙도 있으며 벌칙도 있다.

원칙은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을 말하고, 변칙은 원칙에서 좀 벗어난 법칙이나 규정을 말하며, 반칙은 법칙이나 규정을 어긴 것이고, 벌칙은 법규를 어긴 행위에 대한 처벌을 정하여 놓은 규칙이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원칙이 지켜지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여기에서 말하는 원칙과 상식은 누구나가 흔쾌히 수긍하고 따를 수 있는 보편타당한 것이어야 하는데, 정작 세상에는 불편부당한 규칙도 많이 있다. 그래서 변칙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또 누군가는 반칙을 하고 벌칙에 따라서 처벌을 받는다.

원칙이 답답하고 불만족스러우니 변칙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인데, 변칙과 반칙의 경계는 매우 애매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변칙은 벌칙의 적용을 받지 않을 수 있는데, 반칙은 벌칙의 적용을 받는다. 이쪽은 약간의 변칙을 쓴 것인데, 상대방은 반칙이라고 우기면 어느새 반칙이 될 때도 있고, 반대로 상대가 확실히 반칙을 해 놓고서는 이번엔 변칙이라고 우기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서의 여러 규칙들, 나는 우리 학교의 룰들이 비교적 엄격한 편이라고 느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매우 아름답고 소중한 규칙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딱 하나, 참으로 일본답고 참으로 금강다우니까…

그런데 최근 우리 학교에 젊은 선생님들이 많이 채용되면서, 교칙에 대한 교육관이 각기 다양함을 느끼곤 한다. 다만 교무실 내 교칙 관련 교육관이 서로 통일되지 않아 가끔 교사들 간의 의견이 대립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교사 본인이, 교칙에 대하여 납득하지 않다보니 왜 학생들을 통제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게 되고, 그래서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에 강한 스스로의 갈등과 고민이 있다는 것을 최근 알게 되었다.

몇 달 전 교직원 회의를 하면서 교칙 관련 교사 간 토론을 교장으로서 제안하였고, 지난 달 교사들 전원이 심도있는 토론과 협의를 하면서 어느순간 하나가 되는 금강 교직원을 느끼게 되었다.

한 지붕 아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우리 가족, 즉 하나의 금강학원이라는 큰 테두리 속에 살아가는 우리 금강 식구들!

그 안에서 “교육자”인 우리가 하나의 잣대로 한 목소리, 하나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즉 기본 룰을 조금 변형한 본인만의 룰, 상한선을 만들어 학생들을 통제한다면 그건 본인 안에서의 변칙이라 주장하겠지만, 금강이라는 하나의 큰 틀에서 보면 그건 반칙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원칙과 상식을 지키려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 보는 조직이 되어서는 안된다.

조금 맞지 않는 원칙이 있다면 서로 협의하고 맞춰가면서,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을 강구하는 우리 금강학원이 되도록, 나 역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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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は自分の普段持っている持論をお話ししたい。

以前、教育行政の仕事をしていた時のことである。教育政策を立案し、教育関連の法令の改定をしている時、四つの単語“原則、変則、反則、罰則”を定義するのがとても大変だった覚えがある。いや、当時だけではなく、今も現在進行形であるかも知れない。

私たちが生きている社会には原則があり、変則もあり、反則もあり、罰則もある。

原則は基本的な規則や法則を言い、変則は原則から少し外れた法則や規定を言い、反則は法則や規定を破ったもので、罰則は法規を破った行為に対する処罰を定めた規則である。

多くの人は言う。原則が守られて常識が通じる世の中で暮らしたいと。。。

ここで言う原則と常識は、誰もが喜んで納得して従うことができる普遍で、妥当なものでなければならない。ところが、世の中には不便で不当な規則もたくさんある。それで変則という言葉が生じてしまう。

また、誰かは反則をし、罰則に従って処罰される。

原則が息苦しくて不満に思えるために、変則で変化を試みるのだが、変則と反則の境界は本当に曖昧なところがある。滑稽なことに、変則は罰則の適用を受けないことがある反面、反則は罰則の適用を受ける。 こちらは若干の変則を使ったと主張するが、相手は反則だと言い張ると、いつの間にか反則になる時もあれば、逆に相手が確実に反則をしておいて今度は変則と言い張る場合もある。

学校のさまざまな規則に関して言うと、私は我が校のルールが比較的厳しいほうだと感じる時もあるが、とても美しくて大切なものだと思っている。理由は一つ。それが本当に日本的であり、うちの学校らしいから。。。

ところが、最近、我が校に若い先生たちが多く採用され、校則に対する教育観がそれぞれ違い、多様さを感じたりする。ただ、職員室内の教則関連の考え方にずれが生じ、互いに統一されていないため、時には教師間の意見が対立する傾向もあるようだ。

教師本人が校則に対して納得できていないので、なぜ学生たちを統制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理解ができなくなり、そのため学生たちを教育と言う名のもとで指導することに、強い自らの葛藤と悩みがあることを最近知った。

数ヶ月前に教職員会議を行い、教則について教師間の討論を校長として提案し、つい先月、教職員全員が深みのある討論と協議をしていくうちに、金剛学園の教職員がいつの間にか一つになっていくのを感じるようになった。

一つの屋根の下に様々な人々が集まっている我が家族、金剛学園という大きな枠の中で生きていく我が金剛家族たち!

その中で「教育者」である私たちが一つの物差しで、一つの声、一つの原則を守らなければ、つまり、基本ルールを少し変形して先生だけのルールを勝手に作って統制するならば、それはその先生の中では’変則’だと主張するかも知れないが、金剛という一つの組織という次元から見ると、それは’反則’に違いないと思う。

原則と常識を守ろうとする人が損をする組織になってはならない。少し自分と合わない原則があれば、お互いに協議し合わせながら、最善ではなくても次善の策を講じる私たち金剛学園になるように、私も最善を尽くして頑張っていきたい。 ファイト!

인간답다는 것은 人間らしいとは

<<웰빙, 웰다잉, 웰에이징>>

2019학년도가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월. 1년의 반이 흘러버렸다. 한 달에 한번은 이곳 “교장의 정원”에 들어와 글을 남기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이 현실.. 구차하고도 긴 변명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 시간 이후로는 자주 들어와 흔적을 남겨야지..하고 조심히 결심해 본다.

오늘은 좀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웰빙(Wellbeing) 이라고 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죽는 것을 웰다잉(Welldying) 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늙는 것을 웰에이징(Wellaging) 이라고 한다.

한때 한국에서 ‘웰빙’이라는 단어가 엄청난 붐을 일으켰었다.

‘웰빙’의 어원은 물론 영어의 ‘well-being’이지만, ‘well-being’이라는 단어에는 한국에서 쓰이는 그런 뜻은 없다. 영어 ‘well-being’에는 ‘안녕(安寧)’, ‘복지’라는 뜻밖에 없다.

철학에서는 ‘삶의 질’ 정도로 이해되는데, 누군가의 웰빙이 높다는 건 곧 그 사람의 삶이 높은 퀄리티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불었던 웰빙 열풍을 영어로 설명할 때는 ‘웰빙’을 아예 한국어 단어로 정착한 것으로 보고, 영어 ‘well-being’이 아니라 한국어를 로마자로 옮긴 ‘wellbing’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더 파생되어 만들어진 단어, 웰다잉. 웰에이징^^

사람의 연령에는 자연연령, 건강연령, 정신연령 등이 있다고 한다. 영국의 어떤 심리학자는 인생의 4분의 1은 성장하면서 보내고, 나머지 4분의 3은 늙어가면서 보낸다고 했다.

사람이 아름답게 죽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다 어려운 것은 아름답게 성장하거나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즉, 행복하게 성장하거나 늙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웰빙..웰다잉..웰에이징..

사람답게 잘 살고, 사람답게 늙어가며, 사람답게 죽는 것, 나한테는 다 같은 말처럼 들리는 이유는 뭘까. 결국 이 세 가지 단어가 추구하는 “사람답게”라는 공통어구 때문일 것이다.

이 세 단어를 만족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나는 두 포인트를 제시한다.

첫째, 잘 살고 아름답게 늙어가다가 멋지게 죽기 위해서는 일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열정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노년을 초라하지 않고 우아하게 보내는 비결은 열정이다.

어느 책 구절에, 세계 역사상 최대 업적의 35%는 60-70대에 의하여, 23%는 70-80세 노인에 의하여, 그리고 6%는 80대에 의하여 성취되었다고 한다.

결국 역사적 업적의 64%가 60세 이상의 노인들에 의하여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은 80이 넘어서였고, 다니엘 드 포우는 59세에 ‘로빈슨 크루소’를 썼고, 칸트는 57세에 ‘순수 이성비판’을 발표하였다고 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둘째,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서 초라하지 않으려면 대인관계를 잘 하여야 한다. 즉 인간관계를 ‘나’ 중심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중심으로 가져야 한다. 개와 고양이가 서로 사이가 안 좋은 이유는 서로 소통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는 반가우면 꼬리를 흔드는데 고양이는 상대를 공격할 때 꼬리를 흔든다. 즉, 개는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지만 고양이는 “이놈이 나를 공격하려고 하네?”하며 발톱을 세우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 신경 쓰는 일이 많아서인지 혈압이 평소보다 많이 오르는 것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인지 웰빙, 웰다잉, 웰에이징이라는 말이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누군가가 그랬다. 운동은 건강을 위해 필요하듯이 건강은 일을 위한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내가 현재 가장 소중히 생각하고 사랑하는 나의 직장 오사카금강학교, 그리고 내 소중한 가족을 위해 나의 건강도 조금은 생각하고 돌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ウェルビーイングウェルダイングウェルエージング>>

2019年度が始まったのが一昨日のような気がするのに、今はもう6月。1年の半分が過ぎてしまった。月に一度は「校長の庭園」に文章を残したいと思っていたが、思い通りにならないこの現実。長い弁明はしたくない。ただ、今後はこの「庭園」に入って足跡を残さなければと密かに決心してみる。

今日はちょっと特別な話をしたい。

人が人間らしく生きることを『ウェルビーイング(Wellbeing)』といい、人が人間らしく死ぬことを『ウェルダイング(Welldying)』という。そして人が人間らしく老いることを『ウェルエージング(Wellaging)』という。

一時期、韓国で『ウェルビーイング』という単語が大ブームを巻き起こしたことがある。『ウェルビーイング』の語源はもちろん英語の”well-being”であるが、”well-being”という単語には韓国で使われているような意味はない。英語の”well-being”には「安寧」「福祉」という意味しかない。

哲学では「生活の質」程度で理解できるが、誰かの「ウェルビーイングが高い」ということは、まさにその人の暮らしが高いクォリティを持っているということだ。

韓国で話題になったウェルビーイングブームを英語で説明する際には、「ウェルビーイング」を最初から韓国語の単語として考え、英語の”well-being”ではなく韓国語をローマ字に移した”wellbing”という場合もある。

ここにさらに派生して作られた単語、ウェルダイング。ウェルエージングなどもある。

人の年齢には自然年齢、健康年齢、精神年齢などがあるという。英国のある心理学者は「人生の4分の1は成長しながら過ごし、残りの4分の3は老いていきながら過ごす」と唱えた。

人間が美しく死ぬというのはさほど難しいことではない。しかし、難しいのは、美しく成長し、美しく老いていくことだと思う。すなわち、幸せに成長したり年を取ったりすることは容易ではない。

ウェルビーイング、ウェルダイング、ウェルエージング…

人間らしく生き、人間らしく老いて、人間らしく死んでいくこと。私にはみんな同じ言葉のように聞こえる理由は何だろうか。結局この三つの単語が追求する「人らしく」という単語のせいであろう。

この三つの単語を満足するための条件として、私は二つのポイントを提示したいと思う。

第一に、豊かに暮らし、美しく老い、かっこよく死ぬためには、仕事との関係が重要だと考える。年齢を重ねるほど情熱を失わない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

ある本の一節に、「歴史上の最大の業績の35%は60-70代の人によって、23%は70-80歳の老人によって、そして6%は80代の人によって成就された」とあった。つまり、歴史的業績の64%が60歳以上の老人たちによって成就されたということだ。

ゲーテが「ファウスト」を完成したのは80を超えた時であり、ダニエル・デフォーは59歳で「ロビンソン・クルーソー」を書いており、カントは57歳の時に「純粋理性批判」を発表したという。どれほどすばらしいことか。

第二、人間関係が大変重要だと思う。年を取ってみすぼらしくならないためには対人関係を円満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つまり人間関係を「私」中心ではなく、「人との関係」中心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犬と猫が互いに仲が良くない理由は、お互いの意思疎通の方法が違うためだという。犬は嬉しければしっぽを振るが、猫は相手を攻撃する時しっぽを振る。つまり、犬はうれしくて尻尾を振るが、猫は「こいつが私を攻撃しようとするのか」と爪を立てるのだ。人間関係もこういうものではなかろうか。

最近気を使うことが多いからか、血圧が普段より高いことが多い。そのためか、ウェルビーイング、ウェルダイング、ウェルエージングという言葉が、さらに大事に感じられる。誰かが言った。「運動は健康のために必要であると同じく、健康は仕事の前提条件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

私が今一番大切に思う、愛する私の職場の金剛学園。そして、私の大切な家族のために自分の健康も少しは考えて大事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自分に言い聞かせ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