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렸을 적.. 私の子供の時。。

굉장히 거센 바람과 비.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태풍’이라는 녀석은 올해도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며 우리를 찾아왔다. 일본 오사카에서 느끼는 태풍의 강도는 한국에서보다 훨씬 센 듯한 느낌이다.

나 어렸을 적.. 행여 천둥, 번개에 내가 놀랄까봐 세 명의 딸들을 옆에 두고, 막내인 나만 포근하게 안아주셨던 엄마 품이 있어 참으로 행복했다.

결혼하여 딸들을 연달아 세 명 낳고, 아들이기를 바라다가 또 임신이 되신 우리 엄마.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별의 아이를 낳아보고 싶으신 우리 부모님이셨다.
배가 유난히 불러 아들인 줄 알았는데 낳아보니 또 딸이었다고 한다. 그게 나였다…
그때부터 파란만장한 나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집은 서대문 냉천동의 한옥집이었다.
안방과 건넛방, 작은 마당 넘어 공부방, 그리고 좁다란 담장길을 따라 아주 자그마한 골방이 있는, 그런 아담한 집이었다.
그곳에서 난 초등학교 2학년까지 살았고, 그 후 아주 크고 넓은 2층 양옥집으로 이사갔지만, 어린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그 한옥집은 아직도 내겐 마음의 고향이다.
첫째언니는 굉장한 큰 덩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엄마가 임신 중에 좋은 영양제를 많이 드신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우리 불쌍한 동생들을 무섭게 거느렸다.
둘째언니는, 첫째언니의 몸이 너무 커서 힘들게 낳으셨던 엄마였기에 이번엔 일절 영양제도 안 먹고 일부러 몸도 많이 움직이고 일을 하여, (첫째언니 때와는 반대로) 아주 작고 비실비실한 몸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첫째와 둘째 딸이 너무 극과 극의 대조를 보였기 때문에, 셋째와 넷째는 정상적으로 낳으려고 나름의 노력을 하셨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 딸 넷은 온 동네를 누비며 재미있게 오손도손 서로를 아끼고 감싸며 행복하게 자라났다. 부모님이 없을 때는 엄마 한복들을 꺼내 입고 공주놀이를 하며 놀았다. 첫째언니는 늘 왕비역할이었고, 둘째언니는 공주, 셋째언니는 신하, 막내인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김없이 거지가 되어 엄마의 예쁜 한복을 입을 기회조차 없었다. 한번은 배구놀이를 한답시고 안방에 줄을 긋고 풍선을 배구공으로 하여 한국팀과 일본팀이 되어 뛰어놀다가, 부모님이 제일 아끼시던 도자기를 깨뜨려서 아버지의 무서운 회초리 세례와 함께 ‘골방’에서의 한 시간 반성이라는 벌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의 여신은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고, 우리 네 명의 딸들은 각자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첫째언니는 독일로 유학을 떠나 오랜기간 머물다가 대학교수가 되어 돌아왔고, 둘째언니는 프랑스어를 전공했지만 전공언어를 전혀 써보지도 못하고 인연도 없던 일본으로 시집가 살다가 위암에 걸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녀석을 두고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 성악을 전공한 셋째언니는 음악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이젠 옛날의 천방지축 개구장이 딸들의 모습이 아닌, 각자의 삶을 멋지게 거느리며 살아가는 어엿한 대한민국 중년여성들이 된 것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아침이면 태양을 볼 수 있고 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음에 행복하고,
잠이 들면 다음날 아침 깨어날 수 있음에 또한 감사하다고..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무사히 건강하고도 행복하게, 또한 평안하게 살아올 수 있었으니 그또한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내 나이 마흔 일곱.
내게도 ‘가정’이라는 것이 생겼고, 사랑스러운 아들들도 곁에 있다.

그러나 가끔씩 내 마음 한 켠이 허전하고 답답한 것은..
아마도 어렸을 적 내 가족들과 함께 지냈던 그 추억의 시간들로 돌아갈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그리움들이 교차해서가 아닐까.

오늘처럼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바람이 거세게 부는 무서운 날씨엔,, 어린 시절 그저 부모님 밑에서 철없이 울고 떼쓰면 모든 것이 해결됐던 그 두껍고도 강력한 ‘보호막’이.. 그 ‘울타리’가… 무척 그립고 아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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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の子供の時。。

とても激しい風と雨。
毎年必ず訪れてくる’台風’というやつは今年も強力なパワーを誇り、私たちを訪ねてきた。日本の大阪で感じる台風の強度は韓国より、はるかに強いような感じだ。

子供の時、もしや雷、稲妻に私がびっくりするかと思って三人の娘たちをそばに置いて、末っ子の私だけを穏やかに抱いてくれた母の懐が、本当に幸せだった。

結婚して娘たちを相次いで三人生んで、次は息子であることを望むうちに、また妊娠してしまった母。
今までとは違う性別の子供を生んでみたい母だった。
いやにお腹が突き出して息子だとばかり思ったのに生んでみたらまた娘だったという。それが私だった。
その時から波乱万丈な私の人生が始まった。

韓国での幼少期(4姉妹の生い立ち)

私が生まれた時、我が家はソウルの西大門冷泉洞にある韓屋だった。
奥の間とむかい側の部屋、小さな庭を越えてのお勉強部屋、そして小さな塀に沿っていったらとても小さな小部屋のある、こじんまりとした小さな韓屋だった。
そこで私は小学2年生まで暮らし、その後はとても大きくて広い2階の洋館の家に引っ越していったが、幼い頃の思い出がそのまま盛り込まれた、その韓屋はいまだに私には心のふるさとである。

一番上の姉は、かなりの巨体を持っている人で、(母がが妊娠中に良い栄養剤をたくさん飲んだためだという)強力なカリスマで私たち可哀相な妹たちにすごみを利かせた。
二番目の姉は、一番上の姉の体が大きすぎてしんどい思いをした母だったので、今回は一切栄養剤も飲まずにわざわざ体もたくさん動かして仕事をし、(一番上の姉の時とは正反対に)非常に小さくへなへなした体で生まれたという。
長女と二女がとても極と極の対照を見せたため、三女と四女は、普通の子に生もうとそれなりの努力をしたと言う。

とにかく、私たちは町中を走り回りながら面白く仲良くお互いを愛しながら幸せに育った。 両親がいない時は母の韓服を取り出して着てお姫様遊びをして遊んだりもした。一番上の姉はいつも王妃の役割であり、下の姉は姫様、三番目の姉は臣下、末っ子の私はいつも自分の意志とは関係なく決まって乞食になって、母のきれいな韓服を着る機会すらなかった。ある時はバレーボールの遊びをすることになり、奥の間の真ん中に線を引き、風船をボールとして韓国チームと日本チームに分かれ遊び回っていたが、親が一番大事にしていた陶磁器を割って父の猛烈なむち洗礼とともに、あの怖い’小部屋’での一時間もの反省という罰を受けたりもした。

それぞれの道へ

しかし、歳月の女神は私たちを放っておらず、私たち四人の娘たちは各自の道を行くことになった。
ピアノを専攻した一番上の姉はドイツに留学、そこで長い期間滞在し、ついに大学教授になって戻ってきており、二番目の姉はフランス語を専攻したが、専攻言語を全く使ってみることもできなくて、縁もなかった日本に嫁いでいって胃がんになり、愛する夫と息子を置いたまま先に天国に行ってしまった。声楽を専攻した三番目の姉は音楽教師として勤めている。
もう昔のわんぱく娘たちの姿でなく、各自の人生を見事に抱えながら生きていく、いつの間にかれっきとした大韓民国の中年の女性になったのだ。

誰かがこう言った。
朝には太陽が見られ、夜には星を見ることができることが幸せで、
寝たら翌日の朝目覚めることができることもありがたいと。。。
振り返ってみると、今まで無事に健康で幸せに、また安らかに過ごして来れたから、これ以上ありがたいことはないと思う。

母親となった今

もう私も四十七才。
私にも’家庭’というのができ、可愛い息子たちもそばにいる。

しかし、たまに私の心のどこかが物足りなくてもどかしい理由は。。。
おそらく子供の時私の家族たちと一緒に暮らしていた、その思い出の時間に二度と戻れないというもどかしさと懐かしさが次々とわき起きているからではなかろうか。

今日のように激しい雨が降り風が吹き荒ぶ恐ろしい天気の日には、、幼い時の、ただただ親の下で分別なく泣いて駄々をこねたらすべてが解決できた、その厚くてかつ強力な’保護膜’が、、、その’垣根’が、、、とても懐かしくてかすかに感じられる。

本校主管で”第54回在日韓国人教育研究大会”が奈良県で開かれました。

지난 8월 17일과 18일(1박2일) 본교 주관으로 “제54회 재일본한국인교육연구대회”가 나라현에서 열렸습니다. 이 대회는 일본 전역에 있는 한국학교, 한국교육원, 민단 교육관계자, 민족학급, 한글학교에서 종사하는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보공유 및 토론을 하는 의미있는 워크숍입니다. 본교 주관인만큼 본교 전 교직원들이 단합하여 대회를 주관하였고, 모든 참가자들이 본교 선생님들의 놀라운 팀워크와 매끄러운 진행, 단합된 행동 등에 감탄을 했습니다.

다음 글은 폐회식 때 대회장으로서 마지막 인사를 했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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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두 마리의 개(犬)를 키운다고 합니다. 이 두 마리의 개에게는 이름이 있는데, 하나는 “선입견”이고, 또 하나는 “편견”입니다.

이 두 마리의 개는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고 더 넓어지며 더 단단해집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우리 교원들은 특히나 이 두 마리의 개를 절대 키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또는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는지요?

그런데 또 한 마리의 특별한 개가 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는 개입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라는 뜻이지요. 직접 보지 않고 들은 얘기로 상대를 판단하면 큰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사실을 그대로 보고 느끼고 파악하며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해야 합니다.

이 개의 애칭은 ‘일견’(一見)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우리 교사들이 “일견”을 키우고 “선입견”과 “편견”을 제압하면서 동시에 정확한 눈으로 학생들과 주변사람들을 바라봐야할 것 같습니다.

학교는 교장의 열성만큼 발전하고 학생은 교사의 사랑만큼 성장한다고 합니다.
아무쪼록 사랑과 정열로 최선을 다하는 우리 재일본한국인교육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와 오늘의 이틀을 위해 대회장인 저를 중심으로 저희 학교 교직원들이 올해 일찍부터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잘 따라와준 우리 교직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본 대회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께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점이 있으셨다면 양해해 주시고, 내년 대회를 열게 될 교토에서 더 멋진 대회가 되도록 잘 인수인계하겠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去る8月17日と18日(1泊2日)本校の主管で”第54回在日韓国人教育研究大会”が奈良県で開かれました。

この大会は、日本全域にある韓国学校、韓国教育院、民団の教育関係者、民族学級、ハングル学校に従事している先生たちが一カ所に集まって情報共有や討論をする有意味なワークショップです。

今年は本校の主管であるだけに、本校すべての教職員たちが一致団結して大会を主管しましたし、全ての参加者たちが本校の先生たちの驚くべきチームワークと滑らかな進行、団結した行動などに感動していました。 下記の文は、閉会式の時、大会長としてお話しした挨拶の内容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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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は誰もが先入観と偏見を持っている

人は誰もが心の中に二匹の犬を飼っているそうです。この二匹の犬には名前がついていますが、一匹目の名前は”先入見”(日本では先入観ですが、韓国では'先入見'または'先入観'の両方を言います)という名で、二匹目の名前は”偏見”という名だそうです。

この二匹の犬は、時間が経つほどもっと大きくなり、もっと広くなり、もっと丈夫になります。児童生徒たちを教える我々教員たちは、この二匹の犬を絶対に育ててはいけないと思いますが、知らないうちに、私達は子供たちだけでなく周囲の人々にもあまりにも多くの先入見と偏見を持っ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先入見”と”偏見”を制圧しながら正確な目で相手を見なければいけない

ところで、私達の心の中にはもう一匹の特別な犬がいるそうです。”百聞は一見に如かず”という犬だそうです。これは”百回聞くより実際に一度見た方が良い”という意味ですね。直接見ないで聞いた話だけで相手を判断したら大きな間違い(失敗)を犯すことになります。事実をありのまま見て感じて把握しながら理解するためには、その対象と開かれた対話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の犬の愛称は’一見’と呼ぶそうです。児童生徒たちを教える私達は、こういう”一見”を育て、”先入見”と”偏見”を制圧しながら正確な目で相手を見なければいけないと思います。

無限の愛と情熱を持って悔いのない最善を尽くす在日本韓国人教育者になって頂きたい

学校は校長の情熱の熱さと強さに比例して発展し、児童生徒は教師の愛の深さと広さに比例して成長するそうです。どうか無限の愛と情熱を持って悔いのない最善を尽くす在日本韓国人教育者になっていただけたらと思います。昨日と今日の二日間のために、うちの学校の教職員一同は今年は特に早い時期から、最善を尽くして準備を致しました。よくついてきてくれた教職員達にこの場を借りて深い感謝の気持を伝えたいと思います。

最後に

なにとぞ本大会に出席してくださった皆様に少しでも不便な点がございましたら了解していただいて、来年の大会の主管校の京都ではもっと素敵で盛大な大会になるように引継ぎをきちんとさせていただくことを約束します。 お気をつけてお帰りください。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