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이원화 記憶の二元化

<기억의 이원화>

오래간만에 이 방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처음 각오로는 매달 한번씩 글을 올려야지 싶었는데.. 조용히 앉아서 커피 한잔을 마실 시간이 없을 정도로 매일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레 글을 올리는 것도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보면 가끔 제 기억과 상대방 기억에 차이가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느 쪽인가가 착각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잘못된 기억을 머릿속에 입력시키고 완전히 그것이 사실인양 본인 머릿속에 정착화 시킬 때가 많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경우 이외에, 내 안에서 이원화되는 기억을 바라보곤 합니다.

우리가 ‘겪었던’ 과거라는 시간과,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가 가끔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말입니다.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사실인 ‘팩트’인데, 가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과거에 인간의 독특한 왜곡된 생각을 집어넣어 과거와는 조금 다른 사실로 기억하곤 합니다.

때로는 지난 과거가 사실보다 더 미화되기도, 때로는 지난 과거가 사실보다 더 나쁘게 변질되어 슬픈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이 나에 대해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되듯이, 지금의 나도 과거의 나에 대해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때의 나는 그렇게 해야만 했던 것이지요.

저 역시 이곳 금강에서 학교장으로서 근무하면서 판단한 여러 일들이, 후대에 어떻게 판단될지 모르나 그때의 저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그 당시에는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후대에 이해해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제 마음이 조금은 편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여러분들이 하셨던 행동들과 신념들에 있어 강한 확신을 가지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그 행동이 정말 좋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먼저 본인 스스로 그 신념에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주변 선배들이나 동료, 가족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조언을 구한다는 것, 꽤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용기를 내어 조언을 구할 때, 주변 선배나 동료, 가족들은 솔직한 객관적 평가를 해주고 어드바이스해 줄 수 있는 그런 우리 금강가족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금강 가족 여러분!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테리이며, 그리고 오늘은 선물이라고 합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버려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고 내일 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이라는 시간은 확실하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우리에게 주어진 이 ‘현재’를 감사히 여기면서 멋지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막막해보여도 분명 우리들의 길은 가장 아름다운 곳을 향해 뻗어 있을 겁니다.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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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憶二元化>

この部屋に入るのは久しぶりですね。初めは毎月一回ずつ掲載する予定だったのですが、、、

静かに座ってコーヒー一杯さえ飲む時間がないほど、毎日忙しく生活しているうちに、自然と遠ざかってしまいました。

仕事をし、そして多くの人と会っていると、たまに自分の記憶と相手の記憶に食い違いのあることがあります。どちらかが勘違いをしているか、あるいは間違って覚えているからでしょう。 私もそのようなことがしばしばあります。

時には、自分の中でさえ、記憶が不確かになることがあります。過去を美化して記憶していたり、反対に、実際にあった以上に悪く記憶してしまうこともあります。

しかし、今の記憶がどうあれ、その時の私はそうするしかなかっただろうし、その時はそれが最善だと思って、したのだろうと思います。

私もここ金剛で、学校長として勤務しながら判断したいろいろな事が、後からどう評価されるかわかりませんが、その時の私はそうするしかなかった、その当時は最善の決定だったと理解していただけることを望むだけです。

そう思うことで気持ちは楽になります。

この文を読んでいる皆さんも、何か迷うことあっても、信念と確信を持って行動なさるといいと思います。時にはその判断が間違っている時もあるかもしれません。そんな時は周囲の人に相談なさるといいと思います。

アドバイスを求めるのも時には勇気が必要ですが、金剛の家族はきっと親身になって相談に乗ってくれると思います。

愛する金剛の家族の皆さん!

昨日はヒストリーであり、明日はミステリーであり、そして今日はプレゼントだと言います。昨日はすでに過ぎてしまって二度と帰ってこない。明日は何が起こるか分からない。

しかし、今日という時間は確実に私たちに与えられている。だから、私たちは現在(present)をプレゼント(present)だと言うのでしょう。私たちに与えられたこの「現在」を有難く思いながら充実した「今日」を過ごそうではありませんか!

今ははるか遠くに見えますが、きっと私たちの道は最も美しいところに向けて伸びているでしょう。 ファイティング!

금강은 변화하고 있다

‘변화’란 무엇일까? 어떤 책에서, ‘변화’의 정의는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큰 고통을 감내하고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이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핵심은 세 가지다. ‘원하는 것’, ‘고통 감내’, ‘새로운 습관’.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교육부에서 근무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선발되어 재외 한국학교 교장으로 발령받아 출국하는 여러 훌륭하신 교장들을 봐왔고, 한편 불미스러운 일로 안타깝게 소환되거나 임기를 못 마치고 돌아오는 기관장들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기도 했다.

2016년 8월 금강학원 교장으로 선발된 나는, 금강이라는 학교를 일본 내 최고의 학교로 만들 수 있다는 커다란 ‘자신감’이라는 녀석을 데리고 당당히 일본에 건너왔다. 첫 여성 교장으로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잘 활용하여 열심히 하다보면 어떻게든 멋진 결과가 나올 거라는 왠지 모를 당당한<?> 자신감이 내 머리와 가슴 속에 든든히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이제 내 임기 중 반이 훌쩍 지나가고 4개월이 더 지나갔다. 처음에 그렇게 당당히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던 자신감이라는 녀석은 어느 순간 어딘가로 가버리고, 점점 주눅 들어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거울 속에 많이 비쳐졌다.

니시나리에서 난코로 오면서 지리적인 이유 등으로 학생 수가 반 이상 줄어들고 있는 우리 금강학원이지만, 능력 자체보다 적극적인 성격과 노력 하나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나이기에 그깟 학생 수는 금방 늘어날 것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지난 1년 반 동안 최선을 다해 생활해 왔다. 자리에 멋지게 앉아 결재만 하는 교장은 되고 싶지 않아서 그 누구보다 빨리 출근했고 열심히 발로 뛰고 릴레이 회의를 하면서 많은 부분을 바꿔가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결과는 빨리 나타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은 충분히 느끼고 있고, 같이 근무하는 교직원들도 교장을 잘 따라주고 평생 같이 근무하고 싶다고 말을 할 정도로 레포도 충분히 형성되었건만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에 조금씩 답답해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교사시절, 공부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무기력해진 학생들에게, 눈앞에 보이는 자그마한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꿈을 크게 가지고 열심히 전력하라고 말하던 나였는데,, 그건 내 마음속 영혼의 울림 없는 설교였던 것일까.

모처럼 평화롭고 조용한 토요일(5월 12일) 아침을 맞았다. 무심한 아들 녀석은 엄마를 홀로 두고 멀리 효고현에 있는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 타고난 막내 기질 탓인지 외로움과 고독이 무척이나 싫은 나의 발걸음은 어느 순간 학교로 향해 있었다.

교장실에 걸려진 역대 교장님들의 사진을 다시금 올려보았다. 다들 어떤 심정으로 교장실에 앉아 일을 하셨을까. 다들 웃으면서 인자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래, 윤 교장, 우리들이 지켜줄테니 잘 해봐. 우리가 못 이룬 꿈까지 꼭 이루란 말이야! 금강은 서서히 지금 변화하고 있어. 윤 교장 자신을 믿어봐”

그렇다. 금강은 확실히 ‘변화’하고 있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변화에도 순서가 필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키겠다는 목표를 간절히 세우고,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며, 그 결과로 얻어지는 새로운 습관을 완전한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 즉, 변화는 땀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 다시금 시작이다. 변화, 변혁..그리 쉽게 결과를 주지 않는 녀석들이다. 그래도 먼 미래의 멋진 금강의 모습을 상상하며, 끈질기게 원하면서, 그 과정 속의 힘든 여러 부분들을 잘 이겨내면서, 새로운 습관에 익숙해지다 보면 분명 우리 금강학원에 밝고 멋진 미래가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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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わっていく>

‘変化’とは何だろうか。ある本によると‘変化’の定義は「切実に望んでいる事をかなえるには大きな苦痛に耐え、新しい習慣を作ることだ」という。

ポイントは三つである。「望むこと」、「苦痛に耐えること」そして「新しい習慣」。このうち一つでも欠けたら変化は起きないそうだ。

教育部で勤務しながら、全国各地から選ばれ、在外韓国学校の校長として任命され出国する、多くの立派な校長たちを見てきたが、一方、よからぬことで残念ながら召還されたり、任期まで終えず途中で帰ってくる校長たちを見ながら心を痛めたりもした。

2016年8月、金剛学園の校長に選抜された私は、金剛という小さな学校を日本で最高の学校に作り上げ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大きな「自信」とともに堂々と日本に渡ってきた。初の女の校長としてソフトなカリスマ性をうまく活用して、一生懸命にやれば何とかいい結果が出るだろうという何とも言えない自信が私の頭と胸の中にしっかりと定着していたようだ。

もう私の任期の半分があっという間に過ぎ、さらにそれから4ヵ月以上が過ぎてしまった。

はじめのうちこそ堂々としていた私の自信というやつはいつの間にか、どこかへ行ってしまい、だんだんいじけて悩んで苦しんでいる自分の姿が鏡の中に多く映った。

西成区から南港に移転してきて地理的な理由などで、生徒数が半分以上減っている金剛ではあるが、能力はともかく積極的な性格と努力だけは誰にも負けない自分なので、生徒数なんかすぐに増えるものとあまりにも高をくくっていたような気がする。

今まで1年半の間、最善を尽くして生活してきた。椅子にカッコよく座って決裁ばかりする校長にはなりたくなかったので、誰よりも早く出勤し、熱心に走り回り、リレー会議をしながら多くの部分を変えていこうと努力した。しかし、結果はすぐには自分の前に現れてくれなかった。外から見てわからなくても、内側から少しずつ変わっていってるのは十分に感じられ、一緒に勤務する教職員たちも、校長によく従って「一生一緒に勤務したい」と言ってくれるほど良い関係も十分に形成されてはいるが、目に見えるはっきりとした結果が現われないことに、少しずつイライラする自分自身を発見したりした。

教師時代、勉強の成果が出ないといって挫折したり無気力になっている生徒に、目の前に見える小さな結果に一喜一憂せず、夢を大きく持って一生懸命努力しろと言っていた私だったのに…それは私の心からの言葉ではない、ただの虚しい説教だったのだろうか。

せっかく平和で穏やかな土曜日(5月12日)の朝を迎えたのに、無情な息子は母を家に一人置いて遠く兵庫県にいる友達の家に遊びに行った。生まれつきの末っ子気質のせいか寂しさと孤独がとても嫌な私は、いつの間にか学校に行く準備をしていた。

校長室にかかげてある歴代校長たちの写真を再び見上げてみた。みんなどんな心境で校長室に座って仕事をしたのだろうか。みんな笑いながら慈悲深く私を眺めている。「そう、尹校長、俺たちが見守ってあげるから、頑張ってやってみなさい。俺たちが実現できなかった夢を必ず成し遂げてくれ! 金剛は徐々に今変化しているよ。尹校長、自分自身を信じなさい!」

そうだ。金剛は確実に「変化」している。冒頭で言ったように変化にも順番がある。何をどのように変化させるかという目標を明確に立てて、その目標に至るための不断の努力と忍耐が必要であり、その結果として得られる新たな習慣を完全に自分のものにする作業。つまり、変化とはは汗を要求するものなのである。

そうだ。再び始めてみよう。変化、変革はそれほど簡単には結果を与えないやつらだ。それでも遠くの未来にあるすばらしい金剛の姿を想像して粘り強く求めながら、そこに至る過程がどんなに困難でも、新たな習慣に慣れていくうちに、確実はいつかはわが金剛学園に明るくて素晴らしい未来が訪れることと確信する。 ファイト!

소처럼 묵상[默想:meditation]하라!!

소와 양, 염소, 낙타 등은 되새김질하는 동물들이다. 이러한 동물들은 네 개의 위를 가지고 있다.젖소가 풀을 뜯을 때는 아침 일찍 풀밭으로 나가 마치 잔디를 깎는 기계처럼 풀에 머리를 대고 누가 방해만 하지 않으면 결코 고개를 들지 않는다.

젖소는 먹는 일에 완전히 집중을 한다.처음에는 먹이를 적당히 씹어서 삼킨다.그리고 10시쯤 되어 해가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그늘에 누워서 첫 번째 위로부터 음식을 조금씩 입으로 토해낸다. 그리고 그것을 철저히 씹는다.그리고나서 음식은 둘째, 셋째, 넷째 위로 보내진다. 그리고 마침내 소화된 음식물은 피 속에 흡수되어 말 그대로 젖소의 생명력의 원천이 된다.

인도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 휴버트 미첼 목사는 매일 아침 마을 근처 농장을 산책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런데 매일 산책을 할 때마다 소들이 자리에 서서 무언가를 계속 먹고 있기에 근처의 농부에게 물어보았더니 되새김질을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다음날, 그 다음날도 소는 정확히 미첼 목사님이 산책을 하는 시간에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계를 가져와서 시간을 재봤는데 소는 매일 같은 시간에 되새김질을 시작해 정확히 55 초씩 씹고 음식물을 다시 삼키는 것을 알았다.

1초의 오차도 없을 만큼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되새김질이 아닌가? 소가 되새김질하는 것이 마치 타이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정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목사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 나의 묵상도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하루의 상황과 컨디션에 상관없이 언제나 정확하게 성경 말씀을 읽고 또 묵상하는 것이 삶의 습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깨달음이었다.

소는 필요한 영양을 흡수할 만큼 정확한 시간을 되새김질을 통해 얻는다.우리도 매일 하루를 살아갈 영혼의 양식을 위해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소와 같이 매일 충분한 시간을 통해 묵상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할 것이다.

牛のように黙想[meditation]しなさい!!

牛や羊、ヤギ、ラクダなどは反芻する動物である。このような動物たちは四つの胃を持っている。乳牛が草を食べる時は朝早く草原に出て、まるで芝生を刈る機械のように芝生に頭を当てて誰かが邪魔さえしなければ決して頭をもたげようとしない。

乳牛は食べることに完全に集中する。最初は餌を適当にかんで飲み込む。そして10時ぐらいになると日差しが強くなり始め、日除けで横になって最初の胃から物を少しずつ口に戻す。そしてそれを徹底的に噛む。そうして食べ物は第二、第三、第四の胃に送られる。そして、つい消化された食べ物は血の中に吸収され、言葉そのまま乳牛の生命力の源泉になる。

インドで宣教をしているヒューバト・ミッチェル牧師は、毎朝村の近くの農場を散歩しながら一日を始めるという。 ところが毎日散歩をする度に牛が立って何かをずっと食べているのを見て、近くの農夫に聞いてみたところ、反芻をするのだと教えてくれた。その翌日も、その翌日も、牛は正確にミッチェル牧師が散歩をする時間帯に反芻をしていた。 もしかしたらと思い、時計を持ってきて時間を計ってみたら、牛は毎日同じ時間に反芻をし、正確に55秒ずつ噛んで食べ物を飲み込むことが分かった。

1秒の誤差もないほど正確に行われる反芻だった。牛の反芻がまるでタイマーを持っているかのように正確であるという事実を知った牧師は、大きな悟りを得たのである。

‘あ、私の黙想もこのような姿でなければならない。一日の状況とコンディションに関係なく、常に正確に聖書の教えを読み、また黙想するのが人生の習慣に繋が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悟りだった。

牛は、必要な栄養を吸収するのに要する正確な時間を、反芻を通じて得られる。私たちも毎日、一日を生きていく魂に向け、最小限の時間を投資しなければならない。牛と同様に、毎日十分な時間を通じて黙想し、自らを振り返る時間を必ず持つべきである。

 

나 어렸을 적.. 私の子供の時。。

굉장히 거센 바람과 비.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태풍’이라는 녀석은 올해도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며 우리를 찾아왔다. 일본 오사카에서 느끼는 태풍의 강도는 한국에서보다 훨씬 센 듯한 느낌이다.

나 어렸을 적.. 행여 천둥, 번개에 내가 놀랄까봐 세 명의 딸들을 옆에 두고, 막내인 나만 포근하게 안아주셨던 엄마 품이 있어 참으로 행복했다.

결혼하여 딸들을 연달아 세 명 낳고, 아들이기를 바라다가 또 임신이 되신 우리 엄마.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별의 아이를 낳아보고 싶으신 우리 부모님이셨다.
배가 유난히 불러 아들인 줄 알았는데 낳아보니 또 딸이었다고 한다. 그게 나였다…
그때부터 파란만장한 나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집은 서대문 냉천동의 한옥집이었다.
안방과 건넛방, 작은 마당 넘어 공부방, 그리고 좁다란 담장길을 따라 아주 자그마한 골방이 있는, 그런 아담한 집이었다.
그곳에서 난 초등학교 2학년까지 살았고, 그 후 아주 크고 넓은 2층 양옥집으로 이사갔지만, 어린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그 한옥집은 아직도 내겐 마음의 고향이다.
첫째언니는 굉장한 큰 덩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엄마가 임신 중에 좋은 영양제를 많이 드신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우리 불쌍한 동생들을 무섭게 거느렸다.
둘째언니는, 첫째언니의 몸이 너무 커서 힘들게 낳으셨던 엄마였기에 이번엔 일절 영양제도 안 먹고 일부러 몸도 많이 움직이고 일을 하여, (첫째언니 때와는 반대로) 아주 작고 비실비실한 몸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첫째와 둘째 딸이 너무 극과 극의 대조를 보였기 때문에, 셋째와 넷째는 정상적으로 낳으려고 나름의 노력을 하셨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 딸 넷은 온 동네를 누비며 재미있게 오손도손 서로를 아끼고 감싸며 행복하게 자라났다. 부모님이 없을 때는 엄마 한복들을 꺼내 입고 공주놀이를 하며 놀았다. 첫째언니는 늘 왕비역할이었고, 둘째언니는 공주, 셋째언니는 신하, 막내인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김없이 거지가 되어 엄마의 예쁜 한복을 입을 기회조차 없었다. 한번은 배구놀이를 한답시고 안방에 줄을 긋고 풍선을 배구공으로 하여 한국팀과 일본팀이 되어 뛰어놀다가, 부모님이 제일 아끼시던 도자기를 깨뜨려서 아버지의 무서운 회초리 세례와 함께 ‘골방’에서의 한 시간 반성이라는 벌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의 여신은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고, 우리 네 명의 딸들은 각자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첫째언니는 독일로 유학을 떠나 오랜기간 머물다가 대학교수가 되어 돌아왔고, 둘째언니는 프랑스어를 전공했지만 전공언어를 전혀 써보지도 못하고 인연도 없던 일본으로 시집가 살다가 위암에 걸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녀석을 두고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 성악을 전공한 셋째언니는 음악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이젠 옛날의 천방지축 개구장이 딸들의 모습이 아닌, 각자의 삶을 멋지게 거느리며 살아가는 어엿한 대한민국 중년여성들이 된 것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아침이면 태양을 볼 수 있고 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음에 행복하고,
잠이 들면 다음날 아침 깨어날 수 있음에 또한 감사하다고..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무사히 건강하고도 행복하게, 또한 평안하게 살아올 수 있었으니 그또한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내 나이 마흔 일곱.
내게도 ‘가정’이라는 것이 생겼고, 사랑스러운 아들들도 곁에 있다.

그러나 가끔씩 내 마음 한 켠이 허전하고 답답한 것은..
아마도 어렸을 적 내 가족들과 함께 지냈던 그 추억의 시간들로 돌아갈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그리움들이 교차해서가 아닐까.

오늘처럼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바람이 거세게 부는 무서운 날씨엔,, 어린 시절 그저 부모님 밑에서 철없이 울고 떼쓰면 모든 것이 해결됐던 그 두껍고도 강력한 ‘보호막’이.. 그 ‘울타리’가… 무척 그립고 아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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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の子供の時。。

とても激しい風と雨。
毎年この時期になると必ずやってくる’台風’という放浪者は、今年も強力なパワーを誇り、私たちを訪ねてきた。大阪で感じる台風は韓国のそれより、はるかに強いように感じる。

子供の時、もしかすると雷、稲妻で私がびっくりするかもしれないと思って、三人の娘たちをそばに置いて、末っ子の私だけを優しく抱いてくれた母の懐が本当に幸せだった。

結婚して娘たちを相次いで三人生み、次は息子であることを望むうちに、また妊娠してしまった母。
今までとは違う性別の子供を生んでみたい、つまり、今度こそ男の子を欲しいと思っていた母だった。
いやにお腹が突き出して息子だとばかり思ったのに生んでみたらまた娘だった。それが私だった。
その時から波乱万丈の私の人生が始まった。

韓国での幼少期(4姉妹の生い立ち)

私が生まれた時、我が家はソウルの西大門冷泉洞にある韓屋だった。奥の間とむかい側の部屋、小さな庭の向かいに勉強部屋、そして小さな塀に沿いにとても小さな小部屋がある、こじんまりとした小さな韓屋だった。そこで私は小学2年生まで暮らし、その後はとても大きくて広い二階建ての洋館に引越ししたが、幼い頃の思い出がそのまま詰まった、その韓屋がいまだに私の心のふるさとである。

一番上の姉は、大柄な人で、(母が妊娠中に良い栄養剤をたくさん飲んだためだというが)強力なカリスマで私たちか弱い妹たちを引き連れた。
二番目の姉は、一番上の姉の体が大きすぎて産むのに大変な思いをした母だったので、今回は一切栄養剤も飲まずに意識して体もたくさん動かして仕事をしたので、(一番上の姉の時とは正反対で)非常に小さくひょろひょろした体で生まれたという。長女と次女がとても極と極の対照を見せたため、三女と四女は、普通の子に生もうとそれなりの努力をしたという。

とにかく、私たちは町中を楽しく走り回りながら、仲良くお互いをいたわり、かばいあって幸せに育った。両親がいない時は母の韓服を取り出して着てお姫様遊びをして遊んだりもした。一番上の姉はいつも王妃の役で、下の姉は姫様、三番目の姉は臣下、末っ子の私はいつも自分の意志とは関係なく決まって乞食になり、母のきれいな韓服を着る機会すらなかった。ある時はバレーボールの遊びをすることになり、奥の間で真ん中に線を引き、風船をボールとして韓国チームと日本チームに分かれて遊び回っていたが、親が一番大事にしていた陶磁器を割って父の猛烈なむち洗礼とともに、あの怖い’小部屋’での一時間もの反省という罰を受けたりもした。

それぞれの道へ

しかし、歳月の女神は私たちをそのまま放っておかず、私たち四人の娘たちは各自の道を行くことになった。

ピアノを専攻した一番上の姉はドイツに留学し、そこで長い期間滞在して、ついに大学教授になって戻ってきた。二番目の姉はフランス語を専攻したが、専攻言語を全く使う機会もなく、縁も所縁もなかった日本に嫁ぎ、胃がんになって、愛する夫と息子を置いたまま先に天国に行ってしまった。声楽を専攻した三番目の姉は音楽教師として勤めている。

もう昔のわんぱく娘たちの姿でなく、守るべきものをしっかり携えながら生きていく、いつの間にかれっきとした大韓民国の中年の女性になったのだ。

誰かがこう言った。

朝には太陽が見られ、夜には星を見ることができることが幸せで、
寝たら翌日の朝目覚めることができることもありがたいと。。。

振り返ってみると、今まで無事に健康で幸せに、また安らかに過ごして来れたから、これ以上ありがたいことはないと思う。

母親となった今

もう私も四十七才。
私にも’家庭’というのができ、可愛い息子たちもそばにいる。

しかし、たまに私の心がどこか物足りなくて、もどかしい理由は。。。

おそらく子供の頃、家族と一緒に暮らしていた、その思い出の時間に戻りたいという懐かしさと、二度と戻れないというもどかしさが次々と交錯しているからではなかろうか。

今日のように激しい雨が降り、風が吹き荒ぶ恐ろしい天気の日には、ただただ幼い頃親の下で分別なく泣いて駄々をこねたら、すべてが解決できた、その分厚くて強力な’保護膜’が、、、その’垣根’が、、、とても懐かしく、かすかに感じられる。

本校主管で”第54回在日韓国人教育研究大会”が奈良県で開かれました。

지난 8월 17일과 18일(1박2일) 본교 주관으로 “제54회 재일본한국인교육연구대회”가 나라현에서 열렸습니다. 이 대회는 일본 전역에 있는 한국학교, 한국교육원, 민단 교육관계자, 민족학급, 한글학교에서 종사하는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보공유 및 토론을 하는 의미있는 워크숍입니다. 본교 주관인만큼 본교 전 교직원들이 단합하여 대회를 주관하였고, 모든 참가자들이 본교 선생님들의 놀라운 팀워크와 매끄러운 진행, 단합된 행동 등에 감탄을 했습니다.

다음 글은 폐회식 때 대회장으로서 마지막 인사를 했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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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두 마리의 개(犬)를 키운다고 합니다. 이 두 마리의 개에게는 이름이 있는데, 하나는 “선입견”이고, 또 하나는 “편견”입니다.

이 두 마리의 개는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고 더 넓어지며 더 단단해집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우리 교원들은 특히나 이 두 마리의 개를 절대 키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또는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는지요?

그런데 또 한 마리의 특별한 개가 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는 개입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라는 뜻이지요. 직접 보지 않고 들은 얘기로 상대를 판단하면 큰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사실을 그대로 보고 느끼고 파악하며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해야 합니다.

이 개의 애칭은 ‘일견’(一見)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우리 교사들이 “일견”을 키우고 “선입견”과 “편견”을 제압하면서 동시에 정확한 눈으로 학생들과 주변사람들을 바라봐야할 것 같습니다.

학교는 교장의 열성만큼 발전하고 학생은 교사의 사랑만큼 성장한다고 합니다.
아무쪼록 사랑과 정열로 최선을 다하는 우리 재일본한국인교육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와 오늘의 이틀을 위해 대회장인 저를 중심으로 저희 학교 교직원들이 올해 일찍부터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잘 따라와준 우리 교직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본 대회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께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점이 있으셨다면 양해해 주시고, 내년 대회를 열게 될 교토에서 더 멋진 대회가 되도록 잘 인수인계하겠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去る8月17日と18日(1泊2日)本校の主管で”第54回在日韓国人教育研究大会”が奈良県で開かれました。

この大会は、日本全域にある韓国学校、韓国教育院、民団の教育関係者、民族学級、ハングル学校に従事している先生たちが一カ所に集まって情報共有や討論をする有意味なワークショップです。

今年は本校の主管であるだけに、本校すべての教職員たちが一致団結して大会を主管しましたし、全ての参加者たちが本校の先生たちの驚くべきチームワークと滑らかな進行、団結した行動などに感動していました。 下記の文は、閉会式の時、大会長としてお話しした挨拶の内容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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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は誰もが先入観と偏見を持っている

人は誰もが心の中に二匹の犬を飼っているそうです。この二匹の犬には名前がついていますが、一匹目の名前は”先入見”(日本では先入観ですが、韓国では'先入見'または'先入観'の両方を言います)という名で、二匹目の名前は”偏見”という名だそうです。

この二匹の犬は、時間が経つほどもっと大きくなり、もっと広くなり、もっと丈夫になります。児童生徒たちを教える我々教員たちは、この二匹の犬を絶対に育ててはいけないと思いますが、知らないうちに、私達は子供たちだけでなく周囲の人々にもあまりにも多くの先入見と偏見を持っ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先入見”と”偏見”を制圧しながら正確な目で相手を見なければいけない

ところで、私達の心の中にはもう一匹の特別な犬がいるそうです。”百聞は一見に如かず”という犬だそうです。これは”百回聞くより実際に一度見た方が良い”という意味ですね。直接見ないで聞いた話だけで相手を判断したら大きな間違い(失敗)を犯すことになります。事実をありのまま見て感じて把握しながら理解するためには、その対象と開かれた対話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の犬の愛称は’一見’と呼ぶそうです。児童生徒たちを教える私達は、こういう”一見”を育て、”先入見”と”偏見”を制圧しながら正確な目で相手を見なければいけないと思います。

無限の愛と情熱を持って悔いのない最善を尽くす在日本韓国人教育者になって頂きたい

学校は校長の情熱の熱さと強さに比例して発展し、児童生徒は教師の愛の深さと広さに比例して成長するそうです。どうか無限の愛と情熱を持って悔いのない最善を尽くす在日本韓国人教育者になっていただけたらと思います。昨日と今日の二日間のために、うちの学校の教職員一同は今年は特に早い時期から、最善を尽くして準備を致しました。よくついてきてくれた教職員達にこの場を借りて深い感謝の気持を伝えたいと思います。

最後に

なにとぞ本大会に出席してくださった皆様に少しでも不便な点がございましたら了解していただいて、来年の大会の主管校の京都ではもっと素敵で盛大な大会になるように引継ぎをきちんとさせていただくことを約束します。 お気をつけてお帰りください。감사합니다,